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변화시킨 제주
나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쇼핑을 좋아한다. 쇼 윈도우를 보며 몇 시간씩 걸어도 피곤하지 않고, 눈이 휘둥그레지며 에너지가 샘솟았다. 홈쇼핑을 보며 매진될까봐 조마조마 하며 결제를 하기도 했다. 결혼 이후 내 것에서 남편과 아이들 옷이나 물품으로 대상만 이동했을 뿐이지, 여전히 무언가를 사 들였다. 책도 읽기보다 사는 것을 더 좋아하고. 음식 장보기도 늘 많이 사서 식재료를 버리곤 했다. 남들이 뭐라던 내가 필요하고, 좋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샀다. 나는 고작 4식구인데 세탁기가 2대, 냉장고가 3대일 정도로 웬만한 가전제품은 다 갖추고 살던 맥시멀 리스트였다. 캐나다를 가기 위해 집을 정리하는데 꺼내도 꺼내도 끝이 없는 짐들을 보며 그간 이 집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었다는 생각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때 묵은 짐들을 다 버리며 앞으로는 절대 물건이 주인이 되는 일은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마음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 내가 제주에 살며 크게 변한 몇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는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다. 강제적으로 사지 않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다. 한국에서도 캐나다에서도 40평대에 살다가 제주에서는 18평 빌라 방 2칸에서 살게 되었다. 남편은 내게 괜찮겠냐며 몇 번이나 물었지만, 짧게 임시로 살 집이었고 짐도 없었기에 문제없었다. 옷장은 3칸, 싱크대도 아래 위 합쳐서 4칸. 냉장고도 양문형이 아닌 리조트에서 볼 수 있는 일자형 소형 냉장고에 신발장도 없었다. 집이 이렇게 좁으니 옷은 물론이고 살림살이도 일절 사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보낸 택배 박스가 우리의 살림 전부였다.
제주도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없다. 요즘에야 로켓배송이 있어 정말 살만해졌지만, 입도 초기에는 이마트와 다이소에서 모든 것을 해결했다. 견물생심이라고, 보는 게 없으니 자연스레 다른 물건들도 살 일도 없었다. 캐나다에서 제주로 온 입도 첫 해는 티셔츠 3장, 바지 3개를 돌려 입으며 지냈다. 다음 해도 그 다음 해도 나는 옷 몇 벌로 제주의 삶을 살았다. 어느 날 그런 내 모습이 신기했다. 육지에서 살 때는 내가 옷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과 동네를 고려하느라 매번 갖춰 입어야 했다. 그런데 제주에서는 아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굳이 남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처음에는 운동을 나가도 레깅스에 운동화까지 깔 맞춤으로 입었는데, 동네에서 나만 그러고 다녔다. 아이들 옷도 마찬가지다. 육지에 살 때는 철마다 유명 브랜드의 옷들로 입혔는데, 제주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아이 학교의 경우 그냥 편한 옷이면 됐다. 입도 초기에는 양말까지 코디해서 학교를 보냈지만, 어느새 나는 아이가 마음껏 뛰어놀고 더럽혀도 괜찮은 편한 옷들로 옷장을 채웠다.
우리 집에는 편리한 생활의 1등 공신인 전자레인지가 없다. 물론 집이 좁아 들여놓지 않았는데 지금까지도 불편하지만 어찌어찌 산다. 1분 버튼을 누르는 대신 밥솥과 찜기에 찌고, 끓는 물에 데치고 데우는 수고스러운 작업을 기꺼이 한다. 예전에 비하면 편리함은 줄었지만 냉동식품을 거의 안 먹게 되고 더 정성스럽고 건강한 삶을 사는 거 같아 만족한다. 그리고 전기밥솥이 아닌 압력솥을 사용한다. 육지에 살 때 홈쇼핑에서 다 매진될까 급히 버튼을 누르며 구입한 비싼 압력솥 2개가 제주에서는 아주 팔방미인이다. 밥은 물론 국, 찜, 삼계탕, 수육, 수정과, 약차 등 못할 게 없다. 이 또한 나의 정성이 더 들어간 듯 해 불편함보다는 만족에 가깝다.(글을 쓰다보니 좀 미련스럽다 ㅡ.ㅡ) 작년에 어머님이 제주에 다녀가신 후 불편해서 어떻게 사냐며 10인용 전기 밥솥을 보내 주셔서 우리 집 좁은 주방을 가득 채우고 있지만, 여전히 압력솥에 갓 지은 밥이 좋다. ‘치익치익’ 주방에 울려 퍼지는 압력솥 뚜껑 열리기 직전의 소리도 비행기 소리만큼이나 정겹다.
나의 제주살이는 좁은 집으로 인해 강제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언제고 다시 육지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캐나다에서 가져 온 짐에서 몇 년간 물건을 아예 늘리지도 않았다. 택배비는 여전히 비싸고 제주도는 애초 배달 불가도 많다. 냉장고가 좁으니 매번 그때그때 해 먹을 음식들을 소량으로 구입하니 버릴 일이 거의 없었다. 3년 전 지금의 집(같은 층 옆 집)으로 이사 오기 전까지 늘린 거라곤 책뿐이었다. 지금은 넓어진 환경에 맥시멀리스트의 본능이 슬슬 올라와, 어느새 또 물건이 많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물건이 집의 주인이 되는 일만큼은 경계하고 또 경계한다. 그리고 정리를 잘 못하던 나도 정돈된 삶의 중요성만큼은 아주 잘 알게 되었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다 버리고 없이 사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닌 내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을 잘 데리고 사는 것, 내가 떠받들어야 하는 많은 물건보다는 조금은 수고스럽더라도 우리 가족의 삶에 맞는 물건들로 공간을 채우는 게 중요하다는 것까지도 깨닫게 되었다.
두 아이와 함께한 6년의 제주살이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흔들리는 40대를 오롯이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워 그간의 시간들을 제 식으로 잘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또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테니까요.
제가 정리하는 글들이 곧 6년이란 시간에 대한 제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끝이날지 알 수 없지만. 담담하고도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