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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개울음뱅이 Jan 11. 2019

2018 아시안컵 필리핀전을 보고

2019년 1월 7일, 이겼으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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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컵 개막전을 앞두고 예상한 선발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1선 황의조
2선 황희찬/이재성/이청용
3선 정우영/기성용
4선 홍철/김영권/권경원/김문환
골키퍼 김승규


네 명이 틀렸다. 홍철 대신 김진수, 김문환 대신 이용, 권경원 대신 김민재, 이청용 대신 구자철. 구자철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진됐고 이재성과 황희찬이 양 사이드에서 뛰었다. 필리핀이 약체인 만큼 김문환을 기용해 공격력도 활용하고 이용의 체력도 세이브하지 않을까 싶었다. 김진수는 아직 선발 라인업에 들어올 만큼 경기 감각이 올라오지 않았을 거라 생각했다. ‘패스 앤 무브’ 능력이 뛰어난 이재성과 이청용이 시너지를 내고, 스타일이 다른 황희찬은 공격에 의외성을 부여하는 콘셉트.

몇 개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늘 제몫을 해내던 김진수는 국가대표 데뷔 후 최악의 경기를 했고, 이청용이 투입된 후에야 이재성을 비롯한 2선이 살아났고, 황희찬은 필리핀 수비수들을 당황시켰다.
또 몇 개의 예측은 틀렸다. 필리핀은 단단한 수비와 날카로운 역습으로 한국을 몰아붙였고, 이용을 비롯한 수비진들은 연거푸 경고를 받았다. 경험이 부족한 김문환의 선발 출전은 위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황희찬은 어이없는 패스미스로 한국 선수들까지 당황시켰다.

결과적으로 이겼다. 어찌되었든 승점 3점을 얻었으면 됐다. 다음 경기에서 오늘과 같은 경기력을 보인다면 문제지만, 일단 첫 단추는 잘 꿴 셈이다. 기성용의 부상이 아쉽지만, 현재 대표팀에서 그의 존재가 대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말이 나온 김에, 기성용의 역할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지금 대표팀에서 볼을 돌리는 건 정우영이다. 원래 기성용이 맡던 롤이다. 그럼 기성용은 뭘 하나? 흔히 말하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 역할을 해야 맡은 듯 한데 어정쩡하다. 그는 원래 활동량, 침투 능력을 무기로 하는 선수가 아니다. 그가 볼을 돌리고, 그의 자리에 황인범이나 이재성 같은 선수가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필리핀처럼 수비적으로 나오는 팀과의 경기에서는 더더욱. 어쨌든 경기는 끝났고 기성용은 부상을 당했으니 벤투 감독이 어떤 대안을 내놓을지, 다음 경기를 보고 얘기할 일이다.

아래는 선수들에 대한 인상평이다.

김승규는 제몫을 했다. 몇 번의 위협적인 슈팅을 잘 막아냈다. 벤투 감독이 강조하는 빌드업 능력은 선보일 기회가 거의 없었다.
김영권과 김민재 역시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사이드 커버가 매끄럽게 이뤄지지 못해 여러 차례 역습에서 마무리 슈팅까지 허용했다. 이 정도 수비의 단단함으로는 토너먼트에서 이란, 호주와 같은 강팀을 압도하기 힘들다.
김진수는 예전의 민첩성을 잃었다. ‘오버래핑’이 아니라 아예 공격 진영에’ 포지셔닝’함으로써 오히려 공간을 죽여버렸다. 공을 잡았을 때도 상대 수비수를 제껴내지 못했고 경기 막판에는 사소한 볼 터치 미스까지 보였다. 원래 잘하던 선수이기에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한 과정이길 바란다. 내가 꼽은 오늘 경기 워스트는 김진수다.
이용은 늘 그랬듯 성실했지만, 두드러지지는 못했다. 이런 경기에서는 풀백에게도 변칙적인 움직임이나 패스가 요구된다. 수비에서도 상대를 효과적으로 막지 못해 경고를 받았고, 이후에도 한 번 더 경고를 받을 법한 파울을 범해 퇴장 당할 뻔 했다. 노련함이 부족했다.

