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사랑의 이해’를 읽고

by Yan

“진짜 별로인 사람이었네. 실망이야. 나는 언제쯤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54쪽)


사람들마다 원하는 사랑의 모습,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다 다르다. 누군가는 뜨거운 감정, 주위가 화이트아웃 되어버리는 판타지 같은 요소들이 사랑이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요소들은 내게는 사랑으로 가기 위한 (선택적) 선제 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필수 조건은 아니다. ’온전한 사랑의 이해‘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와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하고 있어 반갑고 흥미로웠다.


언젠가 지인이 자신의 친구의 약혼자를 바라보며 ’저 사람은 전생에 무슨 복을 지었길래 저렇게 괜찮은 사람을 만났을까‘ 말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 지인에게는 이미 교제 중인 연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인은 남의 연인을 보며 한탄을 했다. 마치 자신은 복이 없어서 지금의 연인을 만났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나는 그 지인이 감탄해 마지않은 약혼자와도 가까운 사이여서 그 사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 사람에게도 흠이 있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저 약혼자가 친구들과 함께 밥을 해 먹고 절대 뒷정리나 설거지 따위 안 하는 배려심 0인 사람이라는 걸 얜 아는 걸까?’ 그래서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꿀꺽 삼켰던 말들. ’저 사람이 너보다 더 복이 많아서가 아니라, 본인이 좋은 사람이니까 그에 걸맞은 사람을 만난 거겠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네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면 돼. 그리고 내가 보기엔 네가 교제 중인 사람도 저 약혼자만큼이나 좋은 사람이야. 이미 특별한 사람과 교제하는 복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그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네게 없구나….‘


“…. 내 삶을 구원해 줄 특별한 관계 같은 건 나타나지 않는다. 성인이 되기 위한 첫걸음은 ‘그저 그런대로 괜찮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163쪽)


사랑이란 내가 그렇게 이상화하고 열렬히 사모했던 상대도 결국 나와 마찬가지로 연약하고 흠이 있는 하나의 인간임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함께하기로 ‘결심’하는 능동적인 행위라 생각한다. 이성관계를 넘어 사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다. 우리 모두 어딘가 별로인 구석이 있다. 그 별로인 구석을 얼마큼 참고 감당하냐는 것이 관계의 핵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별로인 구석을 발견했을 때 크게 당황하고 실망하며 관계가 틀어지는 것 같다. 사실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이 단계에서 결정 난다.


애초에 인간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으면 실망도 없다. 다소 비관적으로 들릴 수도 있는 말이지만 관점을 달리 하면 삶은 더 행복해진다. 나도 한때는 인간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인류애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어떻게 인간이 저러지? 싶은 생각에 사람들 만나는 것 자체가 싫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 사람뿐 아니라, 내 안에도 그런 구석이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의도치 않아도 누군가에게 상처를 알게 모르게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을. 다만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애초에 아무 상관도 없는 요소일 수 있다는 것도. 세상은 넓고, 인간은 모두 다 다르니까.


“사랑을 위해 누군가가 자기다움을 완전히 잃어야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니다.” (91쪽)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아무리 ‘너 자신이 돼라’는 메시지가 팽배한 시대이지만 그 뒤에 조건을 조금 붙인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다움을 잃는다 해도 그 변해가는 모습이 마음에 든다면, 그래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면, 굳이 나쁜 일이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궁극적인 사랑의 목적일 수도 있지 않을까? 부족한 두 사람이 모여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것, 이 험한 세상, 먹고살기도 바쁘고 정신없는 속에서도 사람들이 굳이 사랑을 찾고 헤매고 또 이렇게 책과 영화에 대한 수요가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드라마 속 고리타분한 대사, ‘나다운 게 뭔데!?’처럼, 가끔 스스로에게 물을 때가 있다. 나다운 게 뭘까? 자기 자신에 대해 100%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이 세상에, 특히 이 대한민국 땅에, 있을까? 한국에서 나고 자란 찐 한국인인 나는 미국에 가서 생활할 때에야 비로소 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사회가 규정한 것들로 나를 이해했다. 내가 졸업한 학교, 다니는 직장 이름, 나이, 성, 거주지 등으로 나를 규정하고 그게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언제 편안함을 느끼고 불안감에 떠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집중하고 즐거워하고, 어떤 것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지, 몰랐다.


