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코드로 읽는 데미안
데미안의 주제를 물으면 흔히 선과 악의 공존을 통한 개인의 내면적 성숙을 답한다. 그러나 그건 절반의 해석에 불과하다. 내재적 관점에서 나아가 외재적 관점에서 데미안을 다시 만나보자.
데미안을 관통하는 중요한 시대 코드는 전쟁이다. 헤르만 헤세는 1차 세계대전 직후 데미안을 집필한다. 성인 싱클레어가 데미안과 통합을 이루는 장소 역시 전쟁터이다. 전쟁이란 대규모의 살육 현장이다. 가장 많은 인간들이, 가장 많은 인간에 의해 파괴되는 곳. 그 불편한 광경을 목격한 개인들은 고뇌에 빠진다. 나는 이처럼 쉽게 파괴되며, 파괴되어도 되는 존재인가?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만 한다.
역설적이게도 전쟁은 인간 존엄에 대한 숙고를 수반한다. 그렇기에 전쟁과 인간의 존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이다. 전쟁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면 데미안 역시 개인의 에피소드를 거쳐 인류 보편의 가치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은 데미안의 서문.
처음은 나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이후 나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이야기가 되고, 한 인간의 이야기는 모든 인간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내 이야기는 그 어느 작가에게 그러한 것보다 한층 더 '나'에게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인 까닭이며 또 그것이 '한 인간'의 이야기-가상적이고 존재할 가능성이 있고 또 이상적인 혹은 어떻든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것이 아니라, 즉 실재하는 단 한 번만의 그리고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인 것이다.
실재의 살아 있는 인간, 그것이 무엇인가는 오늘날 확실히 옛날만큼은 알려져 있지 않다. 각자가 자연의 귀중하고 단 한번만의 시도인 인간들이 다량으로 사살당하고 있는 형편임에랴. 만일 우리가 한 번만의 인간 이상의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총알 하나면 세상에서 간단히 제거해버릴 수 있는 존재들에 불과하다면, 이 이야기는 써 내려갈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자기 자신 이상이다. 유일무이하고 특별하며, 세계의 현상들이 시간 속에서 딱 한번씩만 교차하는 엄청나게 놀라운 지점이다. 그래서 모든 개인들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영원하며, 신성하다.
자연의 의지를 실현하며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든 경이로운 존재로서 주목받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개인은 자신의 내면에서 정신의 형체를 갖춰 가고, 신의 피조물로서 고통받으며, 저마다의 구세주를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다.
오늘날 인간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기는 한다. 그러므로 해서 내가 이야기를 다 써버리면 더 쉽사리 죽어갈 것처럼 그들은 더 마음 가볍게 죽어간다.
상반신만 인간이 되고 하반신은 물고기로 남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모두가 인간이 되는 행운을 바라며 자연이 던진 대담한 시도들이다. 우리 모두가 같은 어머니, 대지의 여신에게서 탄생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모두가 똑같은 협곡, 저 깊은 심연에서 내던져진 주사위들이어도, 저마다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날아가려고 치열하게 노력한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지만,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