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툰 나를 먼저 대접하는 자존의 예의

내 안의 결핍과 화해하는 시간

by oui

살다 보면 참 뜬금없는 곳에서 허점이 드러나곤 한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물병을 떨어뜨려 모든 시선을 한 몸에 받거나, 아는 사람인 줄 알고 반갑게 인사했는데 전혀 모르는 타인이었을 때의 그 서늘함 같은 것들. 메시지를 보내고 나서야 오타가 눈에 들어올 때면, 이미 날아간 화살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휴대폰 화면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이런 일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상의 흔한 소음이다. 하지만 그 사소한 어긋남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종종 그 일을 실제 크기보다 훨씬 거대하게 부풀려 마음속에 담아둔다.


상황은 한참 전에 끝났고 함께 있던 이들은 제각각 자신의 일상으로 흩어졌는데, 마음만 혼자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는다.


‘아, 아까 그냥 가만히 있을 걸.’

‘왜 하필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자책은 대개 조용한 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 더 선명해진다. 이른바 ‘이불 킥’이라고 부르는 그 찰나의 장면을 혼자 몇 번이나 되감기 하며 얼굴을 붉히는 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소모하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기억할 지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더 가혹한 잣대를 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수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꾸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의 무게는 달라진다.


실수를 완벽히 없애겠다는 불가능한 목표 대신, “제가 가끔 이래요”라고 툭 내뱉을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


이것은 비굴한 변명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불완전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담백한 고백에 가깝다.


신기하게도 스스로의 빈틈을 먼저 인정하고 나면 상황은 훨씬 부드러워진다. 자신을 포장할 필요가 없어지니 긴장이 풀리고, 주변의 공기 역시 한결 편안하게 흐른다.


물론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 때도 있다. 그때 필요한 건 화려한 수식어나 뒤늦은 자책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똑바로 마주하는 정직함이다.


“제 불찰입니다. 미안합니다.”


이 사과 한마디는 꼬인 상황을 푸는 가장 빠른 길이다.


실수를 인정한다는 건 결코 나태해지겠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벌어진 일을 외면하지 않고 그 무게만큼 책임지겠다는 가장 능동적인 태도다.


실수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삶의 불청객이다. 하지만 그 불청객을 어떻게 대접하느냐에 따라 이후의 시간이 달라진다.


모든 순간을 흠 하나 없이 매끄럽게 넘기지 않아도 일상은 아무런 문제 없이 계속 이어진다.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나간 것을 뒤늦게 발견하거나, 길을 걷다 헛발질을 하는 사소한 틈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본다.


완벽이라는 허상을 쫓으며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온전하다. 굳이 자신을 완벽하게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모자란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며 걷는 걸음이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게 해 준다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건 실수를 단 한 번도 하지 않는 철저함이 아니라, 실수 이후에 찾아오는 시간을 얼마나 평온하게 보내느냐에 달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지.”


그 짧은 허락을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먼저 건네는 일. 그 너그러움이 우리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가장 따뜻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어제의 민망함을 오늘의 안주로 삼아 낄낄거리며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우리의 일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근사해질 테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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