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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tranchant

침침한 불빛을 내는 감람유 등불

by soulsol



고대 성경 시대에, 침침한 불빛을 내는 감람유 등불은 여행자가 간신히 한 걸음씩 발을 앞으로 내디딜 만큼의 빛을 비춰 주었다. 바로 그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앞길을 비춘다.

하나님은 나에게 모든 미래를 비추는 탐조등을 제공하지 않으신다. 대신에 등불을 주셔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살아가기를 바라신다. 오늘 나의 작은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찾고, 구하고, 거기에 집중하기를 바라신다.




다음은 C.S. 루이스의 저서 스크루테이프의 편지(홍성사) 90-91쪽에 나오는 글. 사탄은 늘, 내가 모든 미래를 비추는 탐조등을 갈구하기를 바란다.

미래만큼 영원과 닮지 않은 건 없어. 미래는 시간 가운데서도 가장 완벽하게 찰나적인 부분이지. 과거는 꽁꽁 얼어붙어 더 이상 흐를 수 없고, 현재는 영원의 빛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니까. 우리(악마들)가 창조적 진화니 과학적 인본주의니 공산주의 같은 사상체계에 격려를 아끼지 않은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사상들은 인간의 애착을 미래에, 그 찰나성의 핵심에 붙들어 놓지.
따라서 거의 모든 악은 미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감사는 과거를 바라보고 사랑은 현재를 바라보지만 두려움과 탐욕과 정욕과 야망은 앞을 바라보지. 혹 정욕은 예외일 거라고 생각지 말거라. 현재에 쾌락을 느끼는 순간, 죄(우리의 유일한 관심사인)는 이미 저질러져 버린 상태가 된다구. 이 과정에서 쾌락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로서, 쾌락 없이도 죄를 짓게만 할 수 있다면 얼른 빼 버리고 싶은 마음 굴뚝같다. 이 쾌락은 원수가 제공하는 것이므로 현재에 경험하게 되지. 그러나 우리가 제공하는 죄는 역시 늘 앞을 바라보고 있다.
물론 원수(예수 그리스도)도 인간이 미래를 생각하기 바라지. 다만 내일 실천해야 할 정의나 자비의 행동을 계획하기 위해 지금 필요한 만큼만 생각하길 바란다. 내일의 일을 계획하는 것은 오늘의 의무니까. 모든 의무가 그렇듯이, 그 재료야 미래에서 빌려오는 것이지만 막상 그것을 실천하는 시점은 현재 아니냐.
이건 좀 시시콜콜히 따져보며 생각할 문제다. 그 작자는 인간이 미래에 신경을 쓰면서 미래에 보물을 쌓아두길 원치 않지. 우리야 물론 그렇게 되길 바라마지 않지만 말이야. 원수의 이상형은 하루 종일 후손의 행복을 위해 일한 다음(그 일이 자기 소명이라면), 그 일에 관한 생각을 깨끗이 털고 결과를 하늘에 맡긴 채 그 순간에 필요한 인내와 감사의 마음으로 즉시 복귀하는 인간이다.
하지만 우리한테는 미래에 잔뜩 가위눌려 있는 인간, 이 땅에 금방이라도 천국이나 지옥이 임할지 모른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인간, 그래서 천국을 얻을 수 있다거나 지옥을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불어넣기만 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원수의 계명을 깨뜨릴 준비가 되어 있는 인간, 자기는 생전에 보지도 못할 계획의 성패 여부에 믿음을 거는 인간이 최고지.

우리가 바라는 건 전인류가 무지개를 잡으려고 끝없이 쫓아가느라 지금 이 순간에는 정직하지도, 친절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하게 사는 것이며, 인간들이 현재 제공되는 진정한 선물들을 미래의 제단에 몽땅 쌓아 놓고 한갓 땔감으로 다 태워 버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보면, 그리고 다른 조건이 동등하다면, 환자가 현재를 살아가는 것보다야 불안이든 희망이든(둘 중 뭐가 되든 상관없다) 온통 전쟁에 대한 생각으로 꽉 차 있는 편이 훨씬 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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