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에서 깨어난 A할머니는 딸을 찾았다. 잠결에 딸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어디 갔냐고 묻는다. 방금 전에 간호사 만나러 간호과에 갔다며 조금 기다리라고 했더니 침대를 똑바로 세워달란다. 몸을 침대머리맡으로 끌어 당겼더니 왼쪽 골절된 팔이 아프다며 신음소리를 냈다. 비록 종일 침대에만 누워있지만 딸에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은가보다. 딸 은 꿀과 홍삼 원액이든 병을 손에 들고 생활실로 들어왔다.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 찬 모습이다. 매번 올 때 마다 어머니의 생활용품을 챙겨가지고 와서 두고 가면서 불편한 모습으로 돌아가곤 했다.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도 된다고 했더니 출국하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오려고 하는데 마음대로 일이 되지 않은 다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녀는 캐나다로 이민 간 교포다. 결혼과 함께 한국을 떠나 있다가 어머니의 갑작스런 사고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 했다며 한국과 캐나다 어느 쪽에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다며 처한 환경이 복잡함을 암시했다.
A할머니는 팔의 골절로 요양원에 들어온 케이스다. 왼쪽어깨에 골절상을 입고 꼼짝 못하고 드러누워서 생활한다. 통증이 시작 되면 환자본인이나 케어한 요양보호사나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요양원에 입소하기 전까지 활발한 사회생활을 했었다. 고령임에도 등산을 하면서 산악회 여성회장을 할 만큼 활동적이었다.
집에서 계단을 내려오다가 굴러 병원에 갔더니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중한 부상을 입었다. 이상한 것은 멀쩡히 걷던 분이 어깨뼈가 골절되자 다리는 다치지도 않았는데 걸음을 못 걷게 되었다. 노령이라 뼈도 약하고 쓰지 않은 다리근육이 줄어서 걷지 못한다며 병원에서 퇴원하고는 요양원으로 들어왔다.
1년 정도 있어야 뼈가 제자리를 잡을 거라며 절대안정을 취해야한다며 딸이 말했다. 아들 집에서 손녀 셋을 키우느라 고생하다가 이제는 제자신도 추스르지 못한 상태가 됐다며 푸념했다.
직장에서 만난 동료직원과 결혼과 동시에 캐나다로 가면서 친정엄마에게 집을 한 채 사서 주었다. 마음 편히 사시라고 했더니 집에 대한 세금문제도 해결 되지 않은 상태라며 복잡한 문제에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단다. 어차피 모든 것은 어머니의 운명으로 생각하고 떠나겠다고 하고는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요양원에서 일 하다보면 대상자들과 일부러 친해지려고 하지 않아도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마음의 감정을 공유할 때가있다. A할머니도 그중한명이다. 출근하면 밥은 먹고 다니냐 추운데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딸처럼 챙기면서 살아온 과거를 자연스럽게 얘기 할 때가있다. 그녀가 살아온 삶도 운명에 순응하기 보다는 자신에게 지워진 운명의 굴레를 벗어버리는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입었고, 그 운명을 숙명으로 여기기보다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억척스러움이 있었다. 그녀의 곤고했던 삶도 이제는 지나간 옛 추억으로 돌리기에는 지난 과거의 한 페이지를 넘기기에는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을 혼자 건너야하는 모험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정적인 가정을 이끌어 오신 분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절제 있는 차분한 말투와 편안해 보이는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풍겼다. 다만 눈 한쪽이 심하게 짝짝이였다. 젊은 시절부터 남편은 바람기가 다분했다. 어느 날 갑자기 다라에 통증이 와서 걸음을 못 걷고 방안에서 누워있게 되었다. 남편이 그때 여자를 데리고 왔다. 이유인즉 고생하는 부인을 위해서란다.
“고양이 쥐 생각하지. 동네 젊은 과부가 있었는데 그 여자하고 바람이 났는데 여자를 아예 집으로 데리고 왔어. 그 과부가 하필이면 사팔뜨기야 내 눈도 짝짝인데 사팔뜨기하고 놀아나는 게 한심해서 남편에게 ‘제대로 된 두 눈가지고 하필이면 사팔뜨기냐?’고 했지”
“남편이 잘생겼나보죠?”
“인물 좋고 언변이 얼마나 좋은지 그 사람 당해낼 사람 없어, 밖에 나가서 돈 잘 쓰지 여자들이 줄줄이 사탕이야. 한번은 애 낳고 몸조리하고 있는데 아가씨 셋이 찾아왔어. 남편이 총각이라고 했대,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확인 해 보고 가는 거야. 그것뿐이 아니야, 내가 아파 누워있는데 수발 못 한다고 데리고 온 사팔뜨기 과부를 때리는 거야.”
마나님을 그렇게 생각하면 여자를 데리고 오면 안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다리가 아파서 꼼짝 못 하고 누워 있으니까 나 고생한다며 수발들게 하려고 데리고 왔다고 핑계를 대지만 그 바람기가 어디 가겠어, 그 여자가 참 순하고 착한 여자였지. 그때는 미워했지만 지금생각하면 후회돼.”
물위에 부초처럼 떠도는 그가 자식들 줄줄이 놔두고 어느 날 밤에 과부를 데리고 야반도주한 바람에 그때부터 안 해본 장사가 없었다. 나이어린 자식들과 살기위해 갈치를 한 트럭씩 사서 리어카에 싣고 다니면서 팔러 다니고 정신없이 살았다. 고생하며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면사무소에서 주는 어버이날 장한 어머니상을 받았단다.
남편이 여자와 떠난 후로 그녀도 자녀들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생선장사, 건어물장사,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받아다 팔기도 했었다. 단속반에 잡혀서 벌금을 내기도 하는 어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해, 남편과 같이 사는 그 여자가 울면서 나한테 자꾸 미안 하다는 거야. 괜찮다고 손을 잡아줬더니 마음의 빚을 조금은 갚은것 같다며 뒤돌아서 떠났어. 깨어보니 꿈이었어"
잊고 살던 남편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다. 칠십 바로 넘기고는 폐암으로 투병 중이라고 미안하다며 죽기 전에 꼭 한번 만나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전화가 왔다. 그 여자와 자녀들 낳고 살고 있는데 새삼스레 만날 필요 없다며 죽는 날 까지 얼굴을 보지 않았다. 남편이 하늘나라로 간지 한달도 안되어서 그 여자도 남편의 뒤를 따랐다며 두 사람이 천생연분이었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녀의 살아온 과거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험난하고 거친 길을 걸어왔다. 지금 그녀는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가볍지 않은 그녀의 삶도 마지막을 요양원 침대에서 쓸쓸한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