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와 중개대상물 확인설명서를 뽑아 한 장씩 나눠주고 설명하려는데, 60대 매수인 옆에 바짝 붙어 앉아있던 20대 딸이 반으로 접힌 A4 용지를 부스럭대며 펼쳤다.
"잠깐만요. 특약사항에 넣을 게 있어요!"
특약사항? A4 용지 가득 빽빽한 내용들에 눈이 갔다. 딸은 하나씩 읽어 내렸다.
"집 사고 난 뒤 6개월까지는 하자가 생기면 매도인이 무조건 처리해 준다고 써주세요. 그리고요~"
헐.. 그런 건 못써준다 말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랬더니 왜 못써주냐고 눈꼬리를 올렸다.
" 매도인 하자담보책임을 말하는 것 같은데 그건 집 팔고 나서 6개월까지는 매도인이 모든 하자를 처리해 준다는 말이 아니에요. 6개월의 의미는 매수인이 안 날로부터..."
라며 민법 제580조를 설명하려는데 발끈하면서
맞다니까요! 제가 어제 유튜브에서 봤다니까요?
그러자 옆에 앉은 매수인이
"우리 딸이 어제 매매계약에 대해서 유튜브를 4시간이나 봤어요. 거기 나온 걸 꼼꼼히 적어온 거예요"
4시간을 봤든 40시간을 봤든 잘못된 건 잘못된 거니 올바른 법규를 설명하려는데, 다시 딸이 말을 가로챘다.
유튜브가 왜 틀려요? 중개사님이 잘못 아시는 거 아니에요? 유명유튜버가 그랬어요!
피로가 잔뜩 쌓인 밤 8시 반에 왜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고 우겨대기만 하는 거냐고... 변호사나 세무사나 혹은 다른 직업인들한테는 이러지 못할 거면서 공인중개사는 참 만만한 나라이다... 그래도 민법 제580조 제581조 제582조를 죽죽 설명했더니 흠흠 거리다 다음 특약을 제시한다.
"등기부등본에 혹시 뭐 설정이 되거나 하면 손해배상 해야 한다고 넣어주세요"
그러자 분위기가 삼엄해졌음을 감지한 매수인이 내 눈치를 살피며
"그건 여기 쓰여 있다~~ 여기 중개사님 진짜 꼼꼼하게 잘하시는 분 같아. 여기 다 쓰여 있네~ "
고 했다. 그러자 딸이 '그래? 못 봤네' 하더니 다시
"그럼 저희가 디딤돌 대출을 받을 건데요. 혹시 대출이 안 되거나 대출 나오는 날이 늦어지면 잔금 날짜를 변경할 수 있다고 써주세요."
잔금날이 한 달 반밖에 안 남아서 날짜 맞춰준다는 집 찾느라 그 고생했으면서..
"대출 요건은 매수인께서 미리 알아보셔야 합니다. 1달 반이면 통상 대출 실행되기에는 충분한 기간이고, 대출이 안 되는 걸로 날짜를 미룰 수는 없습니다. "
했더니 대출은 크게 문제없이 나오겠지만 혹시 모르니 특약에 넣어달라고 했다. 유튜브에서 그런 거 꼭 넣어야 한다고 했단다. 그 넘의 유튜브 유튜브.. 그럼 유튜브에 가서 계약할 것이지.
그런 특약은 안된다, 대출 기간은 충분하고 대출 안 되는 조건이면 조금 길어진대도 안 나온다, 그리고 한 달 반 남았는데 대출에 따라 날짜를 변경할 수 있다고 쓰면 세입자는 어떻게 이사준비를 하느냐, 이 계약으로 인해 제삼자인 세입자한테 피해를 줄 수는 없다 했더니 이 젊고 예쁜 딸이 눈에 레이저를 쏘더니
다 그렇게 써준다고 유튜버가 그랬는데 왜 중개사님은 안 된다고 하세요!
"계약서는 제가 씁니다. 그런 계약은 없어요. 계약서에 기재한 내용들은 법적 효력을 갖는 것이기 때문에 분쟁의 소지가 있는 내용들은 곤란합니다. 정 걱정되시면 오늘 계약하지 맙시다. 대출되는지 확실히 알아보고 다시 만납시다."
매도인도 매수인도 공동중개 부동산도 그리고 함께 온 매수인 가족들도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도인은 담배를 태우러 나갔고, 매수인은 내 눈치를 살폈다.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를 믿지 말고 중개사를 믿으세요. 중개는 중개사가 전문가입니다. 중개사 못 믿겠으면 계약 못하시는 겁니다."
공동중개 부동산이 "여기 중개사님 꼼꼼하고 법도 잘 아시는 분이에요. 믿고 하시면 돼요"라고 말했고... 매수인이 딸을 나무랐다. 그리고 사과했다. 이어서 계약이 진행됐고 계약금도 송금됐다. 영수증을 출력하고 있는데 매수인 딸이 다시 말했다.
"매매계약 했으니 거래신고 해야 하잖아요? 그건 언제 하실 건가요"
어느 유튜버인지,,,,거래신고도 계약자들이 직접 해야 한다고 일러준 모양이다.
"거래신고도 같이 하시게요? 그건 중개사들이 계약일로부터 30일 이내에 하면 되는 건데요?"
그러자 공동중개 부동산이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무분별하게 범람하는 정보가 외려 중개분쟁을 유발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이런 문화가 형성된 데에 우리 공인중개사들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전세사기가 사회문제화 되고, 소수 몰지각한 중개사와 무등록업자들이 부동산시장을 혼탁하게 한다고 해도,
모든 중개사들을 무시하고 비전문가나 주변인들의 의견에따라 부동산 계약을 체결한다면 더 큰 사고와 분쟁이 유발될 수도 있다.
어느 조직이나 물을 흐리는 소수의 일탈행위자들이 있듯이 중개현장도 마찬가지다.
그렇더라도 선량하고 성실하게 중개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개사들을 못 믿는다면 자칫 중개시장이 더 혼탁해질 수도 있다.
어쨌거나 유명 유튜버보다도 중개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한 법규와 정보를 알고 있는 전문가는 다름 아닌 개업공인중개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