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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론의 꽃 Oct 19. 2024

장수하늘소



  대지를 불사를 듯이 뜨거운 햇볕을 쏟아붓던 태양이 금세 모습을 감추었다. 붉게 타는 몸을 간간이 쏟고 지나가는 비구름 속에 숨어들었다가 나타나곤 한다. 나무 위에서 질기게 목소리 높이던 매미도 소나기에 놀라 어디로 숨었는지 조용하다. 

  해 질 녘 현관문이 열리며 남편이 들어왔다. 땀으로 흠뻑 젖은 등에서 배낭을 내려놓는다. 옷과 배낭 위에는 언제 뿌렸는지 장맛비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코로나팬데믹 후로 생활 패턴이 많이 바뀌었다. 꼭 필요하지 않은 모임은 가지 않고 모임도 자제하는 편이다. 그날 집에만 있기가 답답했던 남편은 산행을 한다며 아침부터 외출을 서둘렀었다. 친구들 얼굴도 보고 세상 바람도 쐬면 기분전환이 될 것 같다며 나갔다. 가끔 소나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눈물 머금은 나뭇잎들이 생기를 띄고 있다. 푸른 잎 나풀거리는 나무들처럼 생기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했다. 


  그는 배낭 속에서 먹다 둔 생수와 간식을 꺼내놓았다. 배낭에서 나온 휴지 속에서 까만 물체가 움직인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동안 내려다본다. 날개를 움츠리고 있는 검은 풍뎅이는 ‘장수하늘소’다. 전쟁포로처럼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 웅크리고 있다. 넓은 자연 속에서 살다가 뜻하지 않게 원치 않은 낯선 곳으로 옮겨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가장 쾌적하고 안락한 자연의 숲에서 물리적인 공간으로 붙들려와 몸 하나 의지할 곳 없이 사방 콘크리트벽으로 막힌 곳에서 얼마 동안을 견뎌야 할 것인가. 쾌적한 숲 속에서 태어나 자라고 제 몸을 키웠던 검댕이는 어쩌다 침입자의 손에 잡혀 고향을 떠나온 참으로 운 나쁜 난민곤충이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참나무 밑동에서 자리 잡고 살던 검은 풍뎅이를 잡기 위해 아이들이 울퉁불퉁 거리는 참나무껍질 밑을 살폈다. 운 좋으면 한 마리씩 잡아서 마당에 놓고 손바닥으로 마당 흙바닥을 치면서 달리기를 시켰었다. 지금은 곤충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곤충이다. 아이들도 아니고 왜 잡아왔냐며 나무라자 손자 주려고 잡았는데 그냥 집으로 왔다며 보기 귀한 곤충을 손자에게 보여주지 못했다며 아쉬워한다.   


  며칠 전 딸 가족은 여름휴가를 동해안으로 떠난다며 전화가 왔다. 나는 딸이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날이 손자 생일이라 저녁때 딸 집에 들를 거라고 했다. 딸은 더운 날씨에 복잡하게 움직이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했지만 손자 생일에는 늘 케이크와 용돈을 줘 왔던 터라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딸 집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할 즈음 딸 가족도 집에 도착할 것 같아 시간 맞춰서 출발했다. 가는 도중 딸한테 전화가 왔다. 집에 가면 뒤처리할 일들이 많은데 굳이 번거롭게 한다는 피곤한 목소리가 스피커폰을 타고 흘러나왔다. 밥 하기도 불편하고 치우기도 힘들고 일거리가 많은데 염치없이 가는 모양이 돼버렸다. 전화 통화하는 분위기를 눈치 차린 남편은 귀찮게 생각하는데 꼭 가야 하냐며 심드렁했다. 손자에 대한 식지 않은 사랑을 꼭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하는 내 이기심이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버린 것 같아 나 또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딸 가족은 저녁을 밖에서 먹고 집에 들어왔는지 집 주변에서 쇼핑하며 기다리고 있는 우리에게 전화가 왔다. 집안은 치우지 못한 짐이 쌓여있고 어수선했다. 기분 좋게 손자 생일을 축하해주려고 했는데 분위기를 맞추지 못하고 어수선한 딸 집에 있기가 불편했다. 손자가 좋아하는 망고 생크림 케이크와 용돈 봉투를 내밀고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집으로 오는 도중 손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할머니가 주신 용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우리가 그냥 돌아가는 게 미안했는지 딸이 녀석에게 시킨 전화 같았다. 


  남편은 전날 느꼈던 딸에 대한 섭섭한 감정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가 보다.

  “사실 내가 검댕이를 손자 주려고 딸 집으로 가려다가 어제 우리 보고 오지 말라고 했던 생각이 나서... 오늘은 그냥 왔어”

  딸은 불편한 상황을 얘기한 것뿐인데 남편은 섭섭한 감정이 들었는지 잡아온 장수하늘소를 보면서 어려서 보물처럼 귀하게 생각하던 곤충을 손자에게 주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손바닥 위에 가만히 앉아있는 장수하늘소나 남편의 기분이 동병상련인 듯싶다. 

  그는 끝내 불쌍한 생각이 들었는지 장수하늘소를 정원 나무 아래로 내보냈다. 오늘 밤은 낯선 곳에서 노숙해야 할 검댕이가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어 네 생명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행복하게 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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