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할머니의 노래

by 샤론의 꽃


“석탄 백탄 타는데 연기만 펄펄 나고요 이 내 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아니 나네”

경기민요 한 대목이 흘러나온다. 들어보면 한 서린 여인네의 노랫가락을 유할머니는 경쾌하게 부른다. 아는 노래가 경기민요뿐인지 언제나 그 노래를 부른다. “할머니 노래 불러 보세요.” 하면 여지없이 ‘석탄 백탄 타는데’하며 지정곡이 흘러나온다. 치아는 다 빠지고 노래를 할 때마다 침이 흘러 옷섶을 적시고 소리가 새어 나온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요양원에 입소해 처음엔 2인실 방을 사용했으나 잦은 부부싸움으로 다른 층으로 서로 떨어져서 생활하게 되었다. 평소 생활 습관이 요양원에서도 나왔다. 요양원에 들어온 뒤에도 두 분의 삶의 결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처음엔 같은 방을 쓰며 서로의 곁을 지키려 했지만, 오랜 세월 쌓인 습관과 성격 차이는 작은 공간 안에서 더 크게 부딪혔다. 결국 부부싸움이 잦아져 서로 다른 층으로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고, 그제야 조금의 평온이 찾아왔다. 할아버지를 모시고 온 요양보호사가 할머니에게 오면 아무 말도 안 하고 서로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다가 헤어지곤 한다. 할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지 않냐고 물으면 가지 않겠다고 강한 거부 의사를 나타낸다. 서로 이야기도 나누면 심심하지 않고 좋지 않냐고 했더니 의외다.

“영감이 등 긁개로 내 대갈통을 후려쳐 때려서 안 가.”

“아니 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때려요?”

“내가 노래 부르면 시끄럽다고 등 긁개를 가지고 와서 후려쳐 때려서 안 가”


할머니는 종갓집 큰며느리로 시집와서 사 남매를 낳고 살았단다. 할아버지는 젊어서 풍수로 남의 집터나 묫자리를 봐주고 농사를 짓기도 해서 나름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다. 큰아들도 사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편인지 고급외제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면회를 오면 부인과 같이 안 오고 혼자 얼굴만 슬쩍 보이곤 했다.

노부부는 애면글면 다정하게 살아온 것 같지는 않다. 할머니에게서는 오순도순 화기애애한 면모가 할아버지에게는 헤픈모습으로 눈에 비쳐졌다. 과묵한 성격에 가부장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곤 했다. 휠체어로 아내의 방에 와서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고 가는 모습을 보면 부부라는 허울만 있을 뿐 젊음을 함께 보낸 사이좋은 모습은 아니다. 치아가 없는 할머니는 식사를 혼자 못하기 때문에 죽이 나오면 요양보호사가 떠먹여 드린다. 반은 흘리고 반은 입으로 들어가도 비교적 잘 드시는 편이다. 과묵한 성격의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흘리고 식사하는 모습도 못마땅해하고 항상 침을 흘리고 있어서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는 모습도 불편하게 여긴다. 시도 때도 없이 노래 부르는 것도 못 마땅한지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면 등 긁개를 가지고 와서 휘둘렀다. 보다 못해 부부를 서로 다른 층에서 생활하게 떼어놨다.


할머니 옆 침대에 젊은 환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언어장애에 편마비다. 체격이 커서 체위변경 하기가 힘들고 휠체어 태우기가 너무 좁았다. 불편한 쪽으로 이동하려다 보니 환자도 힘들고 케어하는 요양보호사도 하루에 몇 번씩 하는 이동에 고생이 다. 체격이 작고 가벼운 유할머니 자리와 바꾸면 무난할 것 같아서 할머니와 젊은 환자 자리를 서로 바꾸어 놨다. 그날 밤 할머니는 자다가 울부짖듯이 소리를 질렀다.

“아비야, 에미는 어떻게 할 거냐. 언제까지 어미를 그렇게 놔둘 거냐?”

놀라서 뛰어갔더니 할머니는 손을 휘저으며 꿈을 꾸고 있었다. 큰아들은 아내와 별거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정상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각자 생활하는 아들 며느리가 항상 마음속 걱정거리가 되었나 보다. 아이들이 있는 멀쩡한 아내와 떨어져 사는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기에 꿈속에서 아들이 나타난 것이다.

할머니는 멍하니 앉아서 자신이 있던 침대를 바라본다. “내 자리 내 자리!” 하며 바꾼 자신의 침대를 바라보며 가리킨 손가락이 바르르 떤다. 환자들은 자리를 바꾸기를 싫어한다. 자리를 바꿀 때는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바꾸기도 한다. 보호자는 바꿔도 괜찮다는 허락을 했지만 본인인 할머니가 자기 자리임을 고집한다. 자기 자리가 자존심의 상징이 되어버린 듯하다. 자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손가락으로 당신이 있었던 침대를 가리키며 ‘내 자리’라고 외친다.

그 후로 할머니는 심하게 기침을 하곤 했다. 자기 자리를 빼앗겼다는 상실감 때문인지 열이 올랐다. 폐렴진단을 받았다. 할머니의 기침은 단순한 몸의 증상이 아니었다. 요양원에서 자리를 옮기며 느낀 상실감과 외로움이 마음을 짓누르자, 그 무게가 결국 몸으로도 드러난 듯했다. 열이 오르고 폐렴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사람의 건강은 단지 육체의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의 안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남겨진 우리에게는 그분의 삶이 하나의 기록으로 남는다. 고집처럼 보였던 행동은 사실 자기 존재를 지키려는 마지막 몸부림이었고, 그리도 잘 부르던 경기민요 사발가를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빈 침대를 보며 우리도 같이 따라 부르던 사발가를 불러 본다.


“석탄백탄 타는데 연기만 펄펄 나고요 이내가슴 타는데 연기도 김도 아니 나네”

진정 가슴 타는 고뇌를 안고 있던 할머니는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 하늘나라로 긴 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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