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바다 바람, 확 트인 시야, 푸른 바다, 날아가는 새와 그리고 자
생각지도 못한 일, 막연하기만 한 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일, 설마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나와는 상관없을 것 같았던 일 중 하나가 해외여행이다. 지금은 해외여행을 안 다녀온 사람이 소수이고 다녀온 사람이 다수인 시대이지만, 30년 전만 해도 아니 20년 전만 해도 해외여행은 쉽지 않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면서 지금 딸과 사위, 안사돈과 함께 하는 여행이 꿈만 같다.
오늘 갈 여행지는 카프리섬. 이름은 익숙한지만 실제로 가보는 것은 처음이다. 로마 제국 초기에 황제들의 휴양지였고, 그중 티베리우스 황제가 10여 년 머물렀다고 하는 카프리섬이 어떨지 궁금하다.
딸과 사위는 물을 좋아한다. 바다도 좋고 수영장도 좋아하고 계곡도 좋아한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다다. 물에서 노는 것을 어찌 이리 좋아하는지. 둘은 카프리섬 바다에서 놀 작정을 하고 있었다. 바다에서 놀 생각에 들떠있는 아이들을 보니,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딸과 사위가 잘 지내는 것을 보면, 참 예쁘기도 하다. 둘만 잘 지내면 걱정할 것이 없다. 속속들이 어찌 지내는지 다는 모르지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서로에게 응원해 주는 사이로 잘 발전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다.
카프리섬을 가기 위해 배를 탔다. 안사돈과 나는 배 안에서 커피와 빵을 사서 간단하게 요기를 하며, 탄성이 절로 나오는 바다를 보며 '너무 아름답고 멋있네요~' 하면서 잠시 그 풍경에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사진도 찍으며 출렁거리는 바다에 몸을 싣고 있었다.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과 새로운 풍경들로부터 오는 감동. 함께 하는 사람이 있기에, 더욱 풍요로운 여행이었다. 서로 다른 환경과 상황 속에서 살아온 이야기들을 풀어내기도 하고, 여행하며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다시 꺼내 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젊은 두 사람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배 위에 있고, 두 엄마는 배 안에서 가까이 보이는 물결을 바라보며 섬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 먼 곳까지 와서, 또 배를 타고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건지. 참 세상에는 가볼 곳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프리섬에 도착한 넷은 이곳에서 어떤 일정으로 여행할지 의견을 나누었다. 딸과 사위는 우선 바다로 향할 계획이었고, 두 엄마는 걸어서 구석구석 구경하기로 했다.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 나라 음식을 먹어보는 일이다. 두 엄마를 위해 둘은 음식을 사 왔다. 끼니때가 되면 둘은 두 엄마를 위해 마음을 많이 쓴다.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두 엄마는 그 고마움을 알기에 맛있게 먹는다. 가족을 위해 식사 때마다 메뉴를 고민하여 밥상을 차리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하루에 세 끼의 메뉴가 겹치지 않게 식단을 짜는 것은 정말 고민이 많이 되는 일이다. 그 일을 몇십 년을 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행을 오면 그 고민을 하지 않아서 좋다. 함께 의논해 사서 먹고, 만들어 먹으면 되니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부엌에서의 해방감이 얼마나 좋은지.
넷이 점심을 먹고 둘은 바다로, 두 엄마는 안나 카프리로 갔다. 가게마다 관광상품들로 가득 차 있는 곳이 있었고, 시원한 옷감으로 만든 옷들이 시선을 끌었다. 가게에 들어가 가격을 물어보았는데, 생각보다 비쌌다. 이런저런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아이쇼핑으로 만족했다. 우리는 많이 걸었던 터라, 다리도 쉴 겸 차도 한잔할 겸 근처에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로 알고 들어갔는데 근사한 레스토랑이었다. 숲 속에 들어간 느낌이라고 할까? 우연히 들어간 집 치고는 제대로 꾸며진 레스토랑이었다. 차 한잔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분위기 한 껏 나는 곳에서 맛있는 음식 또한 빠질 수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두 엄마는 아직도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쉬엄쉬엄 나누었다. 한국에서 이십 대 중반까지 살다가 미국에 이민을 가셨단다. 내가 한국에 살고 있다 보니 안사돈의 한국 추억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레스토랑에서 다리를 충전하고 다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딸과 사위는 다 놀았는지, 두 엄마가 걱정되었는지 어느새 이 곳에 도착해, 우리 앞에 모습을 나타냈다.
다시 넷이 되어 나머지 여행을 했다.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을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왜 황제들이 이곳을 휴양지로 만들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시원한 바닷바람, 확 트인 시야, 푸른 바다, 날아가는 새와 그리고 자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카프리섬. 정말 아름다웠다.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왔다. 그 길은 오솔길을 연상시켰다. 아주 시골스러운 산속 오솔길을 걸어 내려오는 느낌이었다.
하루가 참으로 긴 느낌이다.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하루가 금방 하고 지나가 버리는 것 같은데, 이렇게 먼 곳에 오니 하루 만에 너무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움직일 때마다 새롭고, 시선을 돌릴 때마다 놀라운 풍경들이 이어진다. 또 이 섬에 올 수 있을까? 또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내 마음 한구석에 멋진 카프리섬의 추억을 새겨두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