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티와 롱테이크
8월 15일 밤에 집 근처 영화관에서 [협녀, 칼의 기억]을 보았다. 무수히 많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액션 하나 감상하기 위해 소화했다. 하지만,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액션 연출까지 실망스러웠다. 내가 기대했던 건 이런 게 아닌데 기대치가 필요 이상으로 높았던 모양이다. 내가 바라는 기대치란 어느 정도인가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는 김에 한국 액션 영화에 대한 사견을 적어볼까 한다.
나는 10대 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액션 연출에 관심을 가져왔다. 당연히 아직도 다수의 중화권 영화를 찾고 있으며, 아날로그 액션이 가미된 국산 영화는 거의 다 챙겨 본다. 그러나 국내 영화를 접하면서 중화권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을 똑같이 얻는 건 거의 항상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누구나 취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한국 액션 영화가 공통적으로 갖는 문제점은 아래의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1. 카메라 워크 (+리얼리티)
2. 롱테이크
1. 카메라 워크
나처럼 배우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주목하는 애호가들에게는 카메라 워크가 무척 중요하다. 김성수 감독의 대표작 [비트]가 내 나이대 또래들의 10대 시절을 대표할 만한 콘텐츠라는 사실에는 100% 동의하지만, 나에게 있어 [비트]의 카메라 워크는 쥐약이다. 나는 사람의 움직임을 허상에 가깝게 연출하는 촬영 기법이 예나 지금이나 정말 싫다. 그것이 연출자의 의도이건 아니건 간에 무조건 싫다.
원신연 감독의 [용의자]를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 또한 카메라 워크였다. 공유가 타 배우와 합을 겨루는 장면에서 툭하면 카메라의 줌인-줌아웃을 반복하며 어떤 동작을 취하는지 알기 힘들게 만드는 촬영기법이 너무 싫었다. 잘 만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취향과 대조적인 카메라 촬영 기법이 아직까지도 아쉽다. 개봉한 지 1년이 더 되었는데도 말이다.
카메라 워크는 리얼리티(사실성)의 구현과도 직결된다. 촬영이 엉성하면 당연히 사실적인 묘사가 어려워지게 된다. 그렇다고 극사실주의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적당히 현실성 있는 액션을 연출하되, 움직임이 최대한 잘 보이도록 촬영하길 원하는 것이다.
2. 롱테이크
말 그대로 한 컷 한 컷 긴 시간 동안 촬영하는 것이 롱테이크이다. 액션 연출 과정에서 롱테이크를 구현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연출에 뛰어든 모든 스태프와 배우가 쩔쩔 매는 모습도 눈에 훤히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국산 액션 영화에서 롱테이크가 더 많아야 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eRBwvIX7Sao
한국의 아날로그 액션 중에도 우수한 사례는 있다.
아마도 가장 유명한 롱테이크 씬은 [올드보이]가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올드보이]의 이 롱테이크 컷은 연출이 워낙 힘들어서, 배우들의 체력 안배를 위해 한 번 촬영했다가 일정 시간 동안 쉬고 다시 촬영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주연 배우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의 혼을 빼놓는 촬영이겠지만, 그러한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진정한 작품이 탄생하지 않겠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K19-7Hf4-M8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 후반부에 등장하는 원빈의 1대 1 대결도 주목할만하다. 롱테이크에 치중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의 카메라 워크는 좋은 사례가 된다.
모범 사례
국외로 눈을 돌려 보자. 리얼리티와 롱테이크 양면에서 나의 기대를 충족시켰던 국외 영화는 굉장히 많다.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액션의 극한을 보여준 성룡(成龍)의 '80 ~ '90년대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복성], [쾌찬차], [비룡맹장], [용형호제] 시리즈, [성룡의 CIA], [프로젝트 A] 시리즈,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2014년 작품은 제외) 등 아기자기하면서도 타격감을 잘 살린 영화가 꽤 많았다. 이런 영화들을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게 10대 시절이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를 좋아한다.
http://tvpot.daum.net/v/vf34dZXH0iUUZ9wEGX8kXGU
좋아하는 배우인 견자단(甄子丹)의 참여작 중에도 빼어난 액션 연출이 담긴 영화가 많다. 최악의 의상과 헤어 스타일에도 불구하고 액션 연출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용호문], 오경(吳京)이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알게 해 준 [살파랑], 예성(倪星)과 마지막 액션 파트만 한 달 이상 촬영했다는 [도화선], 합을 겨루는 컷마다 조금도 어설픔이 보이지 않았던 [엽문 1] 등 2000년대에 촬영한 영화 중에 수작이 많다.
오경(吳京)의 영화도 취약한 시나리오만 배제한다면 [흑권], [남아본색], [탈수] 등 괜찮은 액션 영화가 많다.
서양으로 눈을 돌리면, 근래 개봉한 [매드 맥스: 퓨리 로드]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선 굵은 액션의 대명사 장 클로드 반 담의 영화 중 그나마 괜찮았던 [유니버셜 솔저 1]도 좋은 작품이며, 스티븐 시걸의 [언더시즈 2]도 기억에 남는다.
나는 영화계 관계자도 아니고, 그저 아날로그 액션 영화 애호가에 불과하다. 영화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권리도, 의향도 없다. 하지만, 액션 영화를 볼 때에는 나만의 뚜렷한 기준을 갖는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에 맞추어 더 좋은 국산 액션 영화가 나오기를 늘 고대한다. 현재까지 노출되어 있는 결점을 한국의 무술 감독들이 그저 간과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