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인 연애시절을 경험한 연인들은 결혼하면 ‘당연히’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하려고 결혼을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해보면 여러 면에서 그 행복이 저절로 ‘당연히’ 얻어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결혼 전에는 눈을 크게 뜨고, 결혼 후에는 눈을 반쯤 감아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결혼생활에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하다. 더욱이 평균 기대수명이 지속 증가하면서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부부의 결혼생활 기간 역시 필연적으로 늘어나게 됐다. 당연히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보다 많은 노력과 지혜를 필요로 할 것이다.
십여 년 전에 같은 회사에 다니는 후배가 결혼을 꼭 해야 하는 지 물어왔다. 그래서 셰익스피어가 한 말을 들려줬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고. 그리고 거기에 내 의견을 살짝 보탰다. 그래도 이왕이면 하고 후회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적어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이 남지는 않을 테니깐 말이다.
그런데 만약 지금 시점에서 같은 질문을 다시 물어온다면 나는 이전과 똑같은 대답을 할 자신이 없다. 대한민국 사회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고 인구 사회학적 변화 또한 극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과 결혼생활에 대한 가치관도 많이 달라졌다.
현재 30대 인구 10명 중 4명은 미혼이다. 20년 만에 세 배가 늘었다. 당연히 혼인 건수도 매년 줄어들고 있다. 2021년 혼인 건수는 19만3,000건이다. 지난 2016년 28만2,000건으로 30만 건을 밑돈 지 불과 5년 만에 20만 건 밑으로 떨어지게 됐다. 비혼족(非婚族), 무자녀 가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직업과 경제적인 문제, 집 문제, 자녀 돌봄과 교육비 문제 등 현실적인 시대 상황의 방증이다.
100세 인생 시대엔 이혼과 재혼에 대한 생각과 행동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우리나라의 전체 혼인 중에서 재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남짓이다. 아직은 살짝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향후 이 비율이 꽤 늘어날 수 있다. 평균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부부가 첫 결혼으로 함께 사는 기간이 너무 길어지기 때문이다.
최근 통계를 보면 결혼 연령은 초혼을 기준으로 남자가 평균 33세, 여자가 31세라고 한다. 평균 기대수명이 100세까지 늘어난다면 이혼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부부가 함께 사는 시간이 70년 가까이 된다. 경우에 따라선 한 사람의 일생에 해당 하는 시간이다.
황혼 이혼도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전체 이혼 중 17.6%가 결혼생활을 30년 이상 유지했던 부부였다. 10년 전인 2011년보다 10.6% 포인트 증가했다. 황혼 이혼 증가는 평균수명 연장과 가치관 변화 등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추정되며 향후 지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황혼 이혼은 30~40년에 걸친 결혼생활의 실패가 아니라 종료일뿐이다. 이혼을 했다고 해서 그 결혼 생활이 좋은 것이 아니었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100세 인생 시대엔 인생 2막, 3막을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결혼도 꼭 한 번만 하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몇 해 전에 생겨난 ‘졸혼’이라는 말도 다소 공감이 간다. 오랜 세월 동안 같은 시공간에서 함께 생활한 부부가 평생을 꼭 같은 공간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배려하고 독립적인 자유로운 생활을 존중해주는 것도 100세 인생 시대에 걸맞은 좋은 결혼생활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부부의 모습은 세월이 흐를수록 서로에게 소울(Soul) 파트너가 되도록 진화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랑만으로 결혼생활의 모든 것을 다 풀어나갈 수는 없다. 부부가 연인처럼 서로 마주 보는 것만이 아닌, 인생의 동반자로서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서로를 더 이해하고 배려해줄 수 있을 때 결혼생활에 긍정적인 시그널이 늘어날 것이다.
* 이 글은 필자가 서울경제 <라이프점프>에 연재하는 칼럼입니다. 글의 내용에 대한 문의나 재미있는 제안이 있으신 경우에는 브런치 작가 프로필에 있는 <작가에게 제안하기>를 통해 이메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