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디지털 노마드, 어디에서 살 것인가?

100세 인생 시대, 50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_ E.22

by 양성필

1. '어디에서 살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와 관련성이 깊다. 특히나 100세 인생의 후반전에 살고자 하는 곳은 앞으로 내가 어떠한 활동을 하면서 살겠다는, 삶에 대한 가치관과 방향성의 투영이기 때문이다. 대도시의 마천루에 살면서 자연과 더불어 고즈넉하고 여유 넘치는 삶을 추구하겠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2. 인생의 후반전에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시골살이를 택해서 농작물이나 과수 재배를 시작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도 꽤 오래전 일이 됐다. 시골살이를 위해선 사전에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배워야 할 것도 많다. 요즘 농사는 6차 산업이라는 말도 있다. 1차(농작물 재배) X 2차(제조/가공) X 3차(유통/서비스) 산업을 복합적으로 아울러야 한다는 뜻이다. 농사꾼과 소비자가 페이스북 친구 맺기를 통해 직거래로 농작물이나 해산물을 사고파는 일은 이미 다반사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삼시세끼>에서처럼 직접 기른 농작물을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나를 위한 식탁을 차리는 모습은 전원생활에 대한 로망을 자극한다.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로 가득 찬 도시생활의 찌든 삶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사람에겐 '시골살이'가 안성맞춤의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 힘은 들어도 농작물 재배를 위해 고랑을 일구고 물과 거름을 주고 병충해를 예방하려는 등의 노력은 삶의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에너지 충전을 위한 즐거운 노동이 된다.


당연히 이번 생의 처음인 서툰 시골 생활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겪게 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서 시골에서의 생활은 꽤나 만족도가 높다. 일단 숨 쉬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스트레스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스트레스 제로(Zero)까진 몰라도 적어도 도시 생활과 직장 생활에서 받은 그것과는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결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완전한 시골살이가 아닌, '5도 2촌'이란 말이 있다. 1주일에 5일(평일)은 도시에서, 2일(주말)은 시골에서 보낸다는 뜻이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은 도심에서 차로 1~2시간 떨어진 곳에 멋진 별장을 지어서 주말을 보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시골 마을의 폐가를 비교적 싼 값에 구입하여 대대적인 수리를 통해 직장이 있는 도시(평일)와 시골(주말)을 오가는 이중생활(?)을 하기도 한다. 도시 집과 시골 집을 오가며 사는 사람은 늘 여행하듯 설레는 삶을 살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와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삼시세끼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3. 수년 전부터 '한 달 살아보기'가 유행이다. 내 주변에도 육아 휴직 기간 동안에 '한 달 살기'를 실천에 옮기는 지인들이 부쩍 늘어났다. 요즘은 남자 직원이 육아 휴직을 신청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 됐다. '라떼(나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 솔직히 내심 부럽다.


국내에서는 한 달 살아보기 장소로 제주도를 선호하는 사람이 제일 많다. 남해안이나 강원도 동해안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특정 지역이 아닌 그저 도시를 떠나 전원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다는 사람도 있다.


'한 달 살아보기'는 사전 경험 없이 덜컥 이주를 했다가 겪을 수 있는 낭패를 미연에 방지하고,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쳇바퀴 돌듯 고루한 삶에 응급조치가 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게다가 짧은 여행으로는 절대 경험하지 못하는 색다른 느낌과 매력도 있다. 어제까지 서울 용산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봤는데 오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생필품을 사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려보라.


4. 나는 이제 불과 몇 년 후면 내 인생의 2막을 시작해야 한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를 바탕으로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우선 나는 굳이 서울 도심에서 계속 살 생각이 없다. 인생 1막과는 차별화된,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누리고 싶다. 그래서 내가 고른 최종 선택지는 제주도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제주도로 이주할 계획이다. 지난 3년 동안 제주 올레길을 열심히 걸어서 완주한 이유 중 하나도 사전에 제주도를 충분히 경험해보기 위해서였다.


제주도에는 '연세'라는 말이 있다. 집을 월간 단위(월세)가 아닌 연간 단위의 세를 내고 빌린다는 개념이다. 처음 3년 정도는 1년씩 제주도 내에서 이리저리 지역을 옮겨가면서 연세를 내고 살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살기 좋은, 살고 싶은 곳이 확실하게 정해지면 소박한 형태로나마 내가 직접 설계에 참여해서 내 집을 지어보고 싶다.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벤치마킹해서 서양과 동양의 건축 문화가 결합된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은 야심 찬 꿈도 꿔본다. 아, 집 지을 때 2층 발코니와 탄소중립 실천은 꼭 반영할 거다.


