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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Apr 10. 2022

이별 후 혼자서 잘 지내는 연습

스물여덟의 봄, 2년간의 연애에 마침표를 찍고서

2년 2개월의 길고도 짧았던 연애에 마침표를 찍은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이별 후 난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바보가 됐다. 딱히 의존적인 편도 아니었는데, 처음 이별하는 열여덟 살처럼 한심하게 살았다.


밥도 혼자  먹어서 매일 저녁에 약속을 잡았다.  정신으로 캄캄한 집에 들어가는  무서워서 조금은 취한 채로 귀가했다. 매일  악몽을 꾸고  시간에  번씩 깨는  싫어, 친구를 불러 밤늦게까지 떠들다가 자기도 했고, 꼬박꼬박 챙겨보던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도 집중하지 못해 밀렸다. 매일 쓰던 일기는   줄도  쓰겠어서 헤어진  이후로 펼쳐보지도 못했다. 매일  잠들기 전에 하루를 되돌아보고 감사해했던  루틴이, 평화로운 일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풋내기처럼 어리바리하게 구는 내가 어찌나 꼴 보기 싫던지. 혼자서도 잘 지낼 줄 알아야 연애할 때도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잘 알아서 마음이 조급해졌던 것 같다. 하루빨리 혼자 지내는 삶에 적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몰아세웠고, 헤어진 지 일주일 만에 내 사진을 다 지웠다는 그 사람의 회복 속도가 무서웠다. 나는 미련도, 정도 많아서 시간이 더 필요한데, 나만 이 이별에서 부진아가 되는 기분. 그냥 남들처럼 '헤어질 수도 있지' '또 좋은 사람이 나타날 거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 도대체 왜 내 이별엔 내성이 안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불안감은 한동안 잠잠했던 공황장애를 다시 불러왔다. 지하철에서, 차에서, 실내에서. 헤어진 지 3주 만에 공황장애 증상이 3번이나 나타났다. 누굴 탓하랴. 내 삶에 더 이상의 이별은 없을 거라 믿었던 내 오만함과 도망칠 구멍도 만들어놓지 않은 내 안일함을 원망하는 수밖에.


몸도 멘탈도 약해져 술자리에서 우는 나를 보고 누가 그랬다. 20대 초반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재수 없지만 맞는 말이다. 스물여덟이면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음 스텝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이깟 이별쯤, 힘들긴 하겠지만 시간이 해결해줄 거라 믿고 빨리 일상을 되찾을 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이별을 하고, 이번에 내 차례가 됐을 뿐이니까. 그 재수 없는 말에 오기가 생겨서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안 울었다.


계속 바보처럼 굴기 싫어서 뭐라도 했다. 그가 빠져나간 시간에 얼른 뭐라도 채워 넣자는 마음으로. 하릴없이 시체처럼 누워있는 게 싫어서 탁구 레슨을 등록하고 (사람은 움직여야 에너지가 생기니까!) 일주일에 최소 두 번은 땀 흘려 운동했다. 다른 평일엔 못 만났던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몸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주말엔 아빠랑 같이 운전 연습을 했다. 장롱 면허 8년 차, 운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안 했었는데 날씨가 좋아지면 직접 차 끌고 놀러 가겠다고 다짐했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게 싫어서 예쁜 옷을 사 입고 화장도 열심히 했다. 내가 좋다는 사람이랑 마음에도 없는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너무 바쁘게 산 나머지 생기 없고 퀭한 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긴 했지만, 그래서 한 달만에 4킬로그램이나 빠진 건 좀 이득인가. (이별 다이어트... 효과 만점이다.)


이와 더불어 이별을 완벽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어떻게 우리가 헤어져.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가!'라며 부정할 게 아니라, 팩트를 직시하는 것. 꽤 오랫동안 함께 탑을 쌓아 올렸지만, 내가 눈치채지 못한 어느 순간부터는 아니었을 거다. 공든 탑 위에 다음 돌을 올리려고 내가 애쓰는 동안, 그는 한 걸음 물러서서 다른 탑을 쌓으러 갈지 고민했을 거고 그는 결국 그 자리에 탑이 없었던 것처럼 무너뜨리고 떠났다. 탑을 더 높이 쌓기 위해 고민했던 것도, 무너진 탑의 잔해를 허무하게 지켜보던 것도 나 혼자. 그게 우리의 이별이다. 출퇴근길과 잠들기 전에 전화로 이야기를 나눌 사람, 회사에서 점심 메뉴는 뭐였는지 사진을 주고받을 사람, 같이 휴가를 계획할 사람, 모든 스케줄을 공유하고, 당연하다는 듯이 주말을 함께할 사람, 그 사람은 이제 없다.


그래도 함께 탑을 쌓아 올리는 동안 눈물 나게 행복했으니까, 한순간도 뺀질 대지 않고 난 최선을 다해 탑을 쌓아 올렸으니까, 이번 연애에 후회는 없다. 좀 요령을 부릴 걸 그랬나 싶다가도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안 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다음 탑을 쌓을 때도 나는 끝까지 온 힘을 다해야지. 이별해봤자 딱 이만큼, 내가 아는 만큼 아플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별과 후유증을 똑똑히 기억하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엔 의리있게 나랑 끝까지 탑을 쌓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지.


스물여덟 살에 혼자서 잘 지내는 연습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확실하게 안 괜찮은 날보다 괜찮은 날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조금만 시간이 더 흐르면 매일매일 혼자 잘 지낼 수도 있게 되겠지. 그날이 어서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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