정우영은 그다운 경기를 했다. 그는 공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고 의욕 넘치지만 3선 미드필더로서 기성용에 미치지 못한다. 기성용을 뛰어넘으려면 실수를 줄이고 판단의 정확성을 높여야 한다. 이번 경기에서는 실수도 많이 했고 판단도 부정확했다. 그 역할은 기성용이 더 잘한다. 정우영이 대표팀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현재 맡은 역할의 완성도를 기성용 급으로 높이거나, 다른 무기를 개발해야 한다.
기성용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가 나간 뒤에 공격이 풀리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야박하긴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전반에 그가 맡은 역할은 황인범에게 더 잘 맞는 옷 같다. 물론 현재 선수단에서 소위 ‘축구력’이 가장 높은 사람은 여전히 기성용이다. 난 그가 정우영 대신 포백 앞에 서서 볼을 돌리길 바란다. 그동안 대표팀에서, 그리고 현재 뉴캐슬에서 그랬듯. 일단 부상에서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구자철의 기용은 모험적이었고, 실패했다. 그는 몇 번의 쉬운 패스를 실수하며 공격의 흐름을 끊었다. 골이나 어시스트에 근접하는 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그가 화면에 잡힌 건 페널티 박스 근처에서 상대의 파울을 유도해 프리킥을 얻어낸 두어 번의 장면이다. 보통 EPL 중계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면 파울한 상대 선수는 아쉬워하고, 해설자들은 파울을 유도한 선수를 칭찬한다. 강팀끼리의 라이벌 대결이거나, 약체가 강팀을 상대할 때가 대부분이다. 공격 찬스를 만들기 힘든 경기에서 위협적인 데드볼 상황을 만드는 건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강팀이 약팀을 상대할 땐 프리킥을 얻어내는 데에서 만족하면 곤란하다. 넘어지지 말고 더 좋은 위치의 동료에게 패스하거나 직접 골을 노려야 한다. 아시안컵에 출전한 한국은 분데스리가의 아우구스부르크와 입장이 다르다. 구자철은, 그리고 벤투 감독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이재성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뛰었고, 보이지 않았기에 아쉽다. 언제부턴가 대표팀에서의 이재성은 늘 그랬다. K리그의 최우수 선수였고 유럽 무대에서도 활약 중인 그는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조금 더 가시적인 활약을 할 필요가 있다. 박지성도 2002 월드컵 전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뛰었지만, 팀에서 큰 보탬이 된다고 말하기는 힘든 선수였다. 그의 가치는 측면 공격수로 자리를 옮겨 가시적인 활약을 펼치면서 드러났다. 이재성도 그런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황희찬은 욕 먹기 딱 좋은 선수인 동시에, 상대팀 선수들이 버거워하는 유형의 선수다. 힘이 좋고 저돌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의외성을 갖고 있다. 어시스트가 된 패스와 직전 움직임은 훌륭했다. 그리고 답답한 경기에서 몇 번의 시원한 돌파를 시도했다. 드리블 시도는 괜찮다. 그러나 어이없는 패스 미스는 줄여야 한다. 그가 했던 패스미스가 곧바로 상대의 역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몇 번이나 보였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은 대회에서 우승을 노리는 팀 입장에서 손에 쥐고 있기 부담스럽다.

황의조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완벽한 스트라이커다. 이동국과 달리 소속팀 활약을 대표팀에서도 이어가고, 김신욱에 비해 민첩하고, 석현준보다 연계 능력이 뛰어나고, 지동원보다 등지는 플레이를 잘하며, 이정협보다 골을 잘 넣는다. 이번 대회 가장 유력한 득점왕 후보다.

키르기스스탄전 예상 라인업은 다음과 같다.

1선 황의조
2선 황희찬/황인범/이청용
3선 정우영/주세종
4선 홍철/김영권/김민재/이용
골키퍼 김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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