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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롱쓰 Jan 18. 2019

[블랙클랜스맨: BlacKkKlansman]

흑인과 유태인의 성장 스토리이기도 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신작이다. 실화에 바탕을 뒀다니 흥미롭다. 흑인 잠복경찰이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단에 잠입해서 수사하는 내용이라니,


"읭? 흑인이 무슨 가면이라도 쓰고 들어가나?" 


그래서 백인 동료 형사 (필립)가 대신 들어간다. 전화로 할 수 있는 것들은 흑인 형사 (론)가 처리하고, 단체에 직접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백인 형사가 맡는다. 흥미로운 소재인 데다 흑/백 버디무비로 포맷도 완벽하다.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 아니라서 두 주연들은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연기는 훌륭하다. 


아쉬운 점 두 개만 먼저 말하고 시작하자. 1) 영화 마지막에 나쁜 형사를 응징하는 장면은 무슨 학원드라마를 보는가 싶을 정도로 유치했다. 2) 단조로운 흑/백 구조를 풍부하게 그려낸 노력은 좋지만, 경찰과 그들에 의한 인종차별에 대한 고민은 크게 없어 보여서 아쉬웠다. 물론 한 영화에 모든 이슈를 다 담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여하튼 

이 영화는 고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수많은 남부연합군 전쟁 부상자들이 넓은 기찻길에 누워있고 그 위로 남부군기가 찢어진 채 휘날린다. TV에 나오는 어느 박사는 연설을 통해서 자신들이 전쟁에서 패배했지만 승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1950년대 시도된 흑/백 통합교육에 대해서 강렬하게 비판한다. 그렇다. 노예제와 관련해 남부주들이 연방을 탈퇴해 발생한 남북전쟁에서는 남군이 패배했다. 하지만 전쟁에 패배했다고 정신까지 질 수는 없다. 노예제는 포기했지만 그들과 통합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들과 동일하지 않다. 살아오던 방식을 포기하지는 않은 것이 남부주들의 정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진 것은. 다름 아닌, 남부의 문화다. 

[내용 설명 좀 합니다]

1. 주인공 론은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첫 흑인 경찰이 되지만 기록실이라는 한직에 배치된다. 그러다 잠입 수사에 차출된다. 지역에서 벌어지는 흑인 대학생들의 집회에 잠입하기 위해서다. 이 기회에 정보부에 배치된 그는 신문을 보다 KKK단의 모집광고를 보고 충동적으로 전화를 한다. 


2. 잠입성공. 좋은 교육을 받은 그는 철저한 백인 억양을 낼 수 있어 KKK단의 지부회장을 (월터) 속이고 연을 맺는다. 누군가 대신 나가야 하는데, 같은 서의 유대인*계 백인 형사 (필립)가 돕기로 한다. 실제로 어떤지 모르겠는데 이 설정이 흥미롭다. 단순 흑/백의 구도에서 이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 또 다른 소수자 요소다. 영화 [그린북]에서는 백인 운전자 토니는 알고 보면 다른 소수계인 이탈리안 이민자 출신이고, 흑인 피아니스트는 동성애자로 그려진다. 이 영화에서도 유사한 패턴이다. 두 형사가 흑/백으로 대조되나 흑인 형사는 좋은 교육을 받고 대학을 졸업했으며, 완벽한 백인 영어를 구사한다. 백인 형사는 아직 자의식은 없으나 유태인이다. 


3. 끝판왕 등장. 얼마 지나지 않아 잠입에 성공한 론은 지부회장을 넘어서 드디어 KKK단의 대부가 등장한다. 바로 데이비드 듀크라는, 대마법사로 불리는 KKK의 대부다. 듀크 관련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자면, 스파이크 리 감독은 듀크를 통해서 트럼프를 떠올리게 하고 싶었던 듯하다. 듀크가 하는 연설이나 말들 중에, America First나 Make America Great Again! 같은 구호는 트럼프의 목소리로 들어야 제맛. 영화 중 누구의 대사였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미국이 데이비드 듀크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 일은 없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서 2017년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자꾸 떠오른다. 

앞글자를 따서 MAGA라고도 한다.


4. 나는 누구지? 그렇게 론 형사는 (필립 형사가 다했지...) KKK단에 잠입해 멤버의 하나로 인정되어 간다. 물론 의심의 눈초리도 받지만. 그는 실제로도 지부회장으로 추천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그에게선 유태인으로서 자의식도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이런 의미에서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론 형사는 흑인 집회에 잠입하면서, 그리고 여자 친구와 대화하면서 흑인으로서 자의식을 가지기 시작한다. 필립 형사는 KKK단에서 유태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직접 경험하면서 동일한 경험을 한다. 


