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샤론의 꽃 Oct 12. 2024

행복한 C씨


  새 환자가 들어왔다. 딸이 보호자로 왔고 가지고 온 짐 보따리로 봐서는 이 병원 저 병원 거쳐서 온 환자임이 틀림없다. 20대 미혼인 딸이 가장이고 밑으로 여동생과 남동생이 한 명씩 있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삶의 무게에 눌려 가냘픈 몸이 힘들게 보였다.

  환자는 50대 중반이고 거구였다. 언어 구사는 거의 정확했고 지팡이를 짚으면 혼자서도 보행이 가능했다. 외상 후 장애로 온 치매 때문일까? 그는 가끔 “여기가 어디요?” 하고 물었다.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냐고 물으면 나는 아무 곳도 아픈 곳이 없다고 한다. 금방 식사를 하고도 왜 밥을 안주냐고 투덜거리곤 했다. 그래도 그는 과거를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다리 쪽 대퇴부가 골절되는 바람에 꽤 많은 병원 생활을 했다고 한다. 거기다 뇌손상까지 입어 치매가 있고 지남력 장애까지 있었다. 부인은 왜 안 왔냐고 물었더니 딸이 말하기를 시골에 내려가 있는데 가끔씩 병원에 들른다고 했다.


  재활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는 술에 의존하며 몸 관리를 제대로 안 하고 살다가 병원에 입원한 사람들이 꽤 있다. 더욱이 젊은 나이의 가장이 와병 중이면 가정도 와해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성격적으로 맞지 않은 데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감정이 안 좋은 상태에서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도 있다.

  C씨도 술이 발단인 것 같았다. 가끔씩 소리를 지르고 짜증 내는 걸 보면 결코 부드러운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 그가 하는 일은 자고 밥 먹는 일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런 그의 현실을 보면 내일이 보이지 않는데도 병원비가 적잖은 재활병원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아버지를 어떻게 해서라도 치료하겠다는 딸의 고집스러운 의지가 엿보였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게 놔두라면서 되도록 많이 움직이게 하려고 했다. 그는 큰 소리를 치다가도 큰딸 앞에서는 얌전해졌다. 딸이 올 때마다 전복죽, 닭죽 등을 끓여 왔다. 시간이 없어 그냥 오는 날은 간식거리를 충분히 사다 주고 가곤 했다. 누가 왔다 갔냐고 물어보면 아무도 안 왔다고 한다. 금방 큰딸이 와서 죽 끓여 와서 먹었잖냐고 하면 딸을 보지도 못했는데 무슨 죽을 먹었다고 그러냐며 짜증을 낸다. 눈앞에서 사라지면 5분 전의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누워 있을 때 일어나라고 아무리 말해도 꿈쩍 않고 있다가도 “식사하게 일어나세요.” 하면 벌떡 일어난다.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아무 걱정 없고 먹을 것만 있으면 항상 행복한 것 같았다. 가끔 기분이 좋으면 흘러간 유행가를 구성지게 한 곡씩 불러댄다. 눈을 지그시 감고 ‘돌아가는 삼각지’를 불러댄다.  옆침대 동료 환자가 노래 잘 부른다고 천원한장을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날도 동료를 힐끔힐끔 보면서 감정을 넣어 흘러간 유행가를 한곡조 뽑았다.

 박수치는 소리를 들으며 신나던 그는 노래는 불렀는데  왜 돈은 안 주냐고 묻는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은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는 것 같았다. 하루 이틀에 나아질 증상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먹고 자고 노래 부르고 TV 시청하면서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한 번은 내가 물었다.

  “000님 생활하면서 가장 걱정되는 게 뭐가 있어요?”

