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트랜드 2. 디바이스의 미래

by 조성봉 UXer

인류사에는 불가역적인(irreversible) 전환이 몇 가지 있다. 농업혁명, 대양항해, 화약&열병기, 산업혁명, 전력인프라가 대표적이다. '불가역적인 전환'에는 3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번째는 '되돌이킬 수 없다', 두번째는 '되돌이킬 수 없을만큼 인류에게 충격적 전환을 가져왔다', 세번째는 '충격적 전환이 서서히 인류 전체에게 유포되었다'는 것이다.


서두가 좀 길긴 한데, <디바이의 미래>를 이야기하기에 앞서서 역사 얘기를 먼저 풀어볼까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런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디바이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찰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이다.



농업혁명, 인류는 항상 더 나음을 찾는다

농업혁명의 발단은 기후 변화에 의해서 촉발되었다. 약 1만2천년 전, 지구가 온난해지면서 생태계가 변화되고, 과도한 사냥으로 메머드와 같은 대형 동물들이 멸종하자, 인간은 눈을 식물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약 1만년전, 소아시아 지역의 고대인들은 쉽게 바람에 날라가버리는 야생 밀 중에 비탈락성(마디가 부러져 알곡이 땅으로 떨어지는 자연 현상) 돌연변이를 발견한다. 줄기에 오래 붙어 있어서 '충분히 먹을만한' 알곡들이 눈에 띄인 것이다. (이전의 야생 밀들은 알곡이 익기 전에 땅에 떨어지거나 바람에 날라가서 먹을 게 못되었음)

이것들이 선택적으로 채집되면서 유전적으로 살아남고, 종국에는 비약적인 수확량 상승으로 이어지다가 드디어 '재배(Farming)'라는 것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식량을 찾기 위해 여기 저기 이주가 불가피했던 인류는 Farming에 눈을 띄면서 한 곳에 정착할 수 있게 되고, 점점 더 무리를 이루고(집단화), 점점 더 남아도는 생산력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분업화), 점점 더 종교와 정치를 만드는(권력화) 수순을 밟게 된다.



대양항해, 모든 조건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꿈은 현실이 되었다

대양항해는 더 드라마틱하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딧세이'가 곧 개봉한다던데, (그 영화에도 나오겠지만) 인류에게 바다는 항상 동경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가들의 열망은 대부분 죽음으로 돌어왔다. (14세기 이전 항해는 대부분 해안선을 따라 이뤄졌다) 그러던 와중에 십자가 전쟁이 발발하고, 몽골이 유럽까지 침략해오고,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오스만 제국이 발흥하면서 이슬람과 유럽은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당장 돈 있는 귀족들이 향신료를 가져오라고 성화인데, 상인들은 그것을 할 수 없었다. 베네치아와 제노아가 지중해에서 하는 무역만으로는 유럽 전체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바다를 두려워하는 사람보다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다. 향신료 비즈니스가 가져올 어마어마한 부는 현대인이 로또 당첨에 기대하는 그것과 비슷했다(5척의 마젤란 함대 중 유일하게 살아돌아온 '빅토리아호'는 배 한대에 실어온 정향 판매 대금만으로 선박 건조비와 항해 비용 전체를 충당하고도 이익을 남겼다). 대서양의 거친 바다를 바라보던 이베리아 촌놈 몇몇이 드디어 대양에 나가기로 결심했다. 아버지 대라면 몰라도 지금이라면 대양에 나갈만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향신료 무역이 가져올 막대한 부가 심리적인 자극을 부추켰다면 아래의 4가지 기술들은 대양항해에 대한 합리적인 근거가 되었다. 중국에서 전래된 나침반, 이슬람 세계에서 발전된 아스트롤라베(천체 관측 기구), 역풍에도 항해가 가능한 '삼각돛(볼타 도마르)', 잦은 전쟁이 만들어낸 지도 제작술의 발전 등이 그것이다. 만약 이 중에 하나라도 없었다면 콜럼버스가 대서양 횡단 계획을 카스티야 여왕에게 프리젠테이션하거나, '바스쿠 다 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떠나 인도로 향할 생각(정작 그들이 가야 할 곳은 몰루카 제도였지만..)은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화약&열병기, 의도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화약은 도교 연단술사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도교는 다양한 종파가 있는데, 그 중에는 불로장생의 묘약에 일생을 바치는 종파가 있다(서양의 연금술사들과 매우 비슷하다). 이들이 불로장생의 '단약'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물질들을 배합하고 가열하는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초석 75, 숯 15, 유황 10'을 섞고 가열하자 강한 불꽃과 연기,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발견한다. 이들에 의해 저잣거리에서 눈요기로 활용되던 화약이 '무기화'된 것은 남송 시기, 몽골의 남진을 막기 위해서이다. 비록 거란(요), 여진(금), 몽골(원), 왜구들에게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던 '송'이었으나, 여러모로 문명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했던 남송은 '화창(대나무 장대 끝에 화약 통을 메달아 불을 붙이는 무기)'이라는 것을 만든다. 화창은 당시의 대몽골 전쟁에 큰 변곡점을 만들지는 못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몽골이 여기에 눈을 뜨고, 이후 서방 진출에 화약무기를 요긴하게 써먹으면서 이슬람과 서유럽으로 화약이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 초기 열병기는 대부분 성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성병기로 활용되었는데, 콘스탄티노플의 3중 성벽이 오스만 술탄 메메트 2세에 의해 무너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화약&열병기는 군대가 오랫동안 훈련받은 소수 엘리트 군인 중심에서 '총만 쏠 줄 알면 누구나 전선에 보내지는' 국민 군대로 변화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산업혁명과 전력인프라는 여러분들도 잘 알 것이기 때문에 입아프게 얘기하지 않겠다. 이 글의 본론은 여기서부터다. 인류사의 전환은 위 5가지 외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 그것이 태동된 것은 대략 80년 정도되지만, 대중화된 것은 불과 30년 밖에 지나지 않았다.