얼마 전에 소개받은 건축 전문가와 만난 자리에서 내가 제주도 집 얘기를 꺼냈더니 어떤 집을 짓고 싶냐고 물어왔다. 그래서 "포카리 스웨트 음료 CF에 나오는 지중해의 집처럼 파랗고 흰색으로 칠한 집에 통유리로 큰 창을 내고 싶다"라고 답했더니 "제주도는 태풍으로 인해 비바람이 극심한데 파란색, 흰색 페인트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것 같으냐? 게다가 통유리를 냈다가는 태풍이 올 때마다 불안에 떨 거다"라는 등의 어마무시한 핀잔이 되돌아왔다. 역시 약은 약사에게, 건축은 건축 전문가에게...


제주도에서 무엇을 하면서 지낼 것인지도 몇 가지 생각해봤다. 나는 현재 집 거실에 넘쳐나는 책들을 모두 제주도로 옮겨 와 새로 지을 집 1층에 꼭 북카페를 만들 계획이다. 내가 소장한 애정 어린 책들은 많게는 수십 년 된 것들도 있으며 모두 나의 손때와 추억이 책장마다 묻어 있다. 그래서 북카페의 이름을 'Timeless Memory'로 미리 정해뒀다. 북카페는 내 삶의 공간으로 활용할 뿐 매출을 올리는 데 집중할 생각은 없다. 그래도 생수와 커피는 팔 생각이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야겠다. 찾아오는 손님이 많아지면 저녁엔 와인도 팔아볼까?


지금 매주 일요일마다 의정부에 있는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하는 한국어 교원 활동도 제주도로 지역을 옮겨 계속할 생각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에 다문화센터 등이 있어서 한국어 교원이나 다문화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수년 후 즈음엔 제주도의 다문화 인구도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일할 곳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5.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란 말이 있다. '디지털(digital)'과 '유목민(nomad)'을 합성한 조어다. 노트북,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여 시간 또는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근무를 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MZ세대가 이러한 일하는 공간 변화의 중심에 서 있지만 딱히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은 아니다. 50~60대의 액티브 시니어도 마음먹기에 따라 공간의 제약에서 훨씬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나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실버 디지털 노마드'를 꿈꾼다.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의 석 달 동안은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 위해 우리나라를 떠나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지낼 생각이다. 이른바 '발리에서의 석 달 겨우살이'다.


이런 삶을 꿈꾸는 이유는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따뜻한 기후에서 생활하는 것이 여러모로 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발리에서의 생활비가 우리나라보다 적게 들기 때문이다. 건강과 가계 경제에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매년마다 석 달이라는 시간을 발리에서 무위도식할 생각은 전혀 없다. 요가도 배우고, 스킨 스쿠버도 배우고, 글쓰기 앱을 이용해 글도 쓰고, 영어로 된 책도 한 권 정도는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여건이 된다면 현지인이나 늘 넘쳐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무료 <한국어 교실>도 만들어서 운영해 보고 싶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지금 나는 틈나는 대로 발리를 공부 중이다.


6. <택리지>는 조선시대의 실학자 이중환이 쓴 인문지리서이다. 이 책에 따르면, 사람이 살 만한 곳을 고를 때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둘째 그곳에서 얻을 경제적 이익 즉, 생리(生利)가 있어야 하며, 셋째 그 고장의 인심이 좋아야 하고, 넷째 아름다운 산수가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라고 한다.


고전(古典)에서 삶의 지혜를 엿보듯 현대사회에 적용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지리가 좋고,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고, 인심이 좋고, 산수가 아름답다면야... 잘 찾아보자.


7. 유한준 교수의 말처럼 어디서 살 것인가? 이 문제는 객관식이 아니라 서술형 답을 써야 하는 문제이며, 심지어 정해진 답도 없다. 나 스스로 묻고, 나 스스로 답하고, 나 스스로 채점을 해야 한다. 다만, 채점의 잣대 중 한 가지는 전 세계 인류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사항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행복'이다. 100세 인생의 후반전에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곳에서 행복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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