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생산성 있는 뻘짓
40대 들어 내가 부리는 최고의 사치는 명품가방도. 5성급 호텔도. 해외 여행도 아니다. 바로 제주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이다. 입도 초기, 남편은 새로운 일을 시작해 수입이 일정치 않았고. 어깨에서 산 아파트를 무릎도 아닌 발바닥에서 팔아 몇 년간 모은 돈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제주에 온 뒤로 옷도 안 사 입고, 화장품은 안 바를 때가 더 많고, 피부과는 원래 근처도 얼씬 안 했고, 미용실도 연중행사. 외식은 물론 야식도 거의 안 먹었다. 나를 위해 돈 드는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대신 틈만 나면 카페에 갔다. 커피 값을 줄여도 모자랄 판에 매일 카페 가는 사치를 부렸다.
육지 살 때도 커피는 나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만큼, 카페 가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제주 카페는 차원이 달랐다. 현실이 아무리 팍팍하고 힘들어도 책 한 권 들고 카페에 앉아 창 밖의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 있으면, 그곳이 곧 파라다이스가 된다. 카페에 있는 순간만은 현실의 스위치를 끄고 오롯이 나만의 세계에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른다. 정말 이만한 신선놀음도 없을뿐더러, 부러운 게 하나도 없다. 맛있는 디저트까지 먹은 날은 더할 나위 없다. 그렇게 나만의 사치를 부리고 나면 오후에 아이들과 함께할 힘도 생기고, 가끔은 외로운 제주살이가 좀 견딜만했다.
어느 날부터 카페에서 좀 생산성 있는 뻘짓을 하고 싶어졌다. 매번 이것저것 가방에 챙겨 비장한 각오로 카페에 들어서지만, 막상 자리에 앉으면 5분도 되지 않아 딴짓을 하거나 창밖 풍경에 홀려 여지없이 기본 30분은 멍을 때리게 된다. 카페에서 종종 책을 읽기도 하고 밀린 다이어리를 왕창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병원 영수증 뭉치를 잔뜩 들고 가 보험 청구만 하다 끝나기도 한다. 다시 들춰보지도 않을 한 달 살림살이를 엑셀로 눈 빠지게 정리하고선 한숨지을 때 마시는 달달한 커피는 나를 쓰담쓰담 위로해준다. 아주 가끔은 신나게 메모하다 역대급 유레카를 외치는 짜릿함을 맛보기도 한다.
다행히 글을 쓰면서부터는 카페가 작업실이 되었고, 자타공인 아주 생산적인 뻘짓을 하게 되었다. 독립출판 책도, 첫 책도 모두 카페에서 작업했다. 지금처럼 책을 쓰는 기간에는 최대한 몰입하기 위해 카페 선정과 심지어 카페 내 자리 위치도 깐깐하게 고른다. 글을 본격적으로 쓴 이후로는 분위기 좋은 카페보다는 글 잘 써지는 곳이 최고다. 오랜 시간 있는 날은 카페에서 끼니까지 해결하기에. 매번 커피 값이 아깝지 않게 글을 쓰고 오자 다짐했다, 하루는 돈도 안 되는 글 쓰느라 매번 카페 가서 살림을 축내는 거 같아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남편이 낭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건전한 취미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냐며 미안함은 생각지도 말라고 했다. 얼마 지난 뒤 남편은 30만원이 충전된 별다방 카드를 주며 카페 가서 마음껏 글을 쓰라고 했다. 그 후로도 남편은 커피 쿠폰이나 기프트카드를 선물 받으면 모두 다 내게 줬다. 덕분에 정말 마음 놓고 카페를 드나들었다.
이것까지 아껴야 한다고 말하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커피 한 잔 값으로 정신적 위로도 받고. 글도 쓰고. 책까지 냈는데. 소중한 나를 위해 이 정도 귀여운 사치는 충분히 부려도 되지 않을까. :)
두 아이와 함께한 6년의 제주살이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흔들리는 40대를 오롯이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워 그간의 시간들을 제 식으로 잘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또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테니까요.
제가 정리하는 글들이 곧 6년이란 시간에 대한 제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끝이날지 알 수 없지만. 담담하고도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