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by Yan

나에게는 아무 고약한 버릇이 하나 있다. 데드라인이 임박할 때까지 최대한 미루는 버릇이 그것이다. 예전에는 게을러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최근 그것이 '완벽주의자'들의 흔한 특징 중 하나임을 알게 되었다. 완벽주의자들은 남들보다 '잘한 것'의 기준이 높아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크다 보니 시작이 엄두가 나지 않고, 또 이런 완벽주의자들의 경우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영혼을 불태워서 임하기 때문에 시작에 앞서 느끼는 부담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크고,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원인이 되어 자꾸만 뭉기적거리며 일을 미루게 된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완벽주의가 바로 이번 일의 화근이 되지 않았나 싶다. 귀국 직후에 가까운 교수님들께 연락을 돌렸는데, 슬프게도 다들 바쁘신지 답신이 없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빠르게 거의 연락 드리자마자 바로 답을 주신 교수님이 계셨다. 사실 예상 밖이었다. 유학 가있는 동안 가까워지긴 했지만 사실 다른 교수님들 틈에 껴서 뵈었지 1대 1로 이 교수님과 뵌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연락 주신 것이 감사해서 냉큼 찾아뵙고 인사를 올렸다. 교수님이 밥도 사주시고 이런저런 안부를 물어 주셨다. 내가 업적이 없어서 당장 임용되긴 힘들 것 같다는 고민을 나누었더니 이런저런 조언도 주시고, 필요하면 추천서도 써줄 테니 이야기하라고 (미국 지도교수님이야 미국에선 강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실 별 힘이 안 될 수도 있다면서) 말씀하셨다. 게다가 심지어 내가 졸업 논문에서 다룬 실험 하나를 방법론을 바꾸어서 확장하는 연구를 구상 중이었는데 그 연구도 마침 할 수 있는 실험 장비가 당신께 있으니 도와주겠노라고, 그럼 공저자로 해서 논문을 어서 쓰라는 말씀까지 주셨다.


내 연구를 직접 들어보신 적도 없고 (이날 밥 먹으면서 간략히 설명드린 게 전부였다) 기껏해야 해외 학회에서 몇 번 내 발표를 보신 게 다인데도 어떻게 이 미천한 프레시 박사에게 공저자를 제안하시지 싶어서 놀랍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이제 갓 박사를 딴 생초짜 나로서는 엄청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더 열심히 했어야 했다.... 이제 와서 후회해 봤자 늦었지만.


교수님과 만나 대화한 것이 7월. 그리고 교수님의 지도학생 중 한 명이 실험을 해주었다(그 학생만이 그 장비를 다룰 줄 안다고 했다). 그게 8월 중순이었다. 그리고 이내 개강을 했고, 나는 생전 처음 맡는 강의 준비를 하느라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지냈다. 그 와중에 해외 저명 학술지에 논문을 냈고, 수정을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추석이 되었다. 세상에, 벌써 두 달이나 지났잖아? 사실 좀 더 일찍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에 '내일 하자' 미루다가 추석이 되니 이제는 더 이상 미뤄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석 연휴 인사를 드릴 겸 문자로 안부를 여쭙고 이 논문 관련해서 찾아뵙고 상의드려도 될지 여쭤 보았다. 교수님은 추석 당일이라 그런지 답신이 없었다.


이틀 후에 답이 왔다. 추석이라 바빠서 답이 늦었다며, 연휴 끝나고 다시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다. 그리고 어제, 전화가 왔다.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결과가 괜찮게 나왔고 이걸로 국내 학술지 어디 어디에 낼까 생각 중인데 혹시 더 좋은 추천해 주실 만한 곳이 있으실지 여쭤 보았다. 그런데 교수님 대답이 내 예상과 달랐다. 일단 내 졸업논문을 바탕으로 한 논문인데 이걸 지도교수도 아닌 당신이 나와 공저자로 출간하는 게 좀 부적절한 것 같다는 게 요지였다. 미국에 계신 내 지도교수님에게는 사실 일찌감치 이 점에 대해 여쭈었지만 지도교수님은 '당장 네 단독저자 업적이 있어야 교수되기 쉬우니 내 이름은 안 넣어도 된다'라고 하신 상태였다. 그래서 이 연구 외에도 내 박사논문의 가장 중요한 챕터를 다듬어서 해외 학술지에 냈고 그 논문은 현재 심사받고 있는 중이다.


