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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ia Aug 02. 2021

죽어도 안 보겠다던 교사 임용고시

삶을 돌고 돌아 교사가 되다.

20대 초반부터 10여 년간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아봤다. 처음에는 그저 영어를 배우기 위해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간 것이었다.


나는 사범대를 다니고 있었고  4학년이 되자 당연한 듯이 나와 주변 동기들은 임용고시 준비에 들어갔다. 물론 난 일주일 만에 포기를 했다. 그 당시 내 임용 과목은 경쟁률이 정말 어마어마했고 전국에 거의 뽑지 않는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망이 없어 보였고 무엇보다도 난 내 전공과목이 너무나 지루하고 싫었다. (사실 공부하기 싫은 게 가장 큰 이유였다..)


난 그 당시 우리 과목보다는 상황이 훨씬 좋았던  영어 교사자격증을  영어로 임용고시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어라고는 hello 밖에 말할 줄 몰랐기에 호주로 무작정 떠난 것이었다. 호주에 다녀와서 영어가 늘면 영어 부전공을 하고 영어로 임용을 봐서 영어 교사가 되는 것이 나의 '완벽한' 플랜이었다.


 그때까지는 그게 정말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호주를 계기로 난 세이 얼마나 넓은 지를 알아버렸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한국에 돌아와서 계획대로 영어 부전공도 하고 영어교사자격증도 땄다.


하지만 난 임용에 더 정이 떨어졌고 임용에 붙을 정도로 공부할 자신도 없었다. 차라리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 지금까지 못해봤던 것들을 해보고 다른 외국어도 배워보고 다른 꿈을 꿔보고 싶었다.


그래서 호주 이후 중국에 가서 중국어를 새로 배 다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도 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가 외국 어딘가에서 어떤 큰 꿈을 이루고 뭔가 성공한 그 '누군가'가 될 줄 알았다.


런데 이 세상에는 외국어 잘하는 사람(나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너무 많았다. 내 외국어 실력 정말 그저 그렇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외국에 돌아다니며 사는 삶은 이미 시작돼버렸고 한국에서 성공할, 남들처럼 열심히 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확실한 목표도 없이 정처 없이 떠돌며 이것저것 찔러보고 해 보고 포기하고 그런 반복되는 삶을 살아갔다.


직장을 구하면 3개월을 넘기질 못했다. 중국에서도 멕시코에서도 체코에서도... 심지어 잠깐 한국에 와서 일했을 때도.. 그렇게 꿈꾸던 도미니카공화국에 해외봉사를 갔을 때도 난 기간을 다 못 채우고 돌아왔다.


어느새 30대 중반이 되어갔고 난 무서웠다. 더 이상 이렇게 정처 없이 떠돌고 싶지 않았다. 난 사실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난 학창 시절에 선생님들을 쉬는 시간에도 쫓아다닐 정도로 너무나 좋아하고 친구들에게 모르는 걸 가르쳐 주는 것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항상 꿈은 선생님이었었다.


하지만 임용고시 공부가 무서워 난 이렇게 10년을 넘게 빙빙 돌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물러날 곳도 내가 갈 곳도 버틸 곳도 없다는 것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래서 난 작년에 갑작스럽게 비장하게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초반 몇 달은 독서실에서 매일 울며 공부를 했다.


내가 과연 될 수 있을까? 이 나이에 머리가 돌아갈까? 대학교 때 그렇게 싫다던 그리고 지금 아무 생각도 안나는 그 전공과목을 가 과연 공부할 수 있을까? 떨어지면 난 이제 어떡하지? 온갖 이런 생각들이 날 힘들게 했고 난 내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괴롭혔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10여 년간 외국을 돌아다니며 살았던 내 시간들이 너무 후회되고 다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몇 개월 후부터는 정신을 차렸고 난 정말 수능 때 이후로 최고로 열심히 공부했다. 내 전공과목은 이제는 경쟁률이 훨씬 낮아져 있었고 난 너무나 간절했었기에 높은 점수로 합격을 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합격을 축하드립니다'를 확인하던 그 순간을..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을.. 부모님께서 너무나 행복해하시며 눈물을 글썽거리시던 그 순간을..


난 내 자신과 약속했다. 이제는 정말 불안해하지 않고 어딘가로 도망갈 계획 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로..


내가 학창 시절에 그렇게 좋아하고 존경했었던 선생님들처럼  열정 있고 학생들을 사랑하는 교사가 되기로...


그리고 올해 바로 중학교로 발령을 받았고 난 처음으로 내 삶에서 '불안'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처음으로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온전하게 행복함도 느껴봤다.


처음으로 매일 아침 출근할 때 우울해하면서 괴로워하면서가 아니라 설레면서 출근을 했다.


앞으로 교사 생활을 하며 당연히 또 많은 힘든 일들이 오겠지만 그래도 전만큼 불안하진 않을 것 같다.


누군가는 부러워했지만 정작 내 자신은 부끄러워했던 내 지난 10여 년을 이제부정하기보다는 지금 이렇게 꿈을 이루기 위한 밑거름이었다고 생각하 감사하자.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없다지 않나.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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