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제자리로

by 샤론의 꽃



아침 출근시간, 요양원 병실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근무요양사가 있나 싶을 정도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얼굴이 누렇게 뜬 모습과 머리가 제멋대로 헝클어진 요양보호사 Y의 모습에서 전날 저녁에 일어난 일은 말을 듣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죽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해”

휠체어에 앉아서 배고파 죽겠으니 밥 달라고 소리 지르는 한 할아버지를 향해 위압적으로 노려보는 영수 할아버지 얼굴은 독기를 품고 있다. 평소에 조용히 있다가도 주변에서 시끄럽게 하거나 눈에 거슬리는 모습을 보면 두 팔이 A자로 벌어지며 주먹을 날리려 한다. 왜 이렇게 소란스런 분위기냐는 눈으로 Y를 처다 보자 눈을 깜박인다. 영수 할아버지 기분이 안 좋으니 모른 체하라는 신호다.

요양원의 환자들 방은 병세가 유사한 환자끼리 같은 방을 사용하게 배정한다. 의식이 또렷하고 보행이 어느 정도 가능한 사람은 그들끼리 소통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나름대로 세상살이를 논하고 불편한 점은 서로 보완하고 도우며 생활한다. 힘이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면 벨을 눌러서 도움을 요청해주고 간식도 서로 나눠 먹는다. 움직이지 못하는 중환자는 중환자끼리 한 방을 쓴다. 치매환자는 치매환자끼리 같은 방에 모여서 자기들만의 세상의 울타리를 만들어놓고 자기들의 법칙을 들이대며 고집 피우기도 하고 가끔은 싸움도 하면서 나름대로 생활한다.


종종 병실의 자리다툼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환자 보호자가 환경을 이유로 경관이 좋은 다른 층으로 이동을 요청하거나 새로 입소하는 환자의 자리가 없을 때는 기존 병실의 환자들과 병세 정도가 맞지 않아도 어쩔 수없이 자리배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마땅한 자리가 나와 옮겨주려고 하면 기존 자리를 고수하는 보호자의 반대에 부딪쳐서 옮기지 않고 그대로 생활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태욱 할아버지가 그런 경우다. 전날 같은 병실을 써야 하는 할아버지들의 새로 자리배정이 있었다. 문제는 꼼짝 못 하고 드러누운 와상환자인 태욱 할아버지의 보호자가 치매 할아버지 방에서 옮기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걸어 다니는 치매할아버지 틈에 생활하게 되었다.


점심때가 되면 태욱할아버지의 아내가 직접 식사케어를 하러 온다. 치매가 심한 옆 침대 최할아버지는 칫솔을 티셔츠왼쪽 주머니에 만년필처럼 꽂고 다닌다. 태욱할아버지의 아내를 볼 때마다 거실에서 놀다가 쫓아와서 언제까지 이렇게 있을 거냐며 내 자식들이 오면 자고 가야 하는데 왜 남의 집에 들어와서 공짜로 살면서 나갈 생각 않느냐며 삿대질을 해댄다. 할머니는 곧 나갈 테니 염려 말라고 하고는 식사가 끝나면 살며시 가버린다. 어차피 소통이 되지 않으니 설득이 필요 없고 그때그때 달래는 수 밖에 없다.

그날은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누워있는 태욱할아버지 옆으로 간다.

“어이! 일어나, 그러고 누워만 있으니께 병이 안 낫지. 빨리 일어나서 걸어 다녀. 병 고칠 생각은 안 하고 언제까지 이러고 자빠져 있을 거여?”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는 태욱 할아버지 어깨를 툭툭 친다. 아무런 반응 없이 가만히 있자 덮고 있는 이불을 걷어 가지고 방에서 나와 버린다.

“추우면 제 발로 걸어 나오지 무슨 수로 견딜 재간이 있나?”

이불이 없으면 딴 방으로 갈 줄 알고 이불을 걷어서 로비로 나와 버렸다.


중환자 방에서 치매 할아버지 방으로 이동하려는 영수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조직폭력배에 몸담았었다는 말이 있다. 그의 어깨에 그려진 꿈틀거리는 화려한 용 문신은 그의 과거를 알려주는 것 같다. 화가 나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독기서린 눈으로 노려보는 것으로 상대를 제압해 버린다. 그는 새로 옮길 방으로 당당하게 걸어 들어가서 주변을 주욱 살펴보더니 침대에 드러누워서 꼼짝 안 하고 있는 태욱할아버지를 보고 내심 불쾌했다. 태욱할아버지에게 가더니 말했다.

“이봐! 오늘부터 나가 여그서 생활할 것인께 그렇게 알드라고.”

추운 날씨에 이불까지 뺏기고 드러누워 있는 판에 또 다른 불청객이 들어와서 시비조로 말하는 바람에 유쾌 할리가 없다. 태욱할아버지가 큰 눈을 껌벅이며 쳐다보자 영수 할아버지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나가 한 말이 기분이 나쁘냐? 어디다 대고 눈알을 부라리고 있어”

아무런 대답이 없자 “타다다닥” 두 손으로 양 뺨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동환자들 방으로 옮기려고 짐 꾸리던 요양보호사들이 달려갔다. 영수할아버지는 태욱할아버지 침대에 한쪽 손을 짚고 있었다. 그때 옆구리에 접은 이불을 끼고 있던 최 할아버지가 거든다.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은 입에서 거품이 날 때까지 두들겨 패 놔야 정신을 차리니께 맞어두 싸지. 생긴 것은 꼭 뙤놈같이 생겨가지고 일어나서 나가라고 해도 꼼짝 않고 자빠져 있으니께 얻어터지는 거여”

말하지 못한 누워있는 환자를 두고 한 사람은 나가지도 않고 방세 안 내고 산다며 공격하고, 또 한 사람은 기분 나쁘게 노려본다며 폭력을 휘두르는 환자를 두고 요양보호사들이 혼겁했다.

“어르신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가만있는 태욱어르신은 왜 때려요?”

“내가 이방으로 온 것이 기분이 나쁜지 말은 안 하고 눈알 부라리며 노려보잖아. 그래서 뺨좀 때려 부럿소”

“어르신, 태욱어르신은 누워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데 어떻게 일어나서 어르신하고 말 하겠어요? 이 어르신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그렇게 때리면 어떡해요.”


태욱할아버지는 까만 피부에 큰 두 눈이 돌출되어 있다. 커다란 눈이 마치 화가 나서 노려보는 것만 같다. 그러니 영수할아버지로서는 말도 않고 노려본다는 느낌을 받고는 초반에 위계질서를 잡아놔야 된다는 판단으로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어쩌랴.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이서 패거리를 이루어서 또 말썽을 부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거늘, 방을 옮긴다고 신났던 영수할아버지는 결국 짐을 다시 싸서 예전에 쓰던 중환자 방으로 되돌아갔다.


사람은 자기 기준으로 보고 자기 생각으로 판단한다. 더구나 환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기분 나쁜 눈으로 본다며 폭력을 행사했던 영수 할아버지는 말 못하는 중환자실의 소통 불가능한 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불편한 방으로 돌아간 것은 자업자득이다.

작가의 이전글남편의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