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함에 대한 대처
감정이 상하거나 불쑥 화가 치미는 순간, 우리는 아주 쉽게 마음을 먹곤 한다.
‘두고 봐, 나도 똑같이 해줄 테다.’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생각을 그 짧은 찰나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무례하게 굴었던 사람에게 날 선 말로 되돌려주고 싶고, 무시당했다고 느껴지면 나 또한 상대를 외면하고 싶어진다. 마치 그렇게 해야만 무너진 감정의 균형이 비로소 맞춰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화가 난 이유는 명확하다. 누군가의 태도가 무례했고, 말투가 날카로웠으며, 그 방식이 보편적인 예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나는 그 모습이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대응하기로 마음먹는 순간, 역설적으로 나는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그 모습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서게 된다.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발언이 유난히 공격적으로 들릴 때, 같은 톤으로 받아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그것이 무시당하지 않는 방법이자 ‘지지 않는 기술’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번의 경험 끝에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퇴근길의 마음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찝찝해진다는 것을. 상대 때문에 상한 기분보다, “내가 왜 그런 말까지 했지”라며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마음이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최근에는 마음이 상하는 상황 자체에 너무 오래 머물지 않으려 한다. 대신 마음속으로 짧은 질문 하나를 먼저 던져본다.
이 상황에서 결국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가?
‘똑같이 되지는 말자’라는 기준은 어쩌면 아주 개인적이고도 단단한 방어선이다. 상대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아니고, 성인군자처럼 굴겠다는 다짐도 아니다. 그저 적어도 내가 싫어했던 그 모습과 닮은 사람이 되지는 말자는, 스스로와의 소박한 약속에 가깝다.
누군가에게서 무례함을 느꼈다면 최소한 그 무례함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로마의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의 명상록에 이렇게 적었다.
"원수에 대한 최고의 복수는 그와 닮지 않는 것이다."
이 오래된 지혜는 시대를 관통하여 나에게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준다. 감정에 휩쓸려 똑같이 대응해 버리는 것은 상황을 해결하는 게 아니라, 공들여 쌓아 온 개인의 품성을 스스로 흐트러뜨리는 선택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쉽게 화가 난다. 다만 그 감정에 자신을 전부 맡겨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똑같이 되지 않겠다는 선택은 무조건 참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온전히 지키는 일에 더 가깝다. 그 선택 덕분에 오늘의 나는 어제의 행동을 구태여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
완벽하게 대응하지 않아도 괜찮고, 모든 상황을 멋지게 넘기지 못해도 좋다. 다만 감정 때문에 평소의 모습과 너무 먼 사람이 되지는 말자고 마음을 정리해 본다.
화가 날수록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그 질문 하나만 놓치지 않아도 관계의 날은 조금 덜 날카로워진다.
그리고 내 마음은 생각보다 조금 더 오래, 고요한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