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십여 년 전 어느 날, 평소 존경하는 광고업계 선배님의 강연을 들었다. 강연 중에 무덤 앞에 놓인 비석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셨는데 그 비석에는 미래의 어느 날 선배의 죽음 후에 쓰일 말이 적혀 있었다. 선배는 늘 이 말에 책임감을 갖고 부끄럽지 않은 인생을 살고자 노력한다고 하셨다. 원래도 훌륭한 선배라 생각해서 존경해 왔었는데 그날따라 선배가 거인처럼 느껴졌다.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순간이었다.
2.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다. 인생을 두 번 사는 사람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우리 삶의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다. 마치 선물(present)처럼 주어진 오늘 하루와 현재(present)를 즐겁게 사는 데 집중하는 사람,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의 나와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나를 위해 열정적으로 사는 사람, 종교적 신념이나 소명의식을 위해 헌신하고 이타적인 삶을 사는 사람 등 삶을 대하는 태도와 방법은 각양각색이다.
무덤 앞에 작은 비석이라도 하나 세운다면 뭐라고 써달라고 해야 할 것인지에 답할 수 있고, 미리 준비돼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런데 '생각한 대로 사는 삶'과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삶'의 차이는 꽤 클 것이 분명하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객관적인 시각으로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내 삶의 핵심 키워드들을 먼저 공유해보겠다.
3. 내 MBTI 유형은 '대담한 통솔자'로 불리는 'ENTJ'다. MBTI 유형 분석에도 나타나 있듯이 내 삶의 뚜렷한 성향은 분석, 효율, 계획, 도전, 열정, 꾸준함 같은 단어들로 대표된다(부정적인 특성은 굳이 명시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도전'과 '열정'은 나를 아는 상당수의 지인들도 인정하는 내 삶의 핵심 키워드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새로운 분야의 사람을 만나거나,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설렘'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설렘'은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내게는 '도전 = 설렘 = 행복'이다. 삼위일체다.
설렘을 느끼면서 새로운 일에 하나씩 도전하다 보니 지금은 직장에서의 본 직업(본캐)과는 별도로 일곱 가지 부캐 활동을 하는 N잡러가 됐다. 나의 부캐는 ① 한국어 교원(일요일) ② 다문화사회 전문가(틈틈이) ③ 아마추어 화가(월요일) ④프로 걷기러(토요일) ⑤ 브런치 작가(틈틈이) ⑥ 칼럼니스트(격주) ⑦ 강연자(틈틈이)이다. 다양한 부캐 활동으로 인해 바쁘게 살고 있지만 전혀 힘들진 않다. 모두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부캐 활동은 늘 내게 행복과 즐거움을 준다.
일곱 가지 부캐 활동들이 어찌 보면 관련성이 크지 않아 보이지만 사실 나의 부캐 활동은 서로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연결돼 있다. 예컨대, ④번 부캐는 나머지 모두에 영향을 끼친다. 건강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①~④번까지의 네 가지 부캐는 ⑤~⑥번 부캐인 글쓰기의 소재로 활용되고, ⑦번 부캐에선 강의의 소재로 활용된다. ①번과 ②번, ⑤번과 ⑥번의 상호 밀접 관련성은 굳이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부터 일곱 가지를 한꺼번에 다 시작한 것은 아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다 연결성을 생각하고 시작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평소에 메모해 놓고, 자주 들여다보면서 하나씩 실천하다 보니 이렇게 됐다. 여기서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딱 하나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적자생존'이다. 지금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적어보자.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나도 모르니깐.
일단 적어두면 메모에 리스트 돼 있는 항목들끼리 거짓말처럼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적절한 수정과 보완을 거쳐 각 항목들이 서로 연결된다. 나의 부캐 일곱 가지도 그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지금 바로 적자! 인생이 달라진다!
아, 이쯤에서 꼭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에서 조던이 한 말이다. "내 말과 행동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는 내 삶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열정적으로 노력할 뿐이다. 나를 보고 자극을 받았다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을 롤 모델로 삼기를 바란다."
4. 부모가 자녀의 삶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나의 첫 번째 책인 <위대한 유산>에 미주알고주알 썼듯이 나 또한 부모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아버지께선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학창 시절부터 고생을 엄청나게 많이 하셨다. 그래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 일에 적극적이시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내가 조금 더 가진 것을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과 나누면 기쁨도 늘고 내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기회 될 때마다 말씀하셨다.
솔직히 나는 30대까진 그 말씀을 귀로만 이해했다. 그런데 40대부터 그 말씀이 마음으로 이해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매월 초록어린이재단, 유니세프, 다문화청소년협회, 꿈과 나눔 등 몇몇 단체에 후원도 하고 있고 여러 형태의 재능 기부를 비롯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아버지 말씀대로 내 삶이 풍요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남을 위해 복을 지으면 그 복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말씀이 딱 맞았다.
