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기념일에 진심일까
룸바 수업에 갔던 어느 날, 잘 모르는 79세 할아버지의 생일 파티가 열렸다.
신나는 선곡에 맞춰 우리는 큰 원을 그리며 춤을 추고 있었고, 갑자기 선생님이 한 할아버지를 가운데로 보내고서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게 했다. 그러고서는 노래의 후렴구마다 외쳤다.
“Happy Birthday, John!!”
존은 빙긋 웃으시고는 팔을 번쩍 들어 올리고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하셨다. 우리는 원을 좁혔다 넓혔다 하면서 존 주위를 신나게 맴돌았다. 처음엔 작은 이벤트 같았지만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나도, 옆사람도 선생님만큼 크게 외치고 있었다. ‘Happy Birthday, John!‘ 모두 다 어금니를 한껏 드러낸 미소를 짓고 잘 모르는 할아버지의 생일을, 그의 지난 인생을 그리고 한해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었다.
맞다. 한해를 성실하게 살아내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그 시간을 축하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고 축복이라고 나도 함께 소리 지르면서 생각했다. 무려 79세의 생일에 살아 있어서 룸바도 출수 있어 좋다고 생각하면서, 또 다른 한해를 살아감 힘과 사랑을 받고 주는 그게 기념일이지!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그렇게 믿어왔다. 짧고 흐릿한 인생에서 중간중간 어떤 날들을 ‘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표시해 두면 그것이 일종의 이정표이자 마일스톤이 되어준다고. 작은 기념일들이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힘든 일상에서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되어준다고.
하지만 한국에서는 ‘기념일은 피곤해’라던지 ‘부담돼’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노래가사처럼 여전히 묵묵한 표현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가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티가 아닌 숙제처럼 느껴지는 기념일들, 축하받는 당사자마저 “괜찮아”라고 말하면, 아무리 축하하고 싶어도 억지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 미국에 와서 제일 먼저 놀라건,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얼마나 열심히 기념하는가였다. 달력을 넘길 때마다 또 다른 ‘데이’가 기다리고 있었고, 정말 그날들은 조금 특별한 하루가 되곤 했다. 생일날 정원에 세워진 거대한 축하 팻말, 학교에서 일주일 내내 이어지는 ‘선생님 감사 주간’, 밸런타인데이, 세인트 패트릭스데이, 독립기념일.. 심지어 달력 속 빈칸조차 새로운 기념일로 채워버리는 문화. 이곳 사람들은 정말 기념일에 진심이었다.
왜 그럴까. 언어도 종교도 다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나라에서는 함께 웃고 즐길 공통의 날이 꼭 필요했을지도, 아니면 자본주의의 끝판왕인 나라답게 기업들의 이런 문화를 크게 키웠을지도. 또 어쩌면 ‘인생은 짧으니 뭐라도 축하하면서 살자’는 미국식 낙관주의가 이런 문화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칼 세이건의 딸인 사샤 세이건은 그녀의 책 『For Small Creatures Such as We(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을 위하여)』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의식을 통해 시간을 표시하고, 평범한 일상에서 의미를 발견한다”라고 썼다. 의식과 기념으로부터 우리의 날들이 그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주목하고 기리고 기억할 가치가 있으며,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연결감과 위로 그리고 목적을 준다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는, 특별하게 만드는 그 진심이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한 달에 한 번, 그 달의 기념일과 그 속에서 내가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를 기록해보려 한다.
“For small creatures such as we, the vastness is bearable only through love.(“우리가 얼마나 작든, 사랑 덕분에 우주의 광대함이 견딜 만해진다)”
— 칼 세이건 『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