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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ha Apr 17. 2019

#3  Welcome to Finnish Summer

a piece of Helsinki


2016.08.24. 수요일


눈꺼풀도, 몸도 무거운 하루의 시작. 조식을 건너뛰고, 이불 속에서 한참을 꼬물거렸다. 그랬더니 상쾌해졌다. 시간으로 따지면 채 몇 분 안 되는 '잔여 수면량'이 하루의 컨디션을 좌우한다.


오늘은 교통권이 필요한 날이라, 인포메이션 센터부터 들르기로 했다.

일상의 풍경이 아닐까, 생각했다.


인포메이션 센터 들른 김에 예쁜 엽서도 사고.
트램을 기다리며. 광고조차 이 공간과 너무 잘 어울린다.


아점을 먹으러 향한 Hietalahdentori 시장. 마침 플리마켓도 문을 열었다. 나름의 시간과 기억을 품고 있는 물건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내로 들어서자, 작은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천장에 매달린 천조차 예사롭지 않아, 여기가 '헬싱키'구나 다시 한 번 느낀다.


왼쪽 오른쪽 고개를 정신없이 돌리며 구경하다, 코너 끝에 다다르면 정육점을 만날 수 있다. 우리의 목적지, Roslund. 이곳에선 고기나 햄뿐 아니라, 즉석에서 햄버거를 만들어 팔기도 한다. 일단 냄새부터 합격. 다른 사람들의 쟁반을 슬쩍 보니 비주얼도 합격. 음식을 받아, 2층에 있는 시장 공용 테이블에 앉아 한 입 - 이 한 입이 중요하다. 두근거리는 순간. - 크게 베어 물었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맛과 향을 놓칠 수 없어 차마 입을 벌리지 못하고, 동그랗게 뜬 눈으로만 '이거 진짜 맛있어!!!'를 연신 외쳤다. 인생 햄버거를 만난, 잊지 못할 순간. 

말끔한 정장의 아저씨들이 아주 신중하게 햄을 고르고 있었다. 그들의 부엌과 저녁 식사를 잠시 상상해봤다.
인생 햄버거, 로스룬드!
say cheese~ 같이 사진 찍자며 유쾌하게 말을 걸던 식당.



소화도 시킬 겸, 다시 거리로 나섰다. 이곳에선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트램을 탈 필요가 없다. 절대적인 면적 탓도 있지만, 걷는 재미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개성 넘치는 가게, 위트와 짓궂음 사이에서 밸런스를 잃지 않는 낙서, 역시 조화를 해치지 않는 광고물까지... 걷는 속도와 눈높이에서만 볼 수 있는 즐거움이 거리 곳곳에 숨어 있다.


실속을 따지자면 헬싱키 여행은 다른 북유럽 국가와 묶는 걸 염두에 두고, 이틀 내외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스쳐 지나가면 미처 보지 못하는 것들이 분명 이곳엔 있다. 8일 동안 이 멋지고 아름다운 곳에서 오늘처럼 늦잠을 자고, 내키는 대로 걸을 수 있어 난 참 좋았다. 내 안의 속도와 이 공간의 분위기가 서로를 재촉하지 않고 함께 흘러가는 것 같았다.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도 '싱키싱키'라고 내뱉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충만해지는 느낌이 드는 까닭일 테다.

소화 겸 산책하며


걷다 보면, 이렇게 헬싱키에서 가장 오랜 역사의 베이커리 카페도 짜잔 나타난다. 운 좋게 빈 테이블이 있어 바로 자리를 꿰차고 앉아, 또 한껏 여유를 부려본다.

Ekberg       /       Bulevardi 9, 00120 Helsinki, 핀란드


아침에 트램을 타고 지나온 길을 그대로 다시 걸어왔다.



아무리 걷는 게 좋아도, 바다 위는 어렵다. 야심 차게 준비한 교통권을 꺼낼 차례. 배를 타고 우리의 강화도 같은 섬, 수오멘리나로 출발.