즐겁지 않으면 인생이 아니다는 말이 있다. 즐거운 인생을 추구하겠다는 데엔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엇인가 조금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무엇'을 통해 즐거움을 추구할 것인지도 늘 고민의 대상으로 남을 것 같다. 유시민 작가의 말처럼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인생을 다 채우지 못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유작가는 "일과 놀이와 사랑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온전하게 느끼지 못하며, 그것만으로는 누릴 가치가 있는 행복을 다 누릴 수 없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에 공명하면서 함께 사회적 선을 이루어나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용해 최고의 행복을 누릴 수 있다. 그런 인생이 가장 아름답고 품격 있는 인생이다"라고 역설한다. 이 문장을 읽고 또 읽고 또 읽었다. 송두리째 외운다. 이 문장은 내 삶의 좌우명이다.
<교보문고 손글씨 쓰기>에 제출한 내 삶의 좌우명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자
5. <죽은 시인의 사회(1990년)>와 <굿 윌 헌팅(1998년)>은 나의 인생 영화다. 공교롭게도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각각 선생님과 교수의 역할을 맡았다. 영화 속 대사 중 20~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늘 내 곁을 지키는 말은 각각 'Carpe diem(오늘을 즐겨라)'와 'It's not your fault(네 잘못이 아냐)'이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여 오늘을 즐기지 못하는 삶도, 내일의 행복을 위한답시고 오늘을 힘들게만 사는 삶도 옳지 못하다. 안타까워한다고 해서 지나간 일이 바뀌지 않는다. 한 차례 아파하고 가슴에 묻고 잊어라.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을 것이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를 모르는데 도대체 무엇을 걱정한다는 것인가? 내 인생에 코로나 19 같은 팬데믹을 겪을지, 100세 인생 시대가 열릴지 상상이나 했겠는가. 게다가 걱정한다고 해서 미래가 바뀌는 것도 아니다. 현재의 삶, 매 순간마다 충만한 인생의 의미를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면서 살자. 하루하루를 소중하고 행복하게!
6. 혜민스님의 저서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에는 우리 삶을 조금 더 행복하고 풍요롭게 해 줄 좋은 말씀이 많이 있다. 그 중에서 내가 꼽은 핵심은 딱 이 문장이다. 남에게 정말로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 남 눈치 그만 보고, 남이 내게 바라는 것이 아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라.
나는 겉으로는 쿨한 척만 하면서 지냈으나 사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 '저 친구가 왜 이런 말을 했지?' 등 타인과의 관계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유형이었다. 그래서 평소 일보다 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러다가 3년 여 전에 나를 엄습해온 우울과 불면 증상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남을 너무 의식하는 불필요한 생각과 과감하게 손절했다. 조바심도 났고 설마도 했으나 스위치를 오프해도 진짜 아무 일도 일어나질 않았다. 이럴 수가. 내 삶이 너무 행복해졌다. 지금 당장 스위치를 꺼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난 앞으로도 남에게 피해만 주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면서 살 것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이 아닌 내가 정한 기준대로 살 것이다. 내가 내린 결정으로 인해 때론 실수할 수도 있고, 때론 뜻밖의 행운이 찾아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7. 세상엔 크게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기존에 부여된 제도를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 잘해 나갈까에 집중하는 사람과 기존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제도 자체를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 가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다. 100세 인생 시대의 삶에 대한 가치관도 도전적인 삶과 안정적인 삶이라는 키워드로 크게 두 부류로 나눠볼 수 있다.
하지만 도전하는 삶과 안정적인 삶이 반드시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는 아닐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나는 100세 인생 시대와 함께 시작된 큰 변화의 시기에는 기존의 틀을 탈피하고 오히려 과감한 도전을 통해 삶의 안정을 개척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믿는다.
급변하는 시대에 가장 위험한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는 말처럼 변화에 선제적,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게 내가 옳다고 믿는 방법이다. 물론 이 것만이 정답이라거나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단지 나는 도전적인 삶을 택했을 뿐이다. 어떤 삶을 택할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어렵다. 그래서 인생이 수학 문제처럼 명확한 정답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저 정답대로 열심히 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만 존재하면 좋겠다는 의미라 한다. 그런데 너무 미리 다 알고 정해져 있으면, 너무 다 똑같으면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어떻게 이토록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는지, 똑같은 24시간인데 왜 매일 아침저녁마다 다른 일이 생기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묘하다.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진심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의 기간이 후회라는 감정을 쌓아가는 시간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순간순간을 자기 자신답게 최선을 기울여 살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 아래서라도 우리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라고 법정스님이 말씀하셨다.
게임엔 치트 키(cheat key)가 있지만 인생엔 치트 키가 없다. 간혹 생각지 못한 은인이 나타나고, 꿈꾸지 않은 행운이 주어지기도 하지만 착각하면 안 된다. 내게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불어 최선을 다해 성실하고 행복하게 사는 데 집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