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 내 슬픔을 빨아먹고 사는 사람들

회전초밥

by 남다름

글에 앞서 이 글은 무제한 회전초밥집을 욕하려고 함이 아니다. 그곳에서 한 끼의 만찬을 즐기는 중년의 사람들을 비웃는 게 아니다. 이 글은 내 추억에 대해 논하는 글이다. 그러니 내가 서툴게 서글픔에 논한다고 어느 한 대상을 두고 손가락질하는 게 아님을 미리 밝힌다.




아빠가 처음으로 수원역에 가자고 했다. 살아온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 아빠가 수원역에 가자는 말은 실로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수원역에 행차하게 되었다. 회전초밥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신나게 준비를 하고 나섰다. 근래에 수원역에 갔을 때 백화점 내에 있던 회전초밥집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빠는 기대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차는 기대와 달리 로데오 부근에 있는 유료주차장으로 향했다. 백화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음속 불안이 형태를 갖추며 요동치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린 아빠가 위풍당당하게 앞서 걸어 도착한 곳은 축축함을 머금은 도로가에 위치한 무제한 회전초밥이었다. 식당에 들어서니 그 시간에도 사람이 제법 있었다. 직장동료인지 아니면 비슷한 연배의 지인인지 모를 아저씨 두 분과 점심을 함께하는 엄마 나이 때의 아주머니 모임, 그리고 이제 막 20대의 티를 내기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알바생의 무기력한 안내를 받아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고 미처 옷도 벗지 못한 채 그대로 앉아 돌아가는 회전판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아빠가 물었다.



밑반찬 뭐 가져다줄까?



나는 그 물음에 목구멍이 턱 막히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는 내 답에 아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셀프 샐러드 바로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금세 자리로 돌아온 아빠는 한 그릇의 접시에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에 아빠가 좋아하는 볶음우동을 반반 담아왔다. 길게 늘어선 자리에 불편하게 앉아 아빠가 고개를 숙여 볶음우동을 흡입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떡볶이는 한입도 먹지 않았다. 한 번 더 먹으라고 권하는 아빠에게 그런 밑반찬으로 배를 불릴 수 없다며 돌아가는 회전초밥대로 눈길을 돌렸다. 아빠는 역시 내 식탐이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돌아가는 회전초밥에는 다양한 종류의 초밥 그릇이 겹겹이 쌓여있었다. 아빠는 내가 좋아할 만한 접시를 몇 개 집어 내 앞에 정렬했다. 어렸을 때 환장하게 좋아하던 장어가 세 접시 놓였고, 익힌 새우도 놓였다. 그러나 나는 이제 입맛이 변해 장어초밥은 먹지 않고 익힌 새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식성이 변했다는 걸 따로 알리지 않게 허겁지겁 집어 먹었다. 아빠 또한 여러 종류의 초밥을 부지런하게 집어 당신 앞으로 끌어갔다. 그러고는 배 터지게 먹으라고, 누가 더 접시를 높게 쌓아 올리는지 내기를 하자는 말이 뒤따라왔다. 나는 그저 그러자고 답하며 그중 내가 가장 좋아할 만한 접시를 가져왔다.


문득 아빠와 처음으로 회전초밥을 먹었던 때가 생각났다. 내 생애 처음으로 접해본 초밥이었다. 밥알은 촉촉했고 위에 놓였던 회는 어린 내 입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륵 녹았었다. 그 어린 나이에 초밥을 18 접시를 먹었던 걸 보면 나는 그 맛의 풍미에 감동했던 게 분명했다. 나는 그 뒤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항상 초밥이라고 답했다. 그만큼 내가 초밥에 보이는 애착은 남달랐다. 입이 짧아 금방 질려하는 내가 초밥이라면 환장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로 초밥을 애정 하는지 알만했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밥을 위해 차를 타고 멀리 외곽까지 나가 20만 원 상당의 저녁 식사를 했던 때가 돌아가는 초밥 접시들을 보며 겹쳐졌다. 런치타임에는 12,900원, 일반 런치 13,900원. 한 시간 늦게 와 일반 런치로 초밥을 먹게 된 나와 아빠. 퍼석퍼석한 냉동 연어가 입술의 감각을 건드리며 요동쳤던 마음을 울려버린 건 순간이었다. 자식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양껏 먹이고픈 아빠의 마음이 13,900원이라는 생각에 나는 결국 집에 와서 눈물을 흘렸다. 숨겨둔 맛집은 내가 아는 누구보다 가장 많이 알고 있던 아빠였다. 내 혀의 고급화에 일조한 아빠의 맛집 탐방이 이제 완전히 끝나버렸음을 오늘에야 선고받은 느낌이었다.


아, 이제는 그 시절로 다신 되돌아갈 수 없음을. 그 시절이 완전히 종료되었음을. 세월이 세대를 그 끝으로 밀어버렸음을 선고받았다. 나는 이제 매 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하며 지나간 순간들을 아쉬워하고 과거를 회상하며 파도에 휩쓸려 저 끝으로 밀려간 세대를 보며, 그리고 그 세대가 내 부모라는 것에 통탄하고 눈물 흘릴 날이 다가왔음을 오늘 몸소 체험했다.


앞으로 내가 회전초밥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그 어린 날의 내가 아빠와 단 둘이 마주 보고 앉아 먹은 고급졌던 초밥이 아닌, 오늘 아빠와 나란히 앉아 한동안 멍하게 겹겹이 쌓아 올려진 회전판을 바라보던 게 떠오를 것 같아 서글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