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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달 Sep 19. 2024

주방의 변신은 무죄


  나의 겉모습은 주부이지만, 내면에서 차곡차곡 단단하게 쌓여가는 정체성은 전사다. 전사인 나의 전장은 바로 주방이다. 나의 무기와 전투 도구들이 있는 곳, 적군(날것의 식재료)을 굴복시켜 맛있는 음식으로 재탄생시켜서 사랑하는 이들을 먹여 살리는 나의 전쟁터, 사명지.

  그런 의미 깊은 공간에 전사인 나의 개성이 담기는 것, 사기를 높이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환경을 뛰어넘는 존재지만 환경에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before


  곧 이사할 새 집의 주방을 바라볼 때 가슴이 답답했던 이유를 두 가지로 추려 보았다.

  하나는 색감의 통일성, 톤온톤이 전혀 없는 공간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조명, 조명, 조명, 올드한 조명 때문이었다.

  우리 부부는 집주인에게 사전 동의를 구한 뒤 약  65만 원, 잠 못 드는 밤, 그리고 고민과 토론의 시간들을 기꺼이 투자하였다. 그렇게 최저 비용 최고 효율을 꿈꾸며 주방의 변신을 시도한 결과!


after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이다.


색감 통일

  첫 번째 문제였던 <색감의 통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화이트에 우드 약간'이라는 내 입맛에 맞는 콘셉트를 정하고, 면적이 큰 가구(싱크대 하부장, 식탁, 다용도실 문) 위주로 색감을 통일하였다.

  싱크대 하부장은 숨고에서 전문가를 섭외하여 s115(순백색) 인테리어 필름을 입혔고(작업 비용은 재료비+인건비 도합 20만 원.) 식탁은 이케아 에케달렌 확장형 테이블을 흰색으로 장만하였다.(40만 원) 다용도실 문까지 필름 작업을 하기엔 비용 문제가 걸렸기에, 기존 집에서 사용하던 흰색 가리개 커튼을 옮겨 달았다.(데코뷰 광목)

 *하부장 인테리어 필름: 상부장이 색이 바래서 그 색과 맞추어 s176(아이보리)로 할까 고민했으나, 깔끔한 색감을 위해 s115(순백색)으로 진행함.


조명

  두 번째 문제였던 조명. 아이들을 재운 뒤 오늘의 집과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몇 날 며칠 드나들며 조명을 골랐다. 너무 비싸지 않을 것, 그러나 싼 티가 나지도 않을 것. 무엇보다, 첫 번째 원칙인 '화이트에 우드 약간' 콘셉트 색감을 해치지 않을 것.

  현생에 집중하기 위해 나름의 마감 기한을 정해두고 눈이 빠지도록 검색한 결과, 블랑 2등 식탁 조명이 최종 낙찰되었다.(4-5만 원.) 공돌이 남편이 직접 조명 교체를 해 주었기에 별도 인건비 지출을 막을 수 있었다.


  꼭 값비싼 리모델링을 해야지만 공간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정확한 방향을 정하고 최소한의 변화와 그에 맞는 아이템 배치만으로도 공간은 새롭게 탄생한다.

  주방이 달라지자 주방을 바라보는 내 마음, 주방에 선 내 마음도 달라진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다분히 인간적이고 평범한 주부의 전의에 열정의 불꽃이 다시 활활 타오른다.

  이글이글 전의를 불태우는 전사는 전쟁터에서 기량을 한껏 발휘할 수 있다. 새로운 에너지로 무장된 전사의 손끝에서 건강하고 풍성한 음식이 탄생한다. 전사의 사기를 높여주는 전쟁터의 변신은 무죄다. 아니,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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