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기특해

그 어려운 일을 내가 해냅니다

by Yan

나는 자존감이 낮고 남 눈치를 잘 본다. 모든 것에는 일장일단이 있듯이 이런 내 성격도 뒤집어 말하면 장점이 된다. 나는 공기를 읽고 섬세해서 타인의 감정을 잘 헤아리고 배려를 잘한다. 그래서 늘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 그 뒤에는 사실 보이지 않지만 속 썩는 내가 자주 있다.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생각이 많고 자기 성찰을 잘한다. 이는 곧 불안과 우울과도 곧잘 연결된다. 5년간의 유학생활 끝에 내가 얻은 것은 예민함과 불안함이었다. 최근에 읽은 어떤 글에 따르면 외로움을 잘 느끼는 사람은 그 외로운 시간을 채우기 위해 생각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우울과 불안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유학생활은 고국에서 가족 친구들과 동떨어져 살다 보니, 게다가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하는 것이 연구이다 보니 외로움은 뗄래야 땔 수 없다. 그리고 아무래도 누군가와 부대껴 살 때에 비해 SNS 등에 의존하는 시간도 늘어나긴 한다. 그게 아니면 정말로 누구와도 연결된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나는 최근 들어 불안도가 많이 높아진 것을 자각할 때가 많다. 간혹 내가 생각해도 이 정도로 생각할 필요 없는 일에 대해 종일 생각하고 있거나, '이 일이 벌어지면 어쩌지?'하고 미리 예단해서 앞서 걱정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오늘만 해도 함께 연구 중인 어떤 교수님께 마지막으로 연락드렸던 게 한 달 전, 그간 연락 한 통 드리지 않고 이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일절 말씀 드리지 않은 것이 마음에 내내 걸렸던 차, 추석 연휴를 기회로 삼아 후루룩 분석을 마치고 마침내 연휴 후에 찾아뵙고 보고 드리겠다 연락을 드렸다. 추석 안부 인사를 핑계로 연락을 드린 것이다. 그러나 추석 당일이라 그런지 교수님은 아직도 메시지를 읽지 않으셨고 답이 없는 상태다.


추석 당일이니 바빠서 밀려드는 메시지를 읽지 않으셨을 가능성이 높고, 더군다나 내가 '연휴 이후에 시간 되실 때 말씀 주시면 찾아 뵙겠다'고 했으니 아직 언제 시간이 되는지 스케줄 확인이 필요하셔서 답신이 늦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문자를 보낸 오전 9시부터 저녁 8시가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불안을 인지하고 있다. 내 머릿속을 채운 불안한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한 달 가까이 아무 연락 없는 내게 실망하신 것 아닐까?'

'별로 기대도 안 되는 연구라서 미팅에 시간 쓰고 싶지 않은데 내가 찾아뵙겠다고 하니까 당황스러우신 것 아닐까? 어떻게 거절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안읽씹 중이신 것 아닐까?'

'워낙 업적이 없어서 빌빌대는 나를 위해 공동저자 해주겠노라고 답은 주셨는데 막상 다른 학자들을 통해 내 평판을 들어보니 영 별로인 것 같아서 후회 중이신 것은 아닐까?'


미처 여기에 다 적어 내려가지 못할 정도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온갖 부장적인 상상들....


부정적인 생각을 글로 쓰거나 말로 하면 오히려 더 부각되어 기억에 강하게 남는 듯해서, 종일 마음 한 켠에 머문 이 불안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저녁을 먹으면서 엄마에게 지나가듯 이야기를 꺼냈다.


"난 사실 이메일로 설명드려도 충분한 내용이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직접 얼굴 뵌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서, 게다가 마지막 미팅 때 빌려주신 매뉴얼 책자도 돌려드릴 겸 직접 찾아뵙겠다 말씀드린 건데, 시간 내기 난감하셔서 답장 없으신 것 같아서 좀 걱정되네.... 매뉴얼 돌려드릴 겸 찾아봬도 될지 여쭌 건데 어려우시면 그냥 이메일도 괜찮다고 추가로 메시지 보내드릴까?????'


내 불안과 예민함을 아는 엄마는 저 질문을 다 듣기도 전에 입가에 아주 연한 웃음('아이고 이 모지리 또 저 생각 때문에 하루 종일 걱정했구나.....')을 띄우며 들으시더니 이내 '그래, 그렇게 보내봐' 말씀하셨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바로 추가로 메시지를 드리고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빠 죽겠는데 시간 내달라고 조르는 무례한 사람이 될까 봐 종일 불안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생각한다. 나는 왜 이리 불안해하지? 이렇게 예민해서 결혼은 어떻게 하고 직장 생활은 어떻게 하고, 남은 인생은 또 어떻게 살지? 제 명에 살 수는 있을까? 난 대체 왜 이 모양이지?


그러나 내 주위엔 나보다도 더 예민하지만 멀쩡한 배우자와 결혼해서 잘 사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그들과 대화할 때마다 난 '세상에 나보다도 더 예민한 사람이 있다니!' 내심 놀란다. 그러나 그들은 대인관계도 좋고 배우자와도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그래, 괜찮을 거야.


12시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불안에 떤 나 자신. 이제 그만 불안해하자. 설령 내 우려대로 교수님이 날 안 좋게 보신다 한들, 그건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잖아? 나에 대한 타인의 판단이나 생각은 말 그대로 그 사람의 것이지 내 것이 아니다. 미움받을 용기란 이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건 결국 성실히 오늘 할 일을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겠지. 그리고 설령 누군가 날 미워한다 해도, 내가 나를 이뻐하면 그만이야. 불안과 싸우느라 오늘 종일 뇌 한 켠 에너지를 소모한 나 자신아, 고생했다. 사소한 것에 미리 사서 걱정하고 불안에 떠는 네가 있어 주위 사람들은 늘 좀 덜 신경 쓰고 덜 걱정하게 되지. 네 불안과 걱정은 완전히 무쓸모인 것이 아니야.


그렇지만 불안이 너를 불태워버리면 안 되니까, 이제 그만 불안을 놓아주자. 오늘 하루 열심히 살았으니 됐어. 이 세상 그 누구도 너를 모르고 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는 너를 이해해. 내가 너를 기특히 여겨줄게. 불안해하느라 수고했어.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소통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