바로 '디지털&AI'이다. 화약과 열병기(칼, 활과 같은 냉병기의 반댓말)를 구분해야 하듯이 디지털과 AI도 구분짓는 것이 마땅하다. 화약이 그 자체로써의 역할보다는 총, 대포와 같은 열병기로써 우리에게 인식되듯이 디지털도 얼마 않있어 AI를 위한 재료 정도로 인식되리라 여겨진다. 앞으로 디지털이 어떻게 발전될 것인지 살펴본다.



1. '고개를 드는(Head-up)' 시대의 회귀

스마트폰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는 시대를 만들어냈지만, 스마트폰의 감각 한계(시각과 청각만 충족)와 물리적 세계와의 괴리 등은 조만간 고개를 드는 디바이스로 전환될 것이라 예상된다.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이 자연스럽게 융합되면서 시각, 청각 외에 미각, 후각, 촉각 등도 경험할 수 있는 오감 기기가 등장하는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가 '스마트 글래스'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조만간 '인간이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는 차세대 컴퓨팅 플랫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 거울 세계(Mirror World)와 공간 웹(Spatial Web)

소위 디지털 트윈이라고도 불리는 것이다. 현실의 물리적 공간을 거의 똑같이 복제하여 물리적 세계의 한계를 극복할 수도 있고, 떄로는 시간적(시간도 물리지만;;) 한계를 극복하여 과거를 경험하거나 미래를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엔비디아는 이미 '피지컬 AI'라는 화두를 내세우면서 공장 전체를 디지털로 복제한 다음, 물리적 가동 전에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최적의 생산성을 맞추는 솔루션을 내놓고 있다. 비이두 시랑(XiRang)은 도시 규모의 디지털 트윈을 통해 실시간 교통량과 에너비 소비를 관리하는 '공간 웹' 생태계이다.



3. AI 에이전트의 디바이스화 (AI Agent as Device)

아직 AI 에이전트는 LLM 또는 LLM보다 더 지능화된 AI로 인식되는 수준이지만, 조만간 AI 에이전트가 하드웨어에 이식되어 심부름 같이 인간을 보조하거나 인간의 활동을 대체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 에이전트가 특정 하드웨어에 종속되지 않고, 여러 하드웨어들을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휴머노이드 로봇에 있다가 때로는 자동차에, 때로는 집 전체에 이식되어 그 하드웨어의 특성과 맥락에 맞는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가장 주목할만한 회사가 테슬라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테슬라는 이미 SDV(SW Defined Vehicle)을 가장 완성도 있게 구현하고 있으면서 자율주행 AI에 Grok이 결합되면서 'AI 에이전트의 디바이스화'에 가장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쟁자들도 손놓고 있지는 않다. 바이두나 딥시크 같은 중국 업체들은 '스마트폰이 아닌' 별도의 에이전트 기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구글은 Vertex AI를 통해 독일의 벤츠/BMW와 협력하여 차량 자체를 거대한 AI 에이전트로 변모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중에 있다.



4. 인지 증강(Cognitive Enhancement) 도구

오래전부터 AI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뇌에 AI 칩을 심어서 인지능력을 확대시키거나 뇌와 물리적 장치(예: 로봇팔)를 연동하여 장애나 불치병을 치료하려는 시도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본인도 카네기멜론 대학이나 미국방부 DARPA에서 발표한 논문들을 2010년대 내내 관심있게 봐 었었다. 이후 중국 과학원이나 여러 빅테크들에서도 침습적 방법(뇌 두개골 내에 장치를 심는 방법. 비침습적 방법은 두개골의 두께때문에 한계가 있다)을 연구해 왔고, 그 중에서도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BCI(Brain-Computer Interface)는 인공지능에 의한 인간 소외를 막고, 인간의 생물학적 지능을 AI와 대등한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론 머스크"




5. 앰비언트 컴퓨팅(Ambient Computing)의 보편화

'눈에 보이지 않는'이라는 뜻의 'Ambient'라는 말은 2000년대 후반부터 종종 등장하던 개념이었는데, IoT 시대에 이르러 앰비언트 센서와 카메라들을 우리는 경험하기 시작했다. 지금 얘기하는 앰비언트 컴퓨팅은 단순히 센싱하는 것과는 다르다. 2가지가 다른데, 하나는 환경 자체가 컴퓨터가 되어 특정한 서비스를 인간에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센싱인데, 물리적 환경을 센싱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용자의 신체, 활동을 더 정교하게 관찰하여 필요한 서비스로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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