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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Apr 08. 2021

헤어진 직후에 소개팅하면 망하는 이유

급하게 먹고 체하지 맙시다

친구의 이별 소식을 들으면 제일 먼저, '얘 소개시켜줄 사람 어디 없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 친구가 빨리 헤어진 애인을 잊고 행복하게 새 출발을 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모진 이별을 당하고 욱하는 마음에 소개팅이라도 해볼까 싶어 여기저기 친구들을 찔러봤어요. 주변에 괜찮은 사람 없냐고 물으면서요. 사랑은 사랑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고 배웠거든요.


그래서 헤어지자마자 소개팅을 서너 개씩 잡아본 적도 있습니다. 아무리 사귀는 동안 힘들었어도 막상 사라지니 공허함을 견딜 수 없겠더라고요. 일도 손에 안 잡히고요. 일부러라도 벗어나야 한다는 걸 머리는 알고 있는데, 오히려 마음은 기어이 슬픔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잘 안 된다고 하더라도 잠깐이나마 연락할 사람이 있다는 게 위안이 될 것 같았고, 잘 되면 좋은 일이니 손해 볼 거 없는 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소개팅들의 결말이 어땠냐면요.


첫 소개팅은 이랬습니다. 만나서 처음 데이트를 하는데 자꾸 전 남자친구가 생각났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제가 좋아하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시켜주던, 뭐든 잘 흘리는 저를 위해 항상 물티슈를 가방에 넣고 다니던, 굳이 얇은 패딩조끼를 입고 와서는 제가 춥다고 하면 곧바로 벗어주던 전 남자친구. 이렇게 자꾸 전 남자친구가 떠오르니 소개팅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남자분과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나눴는지도 모른 채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게 첫 소개팅 실패.


두 번째 소개팅은 이랬습니다. 소개팅을 주선해준 제 친구가 저랑 찰떡궁합일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것처럼, 대화도 잘 통하고 외모도 준수한 사람이었어요.  다행히 그분이 저를 좋아해 주셔서 애프터를 받았고 세 번째 데이트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제 휴대폰에는 아직 지우지 못한 전 남자친구와의 사진과 문자메시지가 있었어요. 저는 틈만 나면 굳이 옛 추억들을 들여다봤고 이유모를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전 남자친구가 아직 나를 못 잊었으면 어떡하나, 다시 연락 왔을 때 벌써 다른 사람이랑 소개팅까지 한 나한테 실망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소개팅도 실패.


세 번째 소개팅에서 만난 사람과는 결국 사귀게 되었는데요. 얼마 못 가 헤어졌습니다. 전 남자친구랑 헤어지면서 제 마음이 한껏 삐뚤빼뚤해진 상태인데, 상대방이 그 마음까지 보듬어주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사랑에도 기브 앤 테이크가 필요하다고 친구들에게 그토록 강조해놓고선, 정작 저는 '기브' 하지 않고 '테이크'만 원했던 거죠. '그동안 이별하느라 너무 힘들었으니까  배로 행복해야 !' 같은 보상 심리가 생겨 새로운 연애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만든  같기도 하네요. 아직도 그때의 연애만 돌이켜보면 '내 마음이 좀 더 평탄해지고 말랑말랑해졌을 때 그 사람을 만났더라면 우리의 결말은 어떻게 달라질까?'란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세 번째 소개팅은 괜히 이별만 한 번 더 하고 실패.



네. 결국 전부 실패로 끝났습니다. 애써 시간 내어 소개팅 자리에 나와준 사람들에게도, 저를 위해 소개팅을 주선해준 친구들에게도 미안한 일이 됐죠. 제 스스로에게는 어떻고요? 소개팅이 어그러질 때마다 전 남자친구와 처음부터 다시 이별하는 기분이 들었고, 소개팅남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져 매일 밤 마음 편히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어요. 사랑은 사랑으로,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게 맞지만 모든 일엔 때가 있다는 걸요. 도화지에 이미 알록달록한 색을 잔뜩 칠해놓았는데, 그 위에 다른 색을 덧칠해본들 티가 날 리가 없죠. 우리에겐 과거의 색깔이 바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이별 후폭풍은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맞서 견뎌내야만 합니다. 충분히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서 많은 것들이 정리가 됐을 때. 바로 그때가 다음 연애를 시작할 준비가 된 시점이에요. 급하게 먹으면 체하잖아요. 인간관계는 더 그렇습니다. 나 스스로를 돌볼 정도로 여유가 있어야 상대방을 배려할 수도 있는 거고, 내 마음이 건강해야 남을 사랑할 여유도 생기는 겁니다. 마음이 급하면 실수하기 쉽고 한 번 어긋난 인간관계는 지속되기 어려우니까요. 어차피 소개팅으로는 이별의 아픔이 덮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으니, 앞으로는 피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별은 아무리 반복해도 끔찍하지만 말이에요. 씩씩하게 극복하고 나서, 더 좋은 사람과 더 나은 출발을 준비할래요.




 양유정 

그림 소우주 (instagram@sowoojo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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