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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Oct 25. 2020

5년 지기 친구들이 불편해진 이유

이렇게 하나, 둘 멀어지는 구나


얼마 전 대학 시절의 친구들을 만났다. 20살, 21살 무렵에 만났으니 벌써 5년 지기다. 우리는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빡센 팀 프로젝트 수업에서 A+를 받고선 방방 뛰며 기뻐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우리가 사회인이라니? 새삼스레 대견한 감정을 뒤로 하고, 모처럼의 만남에 들떠 퇴근하자마자 약속 장소로 달려갔다.

넉넉하게 음식을 주문하고 답답했던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밀린 근황을 쏟아냈다. 어중간 한 대학생 신분에서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을 거치며, 친구들도 나도,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듯 고군분투했던 지난 시간들. 우리는 대학생 때처럼 여전히 삶을 진지하게 대하고 있었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각자 일하는 분야는 달랐지만 우리는 여전히 빛났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상하게 피로감이 몰려왔다. (조금 직설적으로 얘기하자면) 친구들의 이야기가 너무 재미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그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대박” 이러면서 대화에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을 텐데, 자꾸 집중을 못하고 생각이 딴 길로 샜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굴렀으니, 그냥 좀 피곤했던 것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냥… 친구들의 이야기가 지루했고, 내 이야기를 꺼내놓는 게 꺼려졌다. 그 이후론 속으로 하품을 삼키면서 집에 갈 시간만 기다렸다.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뭐가 문제였을까? 내가 변한 걸까? 아님 우리가? 같은 캠퍼스에서 함께 20대 초중반을 보내며 참 많은 것들을 공유했던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나무라지 않았지만) 나는 죄스러울 정도로 미안해졌다. 매번 헤어지는 게 아쉬워 아슬아슬하게 막차를 타고 집에 갈 정도였는데, 도대체 왜? 불편한 사람들과의 자리였다면 몰라도, 친한 친구들과의 시간을 보내면서 즐겁지 않아 하는 내가 낯설었다.


생각해보니 비슷한 감정을 전에도 느껴봤던 것 같다. 중고등학생 시절 내내 친했던 10년 지기 친구들을 오랜만에 만났던 그날. 수능이 끝나고 다른 학교, 다른 학과에 진학한 이후부턴 멀어진 거리만큼이나 사이도 소원해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신문방송학과, A는 사회복지학과, B는 경영학과, C는, D는... 학교의 위치도, 하다못해 학교마다 술 게임 인트로마저 서로 달랐다. 그러니 서로 새로운 캠퍼스 라이프에 대해 구구절절 늘어놓은들 흥미로울 리가 있나. 그래도 그땐, 술에 취한 와중에도 빨리 화두를 중고등학교 시절 추억팔이로 돌려 금세 웃음꽃을 피울 수 있었다.

원인을 찾고 싶었다. 혹시 나 이제 인싸력이 딸리는 건가? 코로나 때문에 집에만 처박혀 있었더니 텐션 올리는 법을 까먹은 게 아닐까 하고. 그것도 아니면, 하루치 에너지를 회사에서 전부 소진해버려 저녁엔 무조건 침대와 한 몸이 되어야 하는 저질 체력이 되어 버린 걸까? 뭐, 둘 다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에게 교집합이 많이 사라져 버렸단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상사에 대한 험담은 10년 지기 절친에게 보다 만난 지 1년도 안 된 회사 사람과 하는 게 더 재밌는 것과 같은 이치. 이제 막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데, 서로의 일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어떤 공감도 조언도 힘들었을 거다.


물론 언제 만나도,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한결같이 쿵짝이 잘 맞는 친구들도 있다. (하지만 또 모르지. 이 친구들도 몇 년 뒤에는 안부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불편한 사이가 되어 있을지도.) 또 한편으로는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오랜 친구처럼 잘 맞는 친구들도 있다. 이 친구들은 대체로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난 친구들이다. 얼굴 조차 모르는 내 친구 이야기까지 제 친구 이야기인 양 들어주는. 하지만 나는 흥미 있는 주제와 그렇지 않은 주제가 분명하고, 거짓 리액션을 잘 못하는 타입이다. 특히 ‘회사에서 에너지를 모두 방전시켜버린 나’는 더더욱. 그러니 전혀 공감되지 않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불편할 수밖에.


한 번 불편하게 느껴진 친구들을 다시 친근하게 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한동안 그 친구들과의 자리를 피할는지도. 굳이 이 죄책감에 매듭을 짓자면, 그냥 많이 친했던 만큼 많이 아쉬운 거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속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평생 공통 분모를 가지고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니까. 20대 초중반을 공유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니까. 그렇다고 우리의 인연이 끝난 것도 아닐 뿐더러 시간이 흐르면 그때 다시 공유할 것들이 생겨나겠지. 서로 전혀 알지도 못하는 각자의 얘기 대신에 일부러라도 교집합을 찾아 대화를 나눌 정도로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그땐 옛날처럼 하하호호 웃으며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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