  “내가 뭔 걱정이 있것소, 텔레비전 안 보이는 것이 걱정인께 비켜 주시오”


 기다렸다는 듯 즉각 단순하게 내뱉는 특유의 전라도 사투리에 병실은 한바탕 웃음이 일었다. 명답이다. 나는 그가 즐기는 TV시청을 방해하고 있었다. 옆 침대 환자가 배를 움켜쥐고 웃더니 “와! 우리 병실에 위대한 철학자가 있네.” 라고 하자 또다시 사람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군사들을 데리고 전쟁을 하는 곳마다 승리를 거뒀지만, 그는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지 못했다. 세상이 추구하는 행복과는 다른 삶을 사는 철학자 디오게네스를 찾았다. 집도 없이 통속에서 살고 있는 그에게 대왕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나에게 내리는 햇볕을 가리지 말아 주시오”라고 했고 대왕은 “내가 왕이 아니라면 디오게네스처럼 살고 싶다.” 면서 돌아갔다.

 디오게네스를 연상케 하는 C 씨! 그는 가끔 말했다. 재혼을 해야 되는데, 돈도 있는데 원만한 상대가 없다고. 정말 돈이 있냐고 묻자 집에 많은 돈을 놔두고 왔다고 자랑을 하기에 집 어디에다가 놔뒀냐고 물었더니 “그것은 알아서 뭣 하려고 물어보요?” 라며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보냈다. 돈 있는 곳을 알아내서 훔쳐 가려고 묻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C 씨는 아무 걱정이 없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어디로 가냐고 묻고 화장실 갔다 오다 옆 병실 앞에서 집을 잃어버렸으니 집 좀 찾아달라고 하기도 한다. 두리번거리다가 병실 문 앞에서 자기 이름표가 있는지 확인하고 들어오기도 하지만 가끔 병실을 잘못 찾아 옆 병실로 들어가 남의 침대에 누워 있기도 했다. 침대 환자가 와서 왜 남의 자리에 와서 있냐고 하면 아무나 먼저 누우면 주인이지 주인이 따로 있냐며 못 비켜주겠다며 당신도 빈침대에서 누우면 되잖냐고 큰소리 친다. 밤에 화장실 갈 때는 잠자는데 방해되지 않게 살며시 문 열고 화장실에 다녀오곤 한다. 화장실에 가보면 대형 두루마리 화장지 한 통을 다 풀어서 바닥에 쌓아놓고 나오곤 한다. 화장지 풀어놓지 말고 나오라고 하면 “내가 언제 그랬다고 그라요. 증거를 대시오” 하고 되레 큰소리를 친다.


 한 번은 또 화장실 어디로 가야 하냐고 묻기에 정말 모르나 싶어서 반대쪽을 가리키며 왼쪽으로 가라 했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장실은 오른쪽에 있다며 오른쪽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알면서도 습관적으로 묻는다. 화장실에서 병실로 올 때는 간호과를 거쳐 오는데 간호과 앞에서 “내방이 어느 쪽에 있소?” 라는 말을 간호사가 못 듣고 하던 일만 하고 있자 “xx새끼들이 말해도 대답도 안 하네” 투덜거리면서 곧바로 병실로 돌아왔다.

  하루는 고향에 사는 형과 형수가 방문했다.


  “오메오메 우리형수 왔소! 그란디 왜 이렇게 늙어부렀소?”


  다치기 전의 기억에서 멈추어진 상태라 젊은 형수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형수의 두 손을 꼭 쥐고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옆으로 눈을 돌리더니 “저그 저 사람은 누구요?” 한다. 형수가 “형인데 몰라?” 하자 저렇게 늙은 형은 없다며  의아해 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서 있는 형을 향해 “니가 내형이어야? 니가 어떻게 내 형이야?” 라고 말했다. 상대가 자기를 속이고 형 행세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형은 기가 막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한숨만 내쉬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먹을 것 앞에서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동생을 보는 착잡한 심정이 눈빛을 통해 나타났다.

 그에게 오늘은 지나가는 행복한 하루일 뿐이고 자고 나면 또 새로운 행복한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오늘도 딸 손에서 도시락을 받고는 허겁지겁 먹는 그의 얼굴 위로 생로병사의 슬픈 인생사 단편이 그려진다.



작가의 이전글 콜라에 담은 따뜻한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