아침부터 하늘엔 구름이 잔뜩이다. 비만 오지 말아라...


선착장에서 이어진 큰 길을 따라 쉬엄쉬엄 한 바퀴 다 둘러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숨어있는 갈림길이 연신 가지치기하듯 나타났다. 뿌연 하늘이 못내 아쉬웠지만, 천천히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날씨 탓이었을까,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평화로운 곳이었다. 이 섬의 사람들도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이쁜 게 너무 많아서,
사진에 없는 타일까지 잔뜩 샀다. 후훗
겨울엔 이런 모습이구나.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림 같았던 풍경.

사춘기 좀 앓아본 포즈
아이가 다리 아프다고 칭얼대자, 아빠 등이 출동했다. 나도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배 시간에 맞춰 다시 선착장으로 가는 길.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금씩 보인다. 한 걸음만 옮겨도, 풍경이 달라 보이고, 그게 또 그렇게 예뻐서 사진을 연거푸 찍었다.

엽서 사진이 아니에요.
수오멘리나 안녕.


다시 안녕, 헬싱키


수오멘린나        /      00190 Helsinki, 핀란드



헬싱키 선착장에 있는 시장에 잠시 들렀다. 선명한 색깔의 큼직한 야채를 보며 나도 신선도 충전!


트램을 타고 조금 멀리 가보기로 한다. 조금씩 해가 기우는 시간, 아마도 이들은 긴 하루의 2부를 향해 가고 있겠지. 트램의 큰 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참 따뜻했다.


이제 걸을 차례. 어느새 하늘엔 구름 한 점 없다. 파란 하늘, 초록 동산. 헬싱키의 컬러다.

내 맘대로 뽀로로 동산이라 이름 붙였다.


헬싱키에 가면 꼭 들러야겠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곳. 카페 우르슐라.


영화 '카모메식당'의 그 장면처럼, 나도 이곳에 앉아 기분 좋게 광합성을 즐겨야지 싶었다. 도착했을 때 이미 해 질 녘이라 쨍한 햇살은 없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아름다울 하늘과 바다가 있었다. 파란색이 이처럼 다양했었나. 머리 위 하늘색과 저 먼 곳의 하늘색이 다른 걸 어떻게 표현하지, 이 바다색은 뭐라고 말해야 할까.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이곳의 하늘과 바다라는 말밖에는.


하지만 여긴 영화가 아닌 현실. 하늘과 바다, 그리고 날파리도 있었다. 새우 샌드위치를 시켜놓고, 잠시 풍경에 넋이 팔린 사이... 샌드위치에 잔뜩 벌레가 꼬였다. 울상 가득한 얼굴을 보고, 종업원이 툭툭 털어내는 시늉으로 웃으며 말한다. "Welcome to Finnish summer~"


마법의 주문처럼, 그 한 마디로 다시 이곳은 영화가 됐다. 비록 샌드위치는 입 한 번 못 대보고 버렸지만, 그건 아무래도 괜찮아. 이런 하늘과 바다가 내 눈앞에 있는걸. Finnish summer에 와 있는걸.

Café Ursula     /      Ehrenströmsvägen 3, 00140 Helsingfors, 핀란드




호텔까지 꽤 먼 길이지만, 이런 하늘과 바다를 놓칠 수 없어 천천히 걸었다. 새우 샌드위치 대신, 쟁여둔 감자칩과 맥주로 저녁을 해결하며 '카모메식당'을 틀었다.


"단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죠. 하고 싶었던 일을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싫었던 일을 하지 않아서 좋은 거예요."


"세상 어디에 있어도, 슬픈 사람은 슬프고 외로운 사람은 외로워요."


"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모르는 일들이 많아요."


"여기서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곳이라면 뭐든지 잘 풀릴 것 같은 기분."


"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누구나 변하기 마련이죠."


그리고 어느 때보다 단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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