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역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by Yan

오늘 우연히 어떤 사람과 대화를 나누다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해서 이 포스트를 쓴다. '과거에 난관에 처했을 때 친구나 동료에게서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화 중이었다. 나는 유학 기간 동안 친구들 및 교수님들로부터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박사 과정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유학은 정말 너무나 힘들고 고된 과정이기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같이 공부하고 고민도 함께 나누곤 했다는 말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듣던 한 사람이 갑자기 흥분해서는 '친구에게 감정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면 안 된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자신의 아버지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힘든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너 혼자서 삭혀야지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안 된다고 했단다. 언젠가 자신이 아버지에게 힘든 점을 이야기했다가 크게 혼났다면서, 친구에게 그런 것을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아주 강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당신은 한 번도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은 적이 없냐고. 그의 대답은 'yes'였다. 엥? 도움을 언제 받았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외국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직장 동료가 많이 도와줘서, 그의 도움 덕분에 회사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거기까지 들었을 때 나는 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나랑 장소만 다르지 결국 같은 이야기 아닌가? 미국에서 대학원 과정 동안 친구에게서 도움 받은 것과, 해외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동료에게 도움 받은 거랑, 뭐가 다르지?


그리고 이내 한 가지 더 질문이 떠올랐다. 당신은 아버지가 틀렸다고 하면 그걸 다 믿나요? 아버지가 말씀하신 것은 모두 진리라고 생각하고 따르나요? 미처 두 번째 질문은 던지지 못했지만 (그러면 정말 심각한 논쟁이 생길 것 같아서였다), 이 두 번째 질문이 오늘 나로 하여금 이 블로그 포스트를 쓰게 만들었다.


친구에게 감정적인 어려움을 토로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면서, 회사 동료의 도움은 기꺼이 받았다는 것은 사실 내게는 모순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그가 직장 동료로부터 감정적으로 도움 받은 것은 하나도 없고, 온전히 기술적인 부분이나 업무적인 부분만 도움 받았다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치자면 나도 데이터 분석이나 논문 작성 등 학업적인 면에 있어서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도움을 받으려면 대화를 하고 상호작용을 하게 되므로) '난 나만 박사 과정에서 고생하는 줄 알았는데 나만 힘든 게 아니고 남들도 다 이런 게 힘들구나, ' 내지는 '이 친구는 겉 보기에는 하나도 어려운 것 없이 똑똑하고 완벽해 보이는데 이 친구도 나름의 고충이 있구나' 등의 깨달음을 통해 간접적으로 감정적인 지지와 도움을 받게 된 것이었다. 그가 그 정도로 격하게 (앞서 말한 내가 무안할 정도로) 반응해야 할 이유가 사실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갑자기 문득 그 사람의 그 강하고 단호한 표정이 생각나 다시 오늘의 그 대화를 되짚어 보니, 어쩌면 그는 강한 부정으로 오히려 내 말에 가장 강하게 동의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에게 감정적으로 힘든 것을 표출했을 때가 어쩌면 그에게는 살면서 그 어떤 때보다 가장 절실히 누군가의 위로와 정서적 지지가 필요했던 때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아마도 그것은 다 큰 성인이 된 이후보다는 어렸을 적의 경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으로부터 그 SOS 요청이 거절당했고 되려 호되게 혼이 났던 그날의 사건이, 이후 성인이 되어서도 그로 하여금 힘들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게 된 것은 아닐까?


특히나 한국에서는 남자가 지나치게 감성적이거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대해 요즘은 모르겠으나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 때만 해도 남자답지 못하고 잘못된 것, 고쳐야 할 것으로 여겨졌던 분위기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성격과 기질이 있는데, 남자라고 눈물이 많고 감성적이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오늘 나와 대화를 나눈 그 사람은 기질과 성격이 그렇지 못한데 부모의 압박과 가르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강인해져야만 하는' 환경에서 양육된 것 같았다.


너무 친구에게만 의지해 모든 것을 토로하고 상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것은 당연히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힘든 것을 이 세상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고 혼자서면 삭히면서 사는 것도 과연 좋은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인생은 결국 혼자 사는 것이고, 모든 건 온전히 내가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죽도록 힘들 땐 친구에게 한 번쯤 손을 뻗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게 우리가 서로 어울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이유 아닐지.


동시에 어려서 부모로부터 받은 양육 가치와 관념이 얼마나 강하게 성인이 되어서도 남는지를 오늘 그 사람을 보며 새삼 실감했다. 내 친구 중에는 힘든 일이 있을 때 혼자서 감당하기에 문제가 없고 남에게 힘든 점을 털어놓는 걸 오히려 더 귀찮아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진짜 멘털이 강하고 독립적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성향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대화를 나눈 그 사람은 사실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실제 자신의 성향은 그렇지 않은 사람인데 (친구와 힘든 것을 공유하고 정서적인 지지가 필요한 사람인데) 누구에게도 고민을 공유하고 힘든 걸 이야기하면 안된다고 평생 부모에게 세뇌당하며 살아온 사람 같았다. 그래서 내가 더 그와의 대화, 그가 나눈 그 불안한 눈빛과 강한 어조가 기억에 남았는지도....


내가 나중에 부모가 되어 아이를 기른다면, 나도 모르게 내 가치관과 신념을 아이에게 강하게 주입해서 아이의 기질이나 성향을 무시한 채 기르게 되는 일은 없는지 늘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잘 파악해서, 그에 맞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한 '온전한 인간'으로 키워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새삼 느꼈다. 기승전 '양육'이라 좀 정신없는 오늘의 일기.

작가의 이전글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