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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속의 여자

by 샤론의 꽃

딸을 본 경희할머니의 입가에 미소가 활짝 피었다. 쇼핑백을 손에 들고 온 딸을 로비에서 만난 모녀는 정담을 나누고 있다. 오늘은 요양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생신잔치가 있는 날이다. 그달에 생일이 있는 어르신들을 한 자리에 모여서 생신잔치를 벌인다. 로비에는 색색의 풍선과 생일 현수막이 걸려 있고, 직원들은 분주히 준비를 하고 있다. 생일을 맞은 어르신들은 단정한 옷차림에 설렘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계시고, 가족들이 하나둘씩 찾아와 인사를 나눈다. 예쁜 옷으로 입혀서 잔치에 참여시키려고 경희할머니 딸이 바쁜 시간 내서 방문했다. 경희할머니는 딸이 가져온 쇼핑백 속 선물을 꺼내며 "이걸 다 준비했니?" 하고 감탄하고, 딸은 웃으며 "엄마 좋아하실 것 같아서요"라고 답한다.생신잔치가 시작되면,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다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며 따뜻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보호자들이 참석하기도 하지만 요양원 자체에서 케잌과 과일 음료 등을 준비해서 축하하는 자리다. 경희 할머니도 잔치에 참여하는 주인공이다. 딸이 마련한 고운 생활한복을 입혀드렸다. 빨간 저고리에 검정색 치마는 할머니의 화려한 옷차림이 되었다. 생활에 편리한 복장만 하다가 모처럼 예쁜 옷을 입고는 명절에 때때옷 얻어 입은 어린아이처럼 환히 웃는다. 딸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옷도 입는다며 싱글벙글이다. 생신잔치가 끝나고 보호자들이 제각각 돌아간 후에 침실로 돌아온 할머니와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길 건너 동백이’란다. 그녀의 말에는 전라도 특유의 사투리기 묻어났다. 시골마을에 겨울이되면 동백꽃이 수없이 피어난 마을 이란다. 동백이란 것 외에는 더 이상 아는 게 없다. 자기네 집에 가려면 큰길에서 동네하나 넘어야 간다는 말을 자주했다. 아무런 판단의 기준이 없이 동백꽃이 많은것 외에는 달리 설명을 하지 못한다. 기억저편에 펼쳐진 희미한 옛추억은 백꽃으로 완성된 고향의 단어이다.


다행이 보행하는데 불편하지 않아서 화장실은 혼자 가서 용변을 보고 거울 앞에 서서 한참 본다. 손을 씻고는 거울을 향해 손을 흔들며 다정하게 웃고 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내 친군데 나만 보면 좋다고 웃어.” 한참동안 거울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거울볼일이 거의 없으니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 한 것 같다. 젊음을 앗아간 세월은 내가 누군지 모르고 무엇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시설에 머무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치매가 심한 어르신들의 특징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 하고 자신도 모르지만 감정은 살아있고 자녀들만큼은 알아본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손을 흔드는 모습은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름답고 시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특히 기억이 흐릿해진 가운데에서도 자신을 향한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순수한 마음이 느껴진다.

시간은 머물러 있는 게 아니고 흘러가지만 그녀의 사고는 정지되어 있었다. 살아가기 위해서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있고 책임감을 완수하는 것도 스스로 삶을 영위해 나갈 순기능이 가능 할 때의 일이다. 나이가 들면 서서히 자신의 주변을 정리해 나가야 하지만 그녀에게 멈추어진 시간은 그날 하루에만 국한 되는 것이다. 저물어가는 삶의 끝자락에서 그녀에게 남은 것은 시간뿐이다. 찬란했을 젊음이 지나간 자리에는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삶의 정신적 휴식에 들어가 있다. 과거 삶의 그림자만 초라한 그녀주변에 어른거린다. 화석처럼 남아있는 기억의 언저리를 기웃거려도 고향도 나이도 입소하기 전에 살았던 집도 알아내지 못한다. 길을 잃은 그들에게 길이 되어준 요양시설에서 근무한 요양보호사는 그들의 손을 잡은 길라잡이다. 표류하는 영혼의 그들의 손을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언젠가 그들의 운명을 받아 들여야 하는 운명의 시간을 향해 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부정하지만 같은 운명을 받아드려야 하는 동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 하루도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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