이 한국 교수님과 같이 내려던 논문은 아이디어는 박사 논문에서 가져왔지만 방법론이 다르니 나는 별개라고 생각했는데, 교수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보통 졸업논문은 지도학생이 1 저자, 지도교수가 2 저자, 그리고 그 외에 커미티 교수님들 중 크게 기여한 분이 계시면 그분들을 그다음 저자들로 넣는 게 관례다. 이 한국 교수님은 당신께서 내 박사 논문에 대해 기여한 바가 없으니 지도교수 대신 당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게 관례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납득이 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나에게는 아주 지독한 완벽주의 말고도 또 하나의 지독한 구석이 있으니, 바로 임포스터 신드롬(Imposter syndrom)이 그것이다. 임포스터 신드롬은 흔히 학계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증상 중 하나인데, 자신이 이룬 성과나 업적이 그저 운이나 환경에 의해 우연히 얻어진 것일 뿐 자신의 실력이나 재능은 형편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세상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학계는 특히나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분야다. 일단 박사 학위를 따기 위해 논문을 쓰고 통과하려면 최소 5명의 심사위원들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졸업 후에는 각종 학술대회와 학술지 심사위원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그럼 꿈꾸던 교수가 되고 나서는? 가르치는 학생들, 함께 일하는 동료 교수들로부터 평생 퇴임할 때까지 평가를 받는다. 종신교수가 되고 나면 괜찮지만 그 전까지는 평가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당연히 연구는 잘 알려지지 않고, 승진도 어렵고, 심지어 학교에서 잘릴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나를 비롯해 내 주위에 학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 중에 이 임포스터 신드롬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시 그 한국 교수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교수님께서 논문에 이름을 넣지 말고 내 단독저자로 가라고 하시는 말씀을 수화기 너머로 듣는데, 논리적으로는 납득이 되면서도 막상 마음속으로는 다시 내 가장 깊은 곳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임포스터 신드롬이 고개를 쳐드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너무 멍청해서 나와 엮이기 싫어 이 연구에서 발 빼시려는 걸까?


왜냐하면 사실 이미 처음부터 이게 내 박사 논문에 근거한 연구란 걸 알고 계셨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위와 같은 이유로 이름을 빼겠다고 하시는 게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이전 미팅에서 당시 나보고 읽어보라며 하드카피로 된 매뉴얼을 하나 주신 게 있었는데 (당시 소프트 카피도 있으니 걱정 말고 빌려 가도 된다고 하셨다), 그럼 이거라도 돌려드리게 찾아뵈어도 될까요 했더니 '그건 그냥 버리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학회에서 한 번쯤은 만날 법도 한데 나중에 기회 되면 돌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버리라고 하시는 말씀을 듣는데, 순간 '나를 다시는 안 보시겠다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머릿속이 캄캄해졌다. 그리고 이내 내 임포스터신드롬에 기인한 불안한 감정이 화르륵 불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두어 달 전에 미팅을 마쳤을 때 마침 이 교수님께서 편집장으로 계신 학술지 논문 하나를 내게 리뷰해 달라고 요청하셔서 리뷰해 드린 게 별안간 떠올랐다.


'아, 그때 내가 한 리뷰가 너무 형편없어서 내 실력이 들통 난 걸까? 그래서 앞으로 나랑 연구는커녕 상종도 말아야겠다고 생각하신 것 아닐까?'


귀국 후 강의 준비로, 또 해외 학술지에 내는 논문으로 이래저래 정신없기도 했고, 또 주위에 비슷한 시기에 졸업한 이들이 하나둘 교수로 임용되는 걸 보면서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던 중에 이 일을 겪으니 뭔가 더 갑절로 힘들게 느껴졌다.


결국 그날밤 교수님과의 그 통화로 인해 너무 좌절한 나머지 힘겹게 잠이 들고 오늘 아침에까지 그 여파가 이어졌다. 너무 우울하고 괴롭고 절망스러워서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가망이 없어 보여서 유학을 괜히 갔다 왔나, 교수가 될 수는 있을까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에 불안과 걱정으로 점철된 최근이었는데 거기에 불을 지른 격이었다.


