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의 가장 오랜 친구

20살 나이 차이쯤이야

by 마담

제주살이 가장 오랜 인연은 우리 동네 주인집 60대 이모다. 그때의 인연으로 입도 이후부터 쭉 한 건물에서 살고 있다(집을 넓혀 같은 층 옆집으로 한 차례 이사는 했다). 부동산에서 만난 이모의 첫인상은 깐깐했다. 이모는 나를 한차례 훑고서는 직업이 무엇인지 뭐 하다 제주까지 오게 됐는지 물었다. 월세나 연세(제주의 임대 방식)를 살게 되면 주고받는 질문 중 하나이긴 하나, 내가 월세를 밀리지 않고 잘 낼 사람인지, 인간성 까지도 평가받는 느낌이었다. 나는 집주인을 ‘사모님’이라 부르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어 과거 직업은 이러했고 현재는 잠시 일을 쉬고 아이들과 제주살이하러 왔다고 했다. 혹시 불안해할까 싶어 남편의 직업까지도 일러두었다. 알고 봤더니 이모는 나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지금까지도 모든 세입자에게 깐깐하게 대했고 집을 비워둘지언정 임대인과 임차인의 연을 함부로 맺지 않았다.



6개월쯤 지났을까. 오며 가며 마주치면 차츰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시작하셨다. 동문시장 활용법, 제주도민이 가는 생선 가게, 자연 경관이 빼어난 숨은 관광지, 제주 특산물 요리 법 등등. 어른들과 대화하는 데 스스럼이 없는 나는 주인집 이모를 만나면 20~30분씩 길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이모는 겨울이면 귤을 한가득 담아 문 앞에 철마다 두고 가셨다. 그러면 나도 고마워서 엄마가 보내주신 것들이나 디저트를 사서 가져다드리곤 했다. 서로 존대를 해가며 예의를 지키는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호칭 또한 매번 깍듯이 사모님이라 부르며 적당한 거리를 두며 지냈다.



주인집 이모와 엄청나게 가까워진 계기가 있었는데 바로 고사리 꺾기 회동 덕분이다. 입도 2년째인가 이모가 생고사리 볶음 반찬을 나눠 주셨는데, 부들부들 짭조름하니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육지에서 마른 고사리만 먹다가 생고사리를 접하니 신세계였다. 너무 맛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하니 고사리 끊으러 가니까 또 해 주겠다 하셨다. 난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사모님~ 저도 고사리 꺾는 데 한번 데려가 줄 수 있으실까요?”라고 말했다. 때마침 우리 옆집 세입자도 이모에게 데려가 달라 부탁했다고 하시며 이 기회에 얼굴을 트고 지내라며 흔쾌히 함께하자 하셨다. 고사리 꺾기 회동이 급 결성된 것이다. 휴일 새벽에 만나 며느리에게도 안 알려준다는 고사리 포인트로 출발했고. 나는 고사리를 꺾으며 주인 이모랑 겁나 친해져 버렸다. 제라진(최고라는 뜻의 제주어) 고사리를 찾기 위해 숲속 깊은 곳으로 갔는데, 자연을 대하는 시선과 태도가 우리는 똑 닮았음을 알게 되었다. 고개를 숙이고 고사리를 꺾는 몇 시간 동안 우리는 수다가 터졌고, 급기야 옆집 동생과 함께 주 1회 오름(산(山) 제주 방언) 모임도 결성했다.



매주 오름과 숲을 다니며 이모는 그간 자신의 삶에 대해 내게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20년 먼저 산 인생 선배의 말이니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 걸으며 이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살아 있는 자기계발서가 따로 없었다. 자기계발서를 단 1번도 읽지 않았다는 그녀의 삶은 온통 존경스러웠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거울을 보고 머리를 빗어 넘기며 자신을 향해 사랑한다고 말하고, 새벽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하는 내내 자신에게 잘할 수 있다고 오늘도 멋진 하루라고 암시를 건다. 하루를 마감하기 전에는 꼭 가계부를 쓰는데 30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모는 수십 권의 가계부가 곧 자신이라고 말했다. 이모가 정한 루틴은 직장생활을 할 때는 물론이고 퇴직한 오늘까지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지혜롭고 재테크 실력도 뛰어나 이모와의 오름 동행은 내게는 늘 배움의 시간이었다. 20살 넘게 차이 났지만 우리는 매주 오름을 다니며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정말 이모와 조카처럼 가까워졌다. 그때부터 내가 그녀를 부르는 호칭은 ‘사모님’이 아닌 ‘이모’로 바뀌고. 이모도 나를 ‘마담씨’가 아닌 ‘마담아’로 불렀다.



