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의 지옥
최근 들어 몇몇 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하고 있다. 슬프게도 그중 하나는 정말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반해 어떤 연구팀은 내가 정말 이걸 왜 한다고 꼈을까 발등을 찍어버리고 싶을 만큼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잘 굴러가는 팀은 일단 1 저자가 적극적으로 진두지휘를 잘한다. 역할 분배 및 데드라인을 정확히 주고 리마인드도 팀원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잘 유도한다. 팀원들도 적극적으로 임한다. 다들 이 팀 말고도 다른 연구들도 여러 개 진행하는 분들이라 바쁘기 그지없지만 단 한 명도 묻어가는 사람 없이 책임감 있게 임하고 있다. 그 덕인지 반년만에 국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도 하고 이제 저명 학술지에 원고를 내려고 하고 있다. 논문도 1 저자가 후루룩 쓴 다음 데이터 분석과 해석을 나를 포함한 나머지 저자들이 세심하게 검토했고 몇 번의 수정을 거쳐 완성했다.
스트레스의 결정체인 또 다른 팀은 모든 게 이와 반대다. 일단 1 저자인 사람이 다른 연구에 매진하느라
이 팀에 지금 신경 쓸 상황이 아니다. 나머지 저자들도 바빠서 누가 ‘이거 어떻게 됐냐’고 물으면 그때서야 확인하고 알려준다. 리마인드 하기 전에 먼저 알아서 하는 사람이 없다. 결국 참다못한 내가 1 저자와 긴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결론은 내가 너무 예민하고 급해서 기분 나쁘다는 것이었다.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문제는 대부분 어느 한쪽만의 잘못만으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게 내 신념이다. 잘 굴러가는 연구팀의 리더처럼 좀 더 나이스하고 영리하게 리마인드 하지 못한 내 불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과연 내 예민함만으로 모든 게 해석되는 문제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 부분에 대해서 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여기서 누가 잘못했고 누구에게 더 책임이 있는지 따지기 시작하면 이미 상한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질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내게 ‘기분 나쁘다’는 1 저자의 말을 다 듣고 나서, 무조건 내가 잘못했고 내 불찰이라고 말했다. 나 또한 몇 달간 계속된 이 팀의 불협화음에 지칠 대로 지친 상황. 협업을 통한 시너지는 거의 전무한데 스트레스만 심하게 받고 있는 상태라 그만두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나 학계는 좁고, 여기서 이대로 그만두면 이 관계는 이미 파탄 났는데 결과물마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미 퀄리티는 물 건너갔으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마무리는 하자, 그러려면 일단 상대를 잘 달래야 한다는 일념으로 임했다. 그래서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는다.
최대한 조용히 그리고 비적극적으로 나는 이 연구를 끝낼 것이다. 그리고 상대가 먼저 제안하지 않는 한 앞으로 이들과 함께 연구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마 그쪽도 맘 상한 터라 내게 뭘 제안해 오는 일도 없을 것 같긴 하다.). 연구자에게 필요한 건 재능뿐 아니라 소통 능력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젝트에 바라는 진행 속도와 업무 스타일이 비슷해야 한다는 걸 배웠다. 난 빨리빨리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는 스타일인데 하나에만 집중하길 원하는 사람과 공동연구를 하려니 나만 예민하고 급한 사람이 되었다. 소통은 왜 이리도 어려운지. 한국말을 해도 한국말을 못 알아듣는 서로가 왜 이리 답답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