5. 드디어 입단. 필립 형사의 입단식에 그 듀크가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오기로 됐다. 동네 KKK단으로서는 엄청난 행사인셈이다. 여기에 론 형사가 살해위협을 받는 듀크의 개인경호를 맡게 되면서 이 셋은 드디어 한 공간 안에 있게 된다. KKK단의 집회 장면과 같은 시간에 진행된 흑인 학생들의 집회 장면이 교차 편집되면서 영화는 절정에 이른다. 한쪽에서는 어느 노인이 자기 어렸을 적 친구가 경찰과 KKK단에게 살해당했던 장면을 담담하게 회고하고 있고, 다른 쪽에서는 백인들로 가득 찬 방에 KKK단에 입단하는 장면이 (마치 종교의식처럼) 그려지고 있다. 


6. 두 힘의 충돌. 이 두 장면은 한 영화 [The Birth of a Nation]라는 단어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이어가던 노인은 자신의 친구가 살해당한 한 해 전에 개봉한 이 영화가 흑인들에 대한 혐오가 폭발하는데 기여했다고 말한다. KKK 단 모임에서는 입단식을 마친 후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 영화를 감상한다. 무성영화였기에, 관객들의 외침과 호소가 넘쳐나는데 그 장면이 마치 종교집회와 같은 모습이다. "백인의 힘"과 "흑인의 힘"이 충돌한다. 

7. 2017년. 영화는 KKK단이 십자가 화형식을 하는 장면으로 마친다. 잠입 수사는 성공적이었고, KKK의 폭력 시도는 막았지만 남부백인들로 대표되는 인종차별 정서는 여전히 강하게 흐른다. 감독은 영화 마지막에 2017년 버지니아의 풍경을 담는다. 남부연합의 상징을 폐기하는 것에 대한 항의 집회에선 "Blood and Soil"이라는 나치의 구호가 버젓이 외쳐진다. 혐오, 증오, 폭력의 KKK단은 1970년이 아니라 2017년에도 여전히 남아서 건재하다고 말해주듯이. 


영화에서 두세 번 등장하는 말이 있는데 (한 번은 듀크가 말하고 다른 한 번은 론의 상사가 말한다), 내용이 대강 이런 것이다. "이제 과거처럼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는 안된다. 앞으로도 뭐 그렇게 십자가 태우고 그럴 거 같냐? 인종차별은 다르게 진행돼야 한다. 정계 등 메인스트림으로 진출해야 한다. 투표권, 어퍼머티브 액션 등등" 한국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과거의 깡패가 이제 사회 지도부로의 진출을 노력했듯이, KKK단도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남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렇게 살아남은 오늘날의 KKK단은 인종차별적 정책, 이민정책, 등등 법과 정책이란 이름을 가지고 백악관에 앉아 있지는 않은가?



[영화에 등장하는 몇 가지 상징]

#남부군기. 영화에는 남부군을 상징하는 깃발이 등장한다. 영화 속 배경은 1970년대인데 남북전쟁이 마친해는 1865년이다. 백 년 전에 패전한 깃발을 남부의 상징처럼 걸고 있는 거다. 남부의 자존심. 2019년에도 여전히 이 깃발은 남부주들에서 인기가 많다. 나치의 하켈크로이츠나 일본의 욱일승천기 정도는 아니지만, 북쪽 주들에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상징이다. 물론, 남부주들에서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흑인아이과녁 Running nigger Target. 영화 중간에 KKK단들이 모여서 사격연습을 하는데 이런 달려가는 흑인 모양의 과녁을 향해 총을 쏜다. 그리곤 KKK단들이 떠난 자리에 론 형사가 이 과녁들을 만지는데 이 장면이 뭔가 묘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스파이크 리 감독은 이 타깃을 쉽게 구입했다고 한다. 2015년 사우스다코타 총기 쇼에서 아래와 같은 흑인 과녁이 실제로 팔렸다고 한다. 그리고 이 판매자는 그게 뭐가 대수냐는 듯이 대응했다고 한다. 목화밭에서 흑인 노예들이 도망가면 총으로 쏴도 아무렇지 않던 그런 시대를 그리워하는 건가.  


#두 언어에 능통한 Speaking the King's English and talking jive. 론 형사가 KKK단에 잠입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언어능력 때문이다. 흑인이었던 그는 백인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발음과 단어들에 능통했다. 마치 [그린북]의 돈 박사가 교양 있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였던 것처럼. 이 두 언어를 함께 말하는 기술은 그의 능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백인들이 주입한 억압적 기제이기도 하다. 부모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그는 교양 있는 백인들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모델 흑인이었다. [버틀러]의 주인공이 평생을 교육받아온, 백인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모델 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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