하루는 이모가 “마담아! 콩국수를 기가 막히게 삶았는데 먹으러 올래?”라고 전화를 하셨다. 남이 차려준 집밥이 고팠던 나는 3분 거리 이모 집으로 냉큼 뛰어갔다. 한 입 먹고는 눈이 번쩍. 콩국수 국물이 어릴 때 엄마가 해 주시던 두유와 완전 똑같은 추억의 맛이었다. 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이모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 뒤로도 이모는 종종 번개를 쳐서 특별식을 할 때마다 나를 불렀다. 빈말이 아니라 이모가 차려주신 점심은 밥에 김치 하나여도 엄마 밥처럼 맛있어서, 제주에서는 내게 아주 귀한 밥상이었다. 거기에 이모가 타 주시는 커피믹스까지 한 잔 마시고 오면 그날은 세상을 다 얻은 듯 든든했다. 이모는 자기 식구는 이렇게까지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이 없는데, 자신의 식성과 똑 닮았다며 내 칭찬에 멋쩍어하면서도 빙그레 웃으셨다. 이모는 쑥개떡, 호박죽, 파김치, 김장김치, 제철 생선과 회, 각종 제주 토속 음식들 등. 철철이 반찬과 간식들을 해서 우리 집 문고리에 걸어두고 가셨다. 대신 나는 이모와 날을 잡아서 젊은 사람들이 가는 멋진 레스토랑이나 찻집으로 모시고 간다. 그러면 이모는 덕분에 평생 안 다녔을 곳과 음식을 먹는다며 또 고마워하셨다.


며칠 전 이모가 전화해서 저녁 한 끼 하자며 우리 가족을 초대하셨다. 이모 집에 갔더니 큰 상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 제철인 자연산 부시리 회도 직접 다 떠서 준비하시고. 우리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하였다. 우리가 제주를 떠날 날이 1달도 채 남지 않아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이고 싶었다고 하셨다.

“마담아! 우리가 보통 인연이냐! 무려 6년이야. 너와 네 가족들이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착잡하고 기분도 이상하다야. 제주 놀러 오면 우리 집에서 꼭 자고 가야 한다.”

나 또한 이모가 그리 말씀하시니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연고 한 명 없는 제주에서 이모와 맺은 연 덕분에 토박이 동네에서 정말 찐 제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제주살이 동안 이모에게 고마운 일은 수도 없이 많다. 아들 생일 기념으로 추자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자신의 고향이라며 직접 동행해서 3일 동안 먹이고 재워주셨다. 추자도 관광뿐만 아니라 고깃배에서 대삼치 경매 받아오기, 소라 깨기, 생선 염장해서 옥상에 널어 말리기 등 지내는 동안 리얼 어촌 체험을 했다. 귤 따기 체험하고 싶다고 하니 지인 귤밭으로 데리고 가 마음껏 귤을 따도록 했다. 공항으로 가야 하는데 택시가 잡히지 않을 때 발을 동동 구르다 연락하면 흔쾌히 태워주셨다. 내가 아파서 한동안 연락을 못 했다고 하면 다음 날 반찬이 한가득 집 문 앞에 놓여있었다.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만나 이렇게 잘 지내는 집도 드물지 않을까. 정이 많은 나는 이모가 나눠주신 이웃 사랑 덕에 제주 생활이 외롭지 않았고. 나 또한 어른들과 함께할 때면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봐주고 예뻐해 주시니 그저 마음이 편했다. 제주살이의 가장 오랜 친구인 이모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벌써 마음이 아리고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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