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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수련 Jan 29. 2022

산책

나 자신을 만나는데 산책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아침에 눈뜨면 노트북 앞에 앉는 일로 하루가 시작됐다. 거의 매일을 글만 쓰며 지낸 날들이었다.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꼭 만나야만 되는 사람도 딱히 없었다. 나는 집에서 글 쓰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몸을 쓰는 일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다.


내 몸이 삶이 아닌 노동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늘어갔다. 그것도 불량하기 짝이 없는 자세로. 그 때문이었을까. 끝내 일이 터지고 말았다.


친구의 초대로 모처럼 예술의 전당에서 하는 두어 시간의 공연을 보고 나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던 중이다. 발을 내디뎠는데 무릎 안쪽에서 영문을 알 수 없는 통증이 올라왔다.


헉, 다리를 접질린 것도 아닌데 왜 이러지?


나는 사전 징조도 없이 나타난 무릎의 고통에 이를 악물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뻣뻣한 다리로 한 계단 한 계단 더디게 내려갔다. 어디에 부딪히거나 상처를 입은 기억이 없으니 무릎 안쪽의 통증은 내게 불가사의한 일처럼 다가왔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 아무런 이유 없이 고통과 불편함이 찾아오는.


계단을 오를 때나 평지를 걸을 때는 또 아무렇지도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무릎 통증의 원인을 떠올렸다.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다 착잡했다.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계단 앞에만 서면 위축됐다. 내가 사는 곳은 승강기가 없는 3층이고 종량제 쓰레기봉투라도 내놓자면 계단을 밟아 내려가야만 했다. 큰일이다 싶었다. 이러다 못 걷게 되는 건 아닌가. 염려증이 내 안에 똬리를 틀었다.


다리를 너무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가. 나는 궁여지책으로 매일 30분에서 한 시간 가량 동네 야산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남들은 아플 때를 대비해 다양한 보험에 들어둔다지만 불규칙한 수입으로 생활하는 나는 정기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돈을 만들지 않는다. 나는 매일의 산책을 보험 삼는다는 마음으로 움직였다.  

 

그 덕분일까. 극심한 고통을 안기던 증상이 나도 모르는 사이 슬그머니 사라졌다. 무릎의 통증이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나의 산책은 계속되었다. 습관이 되었고 팔 년째 이어지고 있으니 이보다 좋은 건강보험이 없는 듯싶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함이 사라지고 마음의 평온을 얻자 그때 왜 그랬을까, 궁금해졌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무릎 통증이 찾아왔을 때 바로 인터넷 검색을 하든가 의사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런 일에 잽싸지 못한 나는 한시름 덜고 나서야 그때의 일에 대해 찾아볼 생각이 들었으니 어이가 없기는 하다.


반월상 연골 파열.


갑작스럽게 무릎이 회전되거나 과격한 운동에 의해 파열이 일어날 수 있어서 스포츠를 즐겨하는 2~30대의 젊은 층에서 자주 나타난다. 무릎을 살짝 구부린 채로 과격하게 비트는 자세로 인해서도 손상이 발생하는데 특히 중년 여성들에게 나타나는 질환이란다.


그제야 불량했던 나의 앉은 자세가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말이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 종종 무릎의 고통을 호소하는 것을 보면 연골이 닳아 발생하는 퇴행성의 질환이 내게서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예전의 나라면 또 걱정을 사서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어떻게 해야 될까. 저렇게 되면 또 어떻게 해야 될까. 너무 많은 그것도 쓸데없는 걱정들을 했을지 모른다. 걱정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닌 그런 걱정들을 말이다.

기계도 안 쓰면 녹이 슬어 못 쓰게 되고 매일 기름칠을 하고 사용하면 길이 든다. 마모야 되겠지만 안 써서 녹이 스는 것에 견줄 수 있을까. 시간을 넘나드는 시간 여행자라도 몸에 새긴 시간을 물릴 수 없고 세월은 우리의 몸에 확연한 흔적을 남김에야.  


성철 스님은 걱정을 하려거든 한 번에 두 가지 이상을 걱정하지 말고 하려거든 오직 두 가지만 걱정하라고 말씀하셨다.


지금 아픈가, 안 아픈가.


아프지 않으면 걱정하지 말고 아프면 두 가지를 걱정해라. 나을 병인가, 낫지 않을 병인가.


나을 병이면 걱정 말고 낫지 않을 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죽을병인가, 죽지 않을 병인가.


죽지 않을 병이면 걱정 말고 죽을병이면 두 가지만 걱정해라. 천국에 갈 것 같은가, 지옥에 갈 것 같은가.


천국에 갈 것 같으면 걱정할 필요 없고 지옥에 갈 것 같다면 지옥 갈 사람이 또 무슨 걱정인가 말이다.


결국, 그 어떤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시다. 걱정을 한다고 안 될 일이 된다거나 될 일이 안 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현실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내 앞에 펼쳐진 일들을 걱정 대신 몸으로 실천하는 것 말이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할 수 있다고 할지 모르나 마음 건강이 먼저다. 매달 들어가는 각종의 보험료를 납부하기 위해 현재를 소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미래를 담보 삼아 현재의 고통을 견뎌야 하는 일은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십 대의 청춘이라면 더욱이 가슴 뛰는 자신의 그것을 하라고 권할 일이다. 현재를 충실히 살면 누릴 미래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지금의 시간이 나의 하루 계획안에 있다면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내가 하고 있는 그 무엇에 몰입하여 누리면 과하게 충분하다.  


마음이 건강하면 몸은 자연히 따라온다. 세월 따라 찾아드는 불청객이 반갑지만은 않겠지만 웃으며 맞아주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나의 생이 고장 나서 멈춰서는 것보다 매일 조금씩 내 몸이 닳아졌으면 싶다. 내 몸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웃음이 날개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집을 나선다. 마음을 가로지르는 산책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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