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석푸석 거리는 눈 밟히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둡다기엔 너무나 새까만 하늘이 지금이 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곧 해가 뜨는, 동이 뜨기 전의 아침일 수도 있지만 그냥 밤이라고 하자. 어차피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니. 저 위에 반짝이는 것들이 인공위성일지 별일지는 상관하지 말자. 빛나고 있으니 그거면 된 것 아닐까.
하늘은 검고 바닥은 하얗다. 위는 눈이 꺼지게 어둡고, 아래는 눈이 부시게 밝다. 저 반짝이는 무언가가 눈에 비추어 하늘로 올라간다. 그래도 하늘은 여전히 검다. 그래도 적적하지는 않다. 흩날리는 눈들이 저 검은 것들에서 나오니 그냥 그것은 아름답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나를 살펴본다. 괜찮은 등산화와 두툼한 야상, 무언가가 들어있는 큰 가방을 메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 나는 저 멀리에 있는 에베레스트 같은 산을 오르고 있는 중이지 않을까. 내가 그런 곳을 가지는 않을 테니 이것은 아마 꿈일 것이다. 아니 꿈이다. 아마 스탠드를 깜빡하고 끄지 않고 책을 보다 의자에서 아마 잠이 들었을 것이다. 제대로 누워서 잤다면 꿈은 잘 꾸지 않으니, 아마도 나는 그랬을 것이다.
그래 이것은 꿈이다. 그렇기에 깨고 싶지 않다. 이곳을 떠나면 나는 내일을 마주해야 하니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다. 어차피 내일은 다가올테니 잠시나마라도 이곳에 더 있고 싶다. 온갖 형형색색들이 난무하는 현실을 벗어나 잠시나마 그냥 이 원초적인 검고 흰 이곳에서 나는 무작정 어딘가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멈춰있는 듯한 내 시간에서 벗어난 이곳에서 나는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시간이라는 개념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손목시계를 찬 것 같았지만 혹시나 그것을 바라보면 잠에서 깰까 그냥 무작정 걸었다. 나아가고 있다는 지금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이 좋았기에 무작정 산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이곳을 오르고 있다. 오르다 보니 벽난로가 있을 것 같은 그런 산장이 보였기에 들어갔다. 노크를 했지만 대답이 없을걸 알고 있었다. 이곳은 나의 꿈속이니까.
박제된 사슴의 대가리가 장작불 위에 장식되어 있다.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지만 그것은 결국 죽어있는 것이다. 살아 움직일 듯 하지만 결국 살아있지 않다. 옆을 보니 박제된 곰의 대가리가 또 있다. 그것 또한 사슴과 마찬가지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한참을 그것들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장작불이 때 가는 소리를 들어가며 나는 고대하던 예술작품을 조우한 듯 멍하니 그것들을 바라보았다. 마치 사슴이 너도 나와 다르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 그랬을까. 그래 어쩌면 나는 너와 다를 바가 없다. 다만 너는 죽어있고 나는 살아있다는 것이 차이긴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박제된 것들의 옆에 딱 내 덩치만 한 거울이 있었다. 죽은 사슴의 눈깔이, 벽에 걸려있는 곰의 눈깔이 나를 바라보는 듯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옷들로 둘러싸여 얼굴만 간신히 나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이었다.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니 대가리만 박제된 그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지친 나의 모습보다 마치 살아있는 듯한 그들의 모습이 더 살아있는 듯하다. 어쩌면 오히려 그들이 살아있고 내가 죽어있는 것이 아닐까. 아니 그래도 나는 살아있고 움직일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들보다는 내가 나은 것인지, 살아있지만 죽어진 그들보다 못한 내 모습이 어쩌면 더 죽은 것이 아닐까.
어쩌면 죽어있는 그들이 살아있는 나보다, 죽어가고 있는 나보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