그러나 한국을 벗어나니 내가 생각한 1에서 100까지의 스펙트럼을 넘어서 -5000부터 +5000까지 해당되는 (어쩌면 그 이상인지도) 내가 미처 ‘인간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유형의 인간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내가 한국 사회에서 배웠던 그 어떤 카테고리로도 규정할 수 없었다. 16개의 엠비티아이가 전 세계 전인구를 설명할 수 없듯이, 나를, 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다양한 요소들의 다양한 조합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나 자신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무한히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년 전, 10년 전, 5년 전, 그리고 불과 1년 전의 나는 지금의 나와 또 다르다. 남극 동굴에 혼자 들어가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나는 계속 변할 것이다. 내가 가는 곳, 만나는 사람들, 교류하는 이들을 통해.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영향을 받았고, 나쁜 사람들도 만났지만 그것을 좋게 해석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의 경험들은 다행히도 나를 긍정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성장시켜 준 것 같다. (“관계의 목적은 독립, 즉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하기 위해 개성화 과제이기에 더 성장한 나만큼 가치 있는 선물도 없다.” 201쪽)


가끔 나조차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처음엔 ‘이렇게 평생 알아가도 여전히 나를 모르다니!’하며 속상했었다. 이제는 기쁘게 생각한다. 여전히 나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이 있다. 내가 시체처럼 굳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감사하다. 어떨 때 나는 너무나 외향적이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또 어떨 때의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피곤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충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 어떨 때는 치밀하게 계획해서 일정대로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또 어떨 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숨 막힌다고 느껴져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할 때도 있다. 주어진 상황과 함께하는 이들 등 수많은 요소에 의해 순간순간의 나는 다른 양상을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이 모두 내가 “맞다.” (“사랑이란 너를 알아가기 위해 시작했다가 결국 나를 알게 되는 내면의 여행이다. 그래서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고통이 너 때문인 줄 알았지만 결국 내 탓이라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201쪽)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단순히 이성 간의 불꽃 튀는 감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찬란한 부분과 그렇지 않은 (감추고 싶어 하는) 부분, 그가 지나온 기나긴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 정의대로라면, 상대를 만나면서 자기다움을 잃는 게 아니라, 어쩌면 나조차도 몰랐던 나 자신에 대해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스갯소리지만 내 지인 중 한 명은 결혼을 하고 나서야 자신에게 이렇게 형편없는 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런데 실제로 결혼 생활은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이 같은 공간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것이니 긍정적인 놀라움보다는 (내 친구가 겪은 것처럼) 부정적인 놀라움의 연속일 것이다. (언젠가 읽었던 다른 책에서는 그 감정을 가리켜 ’환멸‘이라 표현했다.)


“자의적으로 과대평가한 연인의 모습이 진짜가 아니라 실제로는 훨씬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아름다운 외모의 이면에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져 있다는 걸 직면했을 때 뒷걸음질 치며 상대를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라 부를 수 없으며 이런 사랑에 익숙한 자는 사랑에 매우 미성숙한 사람이다.” (137쪽)


사랑은 그 환멸과 실망을 넘어설 때 비로소 시작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너에겐 내가 좋아하는 구석이 있지. 내가 너를 아끼는 이유, 이 세상 그 누구도 아닌 너에게서 내가 보는 것들이 있지,라고 연민과 애틋한 마음으로 말해주는 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연인 관계를 넘어서서 오늘 하루 내 일상을 채워주는 사람들에게, 내 연약함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내 곁에 남아주는 이들에게 ‘나도 네 곁에 머물러 주겠다’고 지지해 줄 수 있는 벗이 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들이 내게 해준 것처럼.


”사랑이란 다른 색의 타자,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만나 자유롭게 그림이라는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중략) …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색을 수용한다면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해진다. 무한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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