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밥심으로 살아가지요

소울푸드 ;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by 마담

나는 음식에 진심이다. 살기 위해 대충 한 끼 때우는 걸 싫어한다.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음식 한 끼에 힘을 받는 사람이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 “우리 언제 밥 한 끼 해요.”라고 하면, 그건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보통 인사말이 아니라 당신과 밥을 먹고 싶다는 호감의 말이다. 좋은 사람과 먹는 밥 한 끼가 누구보다 즐거운 사람이다. 마음 가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차리는 집밥을 따뜻하게 먹이고 싶을 정도로 내게 밥은 의미가 크다. 어릴 때부터 삼시세끼 따뜻하게 차려준 엄마의 밥상을 받고 자란 덕분이다.



육지에서 지낼 때 나의 소울 푸드는 ‘추어탕’과 ‘매운탕’이었다. 엄마가 손수 미꾸라지 뼈를 다 발라 채에 걸러 나물과 함께 걸쭉하게 끓인 재피향 가득한 추어탕 한 그릇이면 힘이 불끈 났다. 서울에서 회사 다닐 때도 1주일에 한번은 추어탕을 꼭꼭 챙겨 먹었다. 매운탕 또한 내가 어릴 때부터 먹은 최애 음식이다. 아빠가 잡아 온 민물고기로 엄마가 만든 얼큰한 매운탕을 한 그릇 비운 뒤, 자작하게 졸인 국물에 밥 한 공기까지 말아 먹으면 더 바랄 게 없는 기분이 든다. 나는 특히 쏘가리, 빠가사리 등을 넣고 끌인 민물 매운탕을 좋아하는데, 특유의 비릿한 냄새와 걸쭉한 식감, 먹고 나면 땀을 쏙 빼게 만드는 개운하게 깊은 매운맛이 좋다.



제주에서 살며 가끔 음식으로 위로 받고 싶어 쓸쓸한 날. 몸이 으스스 추운 날. 추어탕과 매운탕 생각이 간절했지만, 민물매운탕이 제주에 있을 리 없고. 몇 개 있는 추어탕 식당은 엄마가 해 주신 그 맛이 아니었다. 가끔씩 엄마가 추어탕을 끓여 보내주시면 냉동실에 소분해 놓고 아껴 먹곤 했는데, 이젠 엄마 몸이 예전 같지 않으셔서 그마저도 먹을 일이 거의 없다. 힘내고 싶을 때 먹을 마땅한 음식이 없어 한동안 헛헛했다. 그러다 동네 이모와 오름 다녀오는 길에 들른 노포 식당에서 드디어 소울 푸드를 만났다. 바로 ‘꿩 메일 칼국수’다.



첫날의 감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주에서는 귀한 갓 담은 겉절이 김치가 나온 거에 일단 100점, 심지어 아주 맛깔스럽다. 한참을 기다려 받은 칼국수는 처음 보는 비주얼이어서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국물 한 숟가락 뜨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진하게 우린 꿩 육수의 깊은 맛에 무가 더해져 시원하다. 국물에 진심인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다. 부서지는 메밀 칼국수를 처음 경험했는데 다들 숟가락으로 국수를 먹고 있었다. 나도 칼국수 한 숟가락 떠서 겉절이 올려 먹으니 정말 끝도 없이 들어갔다.



그 후로 속을 든든히 하면서도 따뜻하게 채우고 싶을 때마다 들렀다. 뱃골이 크지 않는 내가 거기만 가면 국물까지 싹싹, 겉절이 김치도 리필해서 다 먹고 온다. 평소 잘 먹지 않는 믹스커피까지 후식으로 먹고 나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그야말로 엄마의 맛, 밥심을 느끼며 허기졌던 마음을 달랜다. 하루는 문득 겉절이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다 엄마의 추어탕과 매운탕을 먹지 못하는 날이 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할머니표 난개국(호박국)을 다시는 못 먹는 것처럼. 그런 순간이 올까 두려워졌다. 그간 엄마의 요리 레시피라도 받아 적어둬야 하나 종종 생각했지만. 그건 엄마와의 이별을 염두에 두는 것만 같아 속으로만 삼켰다.



오래 전, 가장 받고 싶은 상이 엄마의 밥상이라는 초등학생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받아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안 해도 되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그런 상. 가장 받고 싶은 상이 엄마의 밥상이라는데. 시를 다시 읽으며 목이 메였다. 일흔을 바라보는 엄마의 밥상은 당연하다고. 엄마는 언제고 영원히 내 곁에서 당연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내가 어처구니가 없다. 밥심으로 여태껏 살아온 나인데. 앞으로 엄마의 밥상을 대할 때마다 귀히 여길 생각이다. ‘와! 맛있다.’, ‘와! 최고다.’, ‘엄마 밥 덕분에 내가 힘이 난다.’ 등등.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찬사는 다 보낼 생각이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엄마의 엄마’가 안계시니, 내가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으로만 밥상을 꼭 차려드리고 싶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두 아이와 함께한 6년의 제주살이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흔들리는 40대를 오롯이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워 그간의 시간들을 제 식으로 잘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또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테니까요.


제가 정리하는 글들이 곧 6년이란 시간에 대한 제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끝이날지 알 수 없지만. 담담하고도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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