오후에는 강의 나가는 학교에 출근도 해야 하는데 도무지 침대에서 일어날 힘이 없었다. 내가 그 망할 완벽주의 때문에 미루지만 않았다면. 조금 더 일찍 논문 작업을 해서 연락드렸다면 교수님이 잘 도와주셨을까? 한 달 넘게 연락 없는 나를 보며 '싹수가 노랗네' 싶어서 공저 제안을 철회하신 것 아닐까?


'내가 다 망쳤어... 이 좋은 기회를 내가 날려 버렸구나.'


펑펑 울면서 오전을 보내고, 그래도 갑자기 휴강은 할 수 없어 꾸역꾸역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학교로 향했다. 마음 같아서는 시체처럼 침대에서 누워 있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괴로워하며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강의를 했고, 집에 돌아와 남은 일을 마저 처리하고 난 다음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내가 나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한국 교수님의 공저 철회가 마음 아프게 다가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실력이 없고 부족한데, 그래서 그런 못난 모습을 그 교수님께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 교수님(을 비롯해 다른 모든 학계에 있는 이들)에게 똑똑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보이고 싶은데, 그건 내 모습이 아니기 때문에, 그 괴리에서 오는 좌절이 어제부터 오늘까지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러면서 졸업 논문 심사를 했던 날의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임포스터 신드롬이 나를 괴롭힌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박사 과정을 시작할 때부터 시작되어 박사 과정 내내 나를 따라다녔다. 내가 부족한데 어떻게 하다 보니 운이 좋아서 박사 과정에 붙은 것이라 생각했다. 지도교수님이 날 별로 맘에 안 들어 하지만 내쫓을 수 없으니 품고 계신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논문 심사일에까지도 그 생각은 이어졌다. 심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저녁에 친구들과 파티를 하면서도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장학금 받는 기간이 이번 학기를 끝으로 종료되므로 그전에 졸업시켜야 해서 어쩔 수 없이 통과시켜 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파티를 하면서도 나는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은 똑똑하고 재능 있는 학자인데, 실제 내 모습은 그렇지 못하니 괴로운 거구나....


그런데 이 무거운 마음과 우울감으로도 꾸역꾸역 강의를 하고 학생들과 소통을 하고 돌아온 이 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 이게 나다. 이 부족하고 멍청하고 게으른 모습이 나란 말이다. 어쩌겠나. 열심히 해도 내 머리가 이 정도이고 내 실력이 이 정도이고, 심지어 근성도 이 정도인 것을. 이게 내 한계다. 노력도 재능이라 했던가. 내 노력이 이 정도인 것도 어쩌면 내 실력일 수도..... 유학 기간 동안 만났던 명문대 출신들 학생들을 보면 역시 남다르다 싶긴 했다. 그들은 똑똑하기도 했지만 정말 성실했다. 나는 그 정도로 성실하지 못하다.


이게 나다. 이 부족한 나. 똑똑하지 못하고, 박사 마쳤음에도 여전히 논문 데이터를 보면 왜 이렇게 분석했지? 의아해하는 나. 그 교수님이 나를 멍청하다고 생각하셨다 해도, 어쩌겠는가, 이게 내 모습인 것을.


그냥 부족한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구나. 그리고 그렇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는가? 괴로워할 시간에 차라리 논문을 읽고 공부를 더 하자. 이제 와서 어디 회사에 취직할 수도 없다. 그냥 꾸역꾸역,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발전을 위해.


마침 공저자로 함께 논문을 쓰고 있는 친구에게서 학술지에 제출하기 전 최종 검토해 달라는 논문 원고가 있어 꺼내 들었다. 주르륵 읽어 내려가면서 검토하다 보니 그래도 우리가 이만큼 해냈다 싶고, 친구가 수정한 부분을 보며 '와 이렇게도 문장을 쓸 수 있구나 잘 썼다' 감탄하며 다시금 또 배운다.


어제는 정말 다 그만두고 싶고, 재능도 없는 주제에 꿈만 크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는데, 오늘은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그냥 이 부족하고 형편없는 내게 연민이 생긴다. 이 세상에 내가 나를 구박하면 누가 날 이뻐하리. 나라도 위로해 주면서 오늘 저녁에 잘 재워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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