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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Aug 16. 2023

스물아홉 살, 이별 극복의 기록

지난달 나는 또 한 번의 이별을 했다. 작년 초에 했던 이별이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었는데 역시 세상은 내 뜻대로 흘러가주지 않는다. 그가 전화로 우리의 이별을 얘기했을 때 나는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이번 연애의 결말이라고? 겨우 이렇게 끝날 관계였다고?' 하면서.


동시에 무척 두려웠다. 작년의 나는 2년 2개월간 만났던 사람과 이별한 후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공황장애를 겪었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고 혼자 집에 들어오는 걸 힘들어했다. 가만히 있다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고, 술에 취해야만 숨이 좀 트이는 최악을 나날을 보냈다. 그가 내 전부라고 생각했으므로 그가 없는 나에게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일상이 무너지도록 무기력하게 내버려 뒀다. 다시 '사람답게' 살기까지 9개월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연애는 또 얼마나 오래 걸릴까. 작년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았는지 '이번에는 얼마나 아플까, 극복하는 데에는 또 얼마나 걸릴까' 무서운 생각이 앞섰다. 아니나 다를까 이별한 다음 날 눈을 떴는데 '마음'이라는 게 어디에 위치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가슴 한가운데가 아팠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는 내 브런치를 읽고 이별을 결심했다고 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져야 하는 관계이고, 유정인 지난 연애에서도 그랬듯 이별을 잘 극복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브런치에 글을 썼던 것을 후회했다가 그에게 내 브런치를 알려준 것을 후회했다가, 그와 만나는 동안 싸웠던 날들을 떠올리며 자책하고 날 원망했다. 그의 말을 하나하나 짚어볼수록 내가 자초한 이별인 것처럼 느껴져 더 속상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죽을 만큼 힘들었다. 작년처럼 똑같이 밥을 못 먹고 똑같이 죽을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회사에 가고 어쩔 수 없이 운동하러 갔지만 넋이 나간 상태였다. 나이를 먹어도 이별은 똑같이 아프다. 다른 건 다 무뎌지는데 왜 이별은 한결같이 지독한 걸까. 어반자카파의 '똑같은 사랑, 똑같은 이별'이라는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그렇게 또 다른 만남과 또 다른 사랑에

    똑같이 아파, 늘 같은 이별하면서



나는 잘 살고 싶었고, 이별이 나를 또 병들게 내버려 두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는 자신이 없어 도움을 청했다. 이별했단 사실을 온 주변에 알렸다. 내 주위엔 감사하게도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 많아서 모두 진심을 담아 나를 위로했고 응원해 줬다. 잘 헤어졌다고, 차라리 잘 됐다고. 네가 정이 많은 사람이라 잠시 마음이 힘든 것일 뿐, 네 인생에 그 사람은 정답이 아니었던 거라고. 작년에 그렇게 아픈 이별을 하고서도 결국 잘 이겨내지 않았느냐고. 이번에도 할 수 있다고...


나를 오래 봐온 사람들이, 진심을 담아 해주는 말들은 내 마음에 단단히 뿌리를 내렸다. 그 뿌리는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도저히 이겨낼 자신이 없다고, 역시 난 안 되겠다고 다시 주저앉으려 하면 그들은 때를 놓치지 않고 더 단단한 지지대를 받쳐주었다. 내가 끼니를 거르지 않았는지 물어봐주고 책과 꽃을 선물해 주고 집에서 날 꺼내어 좋은 것들을 구경하게 해 주었다.


놀랍게도 난 정확히 일주일 뒤 당황스러울 정도로 괜찮아졌다. 거의 매일 보다시피 했고 일상을 빠짐없이 공유하던 사람이 사라졌으니 허전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지 않았다. 그와의 사진을 들여다봐도 슬프지 않았고, 오히려 함께 보낸 시간이 참 예뻤다는 생각과 그런 추억을 만들어준 그에게 고맙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는 우리가 이별해야 하는 이유를 나에게서 찾았지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그의 탓을 하지 않았다. 그가 나와 연애하는 동안 신뢰를 깨뜨리는 잘못을 반복했어도 끝내 그를 용서했고, 이별하는 순간에도 그 일들을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냥 전부 내 탓으로 돌리고 털어낼 정도로 넉넉한 이별을 했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랑하는 동안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이별하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했으므로 후회할 게 없었다. 그러니 더더욱 미련 없이 좋은 기억만 남길 자신이 있었다.


이제 그와 헤어진 지 꼬박 한 달이 지났다. 아직은 문득 그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내 일상은 기특하게도 건재하다. 작년의 나는 이별을 인정하지 못 하고 삶의 균형이 무너지도록 내버려 뒀다면, 올해의 나는 이별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찾았다. 이별 따위가 감히 방해할 수 없는 소중한 내 삶을 잘 지키고 있다. 걱정했던 것보다 빨리 이별을 극복했단 이야기를 이렇게 브런치에 남길 여유도 있다. 어반자카파의 노래 가사처럼 '늘 같은 이별을 하고, 똑같이 아프'지만,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이별마다 다른 것 같다. 이별의 고통에 무뎌지진 않을지언정 이별의 극복엔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는 걸까.


어느 날, 미래의 유정이가 또다시 자신 없는 이별을 한다면 이 글을 꺼내어 읽고 희망을 가지면 좋겠다. 상실의 고통은 어찌할 수 없지만, 반드시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 그 희망에 대해선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를. 내겐 뭐든지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고, 내 주변엔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어깨를 내어줄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를.


잘 가 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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