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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훈 Jun 01. 2023

어른 안경

For What It's Worth

해가 지고 캄캄한 방 안에 들어가는 것이 무서웠던 때가 있었다. 지금에 비하면 너무나 모든 것이 작았던 어린아이였던 나는 그때만 해도 눈이 나쁘지 않아 안경을 쓰지 않았었는데, 그러한 순간에만 안경을 쓴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공간과 적막함 속에서 나는 무서운 무언가를 볼 것 같아 무서웠다. 무서운 이야기나 만화를 봤을 때는 밤이 참 무서웠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밤중에 무심결에 깰 때면 이불을 머리까지 덮곤 했다. 혹여나 이불 밖에 조금이라도 내가 비치면, 그때의 내가 생각한 것들 중 가장 무서운 무언가가 다가올 것만 같았다. 이불 안에 있으면 안심이 되던 어린 시절의 나. 그렇게 작았던 어린아이는 어둠 속에 귀신이 보일 것만 같은 꼬마 안경을 끼고 있지 않았을까.


날이 꽤 길어졌다. 어느덧 6월이니 본격적으로 여름이겠다. 어느 순간부터 신문이나 뉴스를 거의 보지 않게 되었지만 역시나 올해도 역대급 폭염, 장마 같은 자극적인 말들로 뉴스 편성시간을 맞추고 있지 않을까. 뭐 전에도 그랬지만 막상 또 들으면 올해가 그렇게 폭염이래? 하며 시시콜콜한 날씨 얘기 정도를 나눌 수 있다면 뭐 그걸로 된 것이 아닐까. 여름이니 날씨가 덥고 장마전선이 오니 비가 오랫동안 내리는 게 당연하지 그것도 모르냐는 것보단, 적어도 더 낫지 않을까.


집에 돌아올 즈음엔 어둡다. 지금까지 여름이 늘 그래왔듯이 더웠던 것처럼, 사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10년 전의 여름도 더웠고, 20년 전의 여름도 더웠고, 늘 그래왔듯이 밤은 항상 어두웠다. 다만 7살 때 쓰던 안경이 아니라서 일까. 나는 이제 더 이상 어두운 곳에서 귀신이 보이지 않는다. 무서운 무언가가 나를 위협하지 않을 것이란 것도 알고 있다. 꼬마 안경이 아닌, 어른 안경을 끼게 되어서 그렇게 된 것일까. 아마 변한 것들은 없을 텐데, 내가 변하기 보단, 조금은 성장한 것이겠지.


아무도 없는 나의 텅 빈 공간에 가방을 둔다. 7살 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겠지만 이제 나는 어두운 곳에서 혼자 아무 생각 없이 불을 켜고, 샤워를 하고 오히려 스탠드 조명 하나만을 켜두고 방의 불빛을 없애버린다. 그렇게 무서웠던 어둠이 이제는 오히려 편안한 것은 역시나 뻔한 말이지만 나이가 들어서일까.


어른 안경을 끼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꽤 오랫동안 꼬마 안경을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그냥 그렇게 되어있었다. 장마 때 비가 내리는 것처럼, 그냥 그렇게 당연하게 어른의 안경을 끼고 있었다. 가끔씩 꼬마 안경을 끼고 싶을 때도 있지만, 없는 것이 오히려 나에겐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그 안경으로 본 순간들에는 내가 너무나 되돌리고 싶고, 후회하는 것들이 많아서. 내가 좋아했던, 행복했던, 사랑했던 그렇지만 결국은 그렇지 않게 되었던 장면들이 꼬마 안경을 끼게 되면 혹시나 되감기가 되듯 그 순간들을 마주하게 될까 봐. 물론 그렇다고 그렇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어제도, 오늘도 어른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본다. 아니 바라본다는 표현은 너무 문체적이라고 할까. 그냥 어제도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그냥 보냈다가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그냥 그렇게 살아왔다. 그리고 그것에 딱히 불만을 가지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지금 이 안경에 좀 익숙해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근에 들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많이 보는 것을 보면 꼬마 안경을 나는 꽤나 오랫동안 써왔던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마 고작 길어야 몇 달, 어쩌면 며칠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이제 어른 안경을 끼고 살아간다. 내가 만난 오늘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치열함이 보이고, 취업에 성공한 친구의 웃음 뒤에 그것을 이루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 그의 간절함이 보인다. 나는 이제야 조금이나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신들의 지난 하루가 나의 하루와 달랐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사랑했던 순간들과 즐거웠던 기억들, 그리고 나의 잘못이 아닌 다른 이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보냈던 것들에게서 나의 잘못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것들을 상실했음에 너무 아파하고 정말 힘들었던 내가 보인다. 지금도 가끔씩 떠오르는 생각들은 이전처럼 나를 크게 괴롭히지 않는다. 왜냐면 어차피 만약 내가 꼬마 안경을 처음 꼈던 어둠이 너무나 무서웠던 그때로 지금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 힘들고 아플 것을 알지만 그리고 똑같은 결론이 난다고 해도 말이다. 그게 두려워 다른 선택을 한다면 나는 그 순간들을 없이 살아야 하니 그것이 더 오히려 나에겐 후회로 남았을 것이다. 그 순간은 그 때 그랬기에 아름다웠던 것이니까. 그러니 그냥 그렇게 내버려 두자. 그 순간들 또한 결국 나였을테니.


어른 안경을 끼고 오늘을 살아왔다. 그리고 그렇게 내일도 살아가겠지. 그때의 주어진 안경으로만 볼 수 있던 세상이 있으니까, 또 언젠가는 이게 젊은 안경이 되고 늙은 안경을 끼게 될 순간도 아마 올 테니까. 언젠가 내가 해야 될 일들을 하고 함께 있을 사람과 저녁을 먹고 결국 필요한 누군가에게 필요한 누군가가 되겠지. 그렇기 위해서 나는 지금 나 나름대로의 노력이라는 것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고 있으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내가 되지 못한 과거의 무수히 죽은 나 자신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내일의 아직 만나지 못한 가능성들을 만나게 될 테니, 어른 안경은 꽤나 괜찮은 것 같기도 하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간절하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제서야 조금이나마 어른이 된 것 같다.


https://youtu.be/SDrPghDvY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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