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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얄리 Dec 29. 2020

한 번쯤은 끄적였을 이야기

글이 시작되던 봄날

  전 세계적으로 파란만장했던 2020년이 저물어간다.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는 좀비 영화에나 나오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현실에서 일어났다는 생각에 놀라움과 공포에 휩싸였다가, 조금만 견디면 곧 이전의 삶을 되찾을 거라는 희망이 하나둘씩 꺾어지며 소소한 감정들까지도 모두 메말라 버렸다. 그렇게 올해의 따스하고 아름다웠을 봄을 잃어버린 후


  나는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범했던 일상들을 하루아침에 빼앗겨 버린 후 텅 비어버린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러니 내게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먹고 해 보는 일이 아니라 어찌할 수 없어한 일이 된 셈이다. '언젠가 내가 직장에서 은퇴하고 나면 지나온 시간들을 조용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져봐야겠다.'라고 생각했었다. 한 십 년 뒤 즈음, 그때쯤이면 내가 글을 쓰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천천히 스며들듯 옮겨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갈라지는 땅을 바라보며 이쪽에서 건너편으로 힘껏 달려 겨우 턱걸이하듯 매달린 꼴이 되고 말았다. 현실이라는 무게를 견디기 위해 나를 내던지는 몸부림 같은.


  

  글을 쓰려고 했을 때 처음 떠올린 것은 내 곁을 떠나 버리신 부모님에 대한 것이었다. 왜 그것이 처음이 되었어야 했을까? 글은 내게 고백이었나보다. 아마도 마음 한 구석에 철들지 않은 딸이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죄책감이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차마 죄송하다는, 고마웠다는, 그립다는 말조차 담지 못했던 것들이 새어 나왔다. 담담하게 떠올리려 했지만 매 순간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란 언젠가는 한번 목놓아 울어내야 넘을 수 있는 산 같은 것이었나 보다.


  어쩌면 지금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어린 시절의 행복과 트라우마로 뒤엉킨 것들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시간들을 버텨내는 힘도, 어이없게 돌부리에 걸려 크게 넘어지게 되는 취약점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에 각인된 것들에 기인한 게 많았다. 어렸기 때문에 아무런 거름장치 없이 고스란히 내 안에 들어와 내 생각인 듯 새겨져 버린 것들은 대부분 그때 생겨난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이 훨씬 지나 지금은 아무런 효용을 미치지 못하는 것들조차 여전히 정리해내지 못한 게 태반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난날과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이미 어린 시절의 부모와 같은 연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속에 어린아이로서 과거 기억을 꾀고 있었던 거다. ‘이것이 내 삶의 프레임이구나’ 싶었다.


  뒤를 이어 떠올린 것은 경제적인 수단 그 이상으로 매달렸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일터에서의 기억이었다.  그것은 내가 어린 시절 부모의 그늘에 있었던 것에서 빠져나와 나라는 사람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기 시작한 때로 그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인 것 같다. 나 자체로 살아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돌진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이미 나는 나 자체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이 없으면 쓸모도 의미도 존재도 없는 것처럼 느꼈던 것 같다.


  일과 맞물려 떠오른 것이 결혼과 육아, 즉 내가 꾸린 가족에 대한 것이었다. 이 둘은 엮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을 위할 때 가족이, 가족을 위할 때 일이 항상 어느 한쪽에 전념하기 어렵게 만드는 사유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그 말은 내가 오직 나 하나에 국한해서 삶을 바라볼 수 없게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나라는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삶의 범주에 한계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두가지의 충돌을 겪으면서 얻어진 생각은 하나다. “사람은 함께 살아내야 한다”는 것. 모든 것을 나라는 한 사람에 종속시켜 감당하려는 것은 책임감이 아니라 융통성이 없는 아집에 불과하다는 것 말이다.


  가장 나중에 떠올린 것은 나 자신을 위해 쓴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한동안 ‘혼자만의 시간 가지기’에 몰두했던 적이 있다. 틈틈이 혼자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공연을 보는 등 타인이 없는 시간을 보내며 자기 자신과 이야기할 시간을 가지는 일. 이건 삶에서 나와 타인의 관계를 더 명료하게 느끼게 해 주었던 것 같다. 혼자일 때와 함께 일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다고 해야 할까? 중요한 건, 혼자할 수 있는 일이어야 타인과 함께해도 좋은 일이 된다는 것이다. 혼자할 수 없어 타인과 함께하는 일이 아니라.


  그렇게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감옥같은 시간들 속에 숨쉴 구멍이 되어 주었던 것이 글이었다. 본의 아니게 주어진 무력감과 공허로움이 가득한 나날들은 또 다시 나를 찬찬히 들여다 보게 만든다. 한참 혈기왕성해서 달릴 시기에 IMF로 발목이 잡혀 있던 어느날처럼. 원래는 결혼 20주년이 되는 해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게 되었던 기념으로 신혼여행지였던 태국을 함께 여행할 예정이었다. 그 어느 해보다도 긴 봄날의 휴가를 쓰며. 하지만 다시 가보는 추억의 방콕이 아니라 평생 잊지 못할 방콕을 경험한 한해가 되고 말았다. 삶은 뜻하지 않는 시점에 나를 세워 놓는다. 하지만 이미 한번 발목을 잡혀 본 경험에 의하면 이 또한 삶에서 또 다른 변화의 지점이 되어 줄 것이다.


  지나고 나서 말이지만, 십년 쯤 후에 은퇴하고 글을 쓰리라 생각했던 것은 몽상이 아니었나 싶다. 본의 아니게 조금 더 일찍 글을 써 보며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막연함과 떠오르는 것을 표현해내는데 있어서 마주쳐야 했던 벽이 컸다. 써 놓은 글들에서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찾기란 생각보다 어려웠다. ‘글은 자신을 들여다 보게 만드는 거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거울이 특정한 단면만 보이게 할 수도 있는 것 같다. 즉, 노력하지 않으면 온전한 자신을 비춰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안의 틀을 깨보기 위해 시작했지만 쓰여진 글에는 여전히 틀을 투영한 채 자신을 숨기는 내가 들어 앉아 있었다. “나는 나에게 솔직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솔직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기보다는 솔직해지는 방법을 아직 모른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훗날 스며들듯 글을 쓰게 되리라는 것은 해보지 않은 채 품고 있는 몽상일 수 밖에 없었던 거다.


  ‘글을 쓰는 삶을 탐색해 보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실제적인 것을 찾아야 한다. 내가 쓰고 싶은, 써야만 할 글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러면서 내가 이전보다는 삶에 덜 피상적인 주체로 임해야겠다는 느낌이든다. 살아온 것은 맞지만 생각을 하며 살아온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았나 싶다. 이제서야 나는 ‘산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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