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괴감은 이제 충분합니다
말의 파급력, 대통령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이다. 불과 한두 달 만에 ‘이러려고 OOO이 됐나’ 반성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흑역사를 떠올릴 때나 입에 올렸던 ‘자괴감’을 흔하게 사용한다. 처음엔 분명 조롱 섞인 패러디였는데 슬슬 말이 씨가 될까 겁난다.
생각해보면 대국민담화가 있기 전부터 우리는 이미 필요 이상으로 반성하면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대부분의 자괴감은 커 보이는 남의 떡에서 비롯된다. 안타깝게도 이제 ‘엄마 친구 아들’과는 마음 편히 친구가 될 수 없다. 과대 포장된 롤 모델은 희망 대신 절망을 안긴다. 평범한 뱁새들은 왜 쫓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등 떠밀려 달리다 다리가 찢어져 주저앉는다.
선우정아도 ‘뱁새’를 노래한다. 다른 새의 넓은 둥지, 비싼 깃털, 힘센 날개가 부러워서 큰 맘 먹고 걔들이 입는 값비싼 외투를 장만했다. 그러나 기대완 달리 거울에 비친 모습이 너무 어색하다. 내가 이러려고 비싼 옷을 샀나 자괴감이 들 법한데, 의외로 뱁새의 결론은 간단하다. “이건 내게 어울리지 않아.”
나를 탓할 필요 없다. 대통령이든 가죽바지든 안 어울리면 옷을 벗으면 된다. 뭘 하든 우리는 이러려고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