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2,000번의 시간들

혼자 놀 줄 아는 여자입니다

by 마담

제주살이, 만 5년하고도 수개월째다. 평균 매일 1번 이상은 혼밥을 했으니 그 횟수가 족히 2,000번은 된다. 혼밥의 시간을 떠올려보니 정갈하게 잘 차린 밥상보다는 라면 혹은 밥에 김치와 밑반찬으로 대충 때운 게 대부분이다. 나는 원래 혼자 밥을 먹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자취한다고 했을 때 엄마가 짐을 싸며 “넌 혼자서 밥도 못 먹는데, 절대 끼니 거르면 안 된데이.”라며 신신당부했다. 그런 내가 제주 와서는 혼자 먹는 밥이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는 젊은 사람이 많지 않은 동네에서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지내니 혼밥은 당연했다. 아침 시간 애들만 먼저 먹여 보낸 후, 빵과 커피로 대충 때웠다. 점심은 자린고비처럼 밥 한 술에 굴비가 아니라 육지로 날아가는 창밖 비행기 한번 쳐다보며 꿀꺽. 그렇게 10분이면 식사가 끝났다. 저녁에서야 겨우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시간이 소중해 더 정성껏 식사 준비를 했다. 아이들 밥상은 그렇게 정성 들여 차리면서, 온전히 나를 위해서는 왜 한 번도 제대로 차리지 않았을까. 나는 밥 한 끼 잘 먹는 게 중요한 사람인데, 엄마가 해 주는 밥 한 그릇이면 세상 그렇게 든든한 사람인데. 그걸 알면서도 왜 내 밥상을 귀히 여기지 않았을까.



이 글을 쓰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나는 식사 시간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었다. 가족들과 내가 정성껏 지은 밥을 먹으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듣고 각자가 보낸 하루를 시끌벅적하게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직장 동료들과 1주일에 한두 번쯤은 근사한 식당이나 맛집에서 밥을 먹으며 서로의 애환을 나누고 나면 또 회사에 다닐 힘이 생겼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과도 식사하고 차를 마시며 시시콜콜한 이야기 하는 시간이 참 좋았다. 어떻게 보면 식사하면서 대화와 분위기가 중요한 거고, 밥 자체는 부수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구 하나 이야기 나눌 사람 없이 먹는 밥에 내가 무슨 신이 나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릴 수 있었을까.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하루 종일 입에 거미줄을 쳤는데. 다른 가정처럼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밤마다 맥주를 반주 삼아 잔 기울이며 입에 쳐진 거미줄을 걷었겠지만. 아이들의 이야기만 듣는 게 아니라, 밥상머리에서 ‘그래그래’ 하며 나의 하루도 들어줄 다 큰 사람 대화가 필요했다.



제주의 6년은 혼자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마흔이 되도록 혼자였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제주에서는 오롯이 혼자였다. 독립심 하면 나였는데 혼자의 삶은 그것과는 완전 별개였다. 어디 밥뿐이랴. 노는 것도, 카페 가는 것도, 등산 가는 것도.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크고 작은 사고가 나도 다 혼자 해결해야 했다. 물론 입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생겨 사람과의 교류를 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처음에는 시시때때로 나의 외로움과 마주해야 했다. 입도 2년차 봄, 나는 제주에서 혼자 지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외롭고 부끄럽다기보다 정신이 없지도 않았고. 내가 상대방을 맞추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었고. 이견이 맞지 않아 조율할 필요도 없었다. 애써 내 아까운 시간과 영혼을 써 가며 내 에너지를 갉은 먹을 일도 없었다. 있는 그대로가 차츰 편해졌다. 그렇게 오랜 시간 홀로 서는 과정은 마냥 해맑던 나를 조금은 더 어른으로 만들었다.



이젠 혼자가 익숙하고 당연하다. 하루 종일 지치지 않고 돌아다니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이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혼자 놀 줄 아는 여자가 된 게 제주살이의 가장 큰 성과라면 성과다. 2,000번의 혼밥을 하고 혼자 노는 동안 나를 많이 들여다보고 많이 사랑하게 되었다. 코로나 초기 혼자 놀기를 통해 나를 마주하고 나를 찾고 나를 사랑하겠다고 블로그에 썼었는데, 4년이 지난 지금 블로그에쓴 대로 살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해안 길을 걸으며 사색한다. 미술관과 음악회도 한껏 차려입고 간다. 오름과 숲도 혼자 거닐고 가끔은 제주 동쪽, 서쪽 끝까지 드라이브 가서 경관 좋은 맛집에서 유유자적, 룰루랄라 혼밥을 한다. 누군가 있어야 잘 먹었던 밥을 이젠 나와 대화하며 그 시간을 즐긴다. 노후를 잘 보내기 위해서는 돈과 건강만큼이나 혼자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내 꿈이 멋진 할머니 되기인데, 이미 나는 충분히 연습을 하고 있는 셈이다.



두 아이와 함께한 6년의 제주살이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흔들리는 40대를 오롯이 제주에서 보냈습니다.

이대로 떠나기에는 너무 아쉬워 그간의 시간들을 제 식으로 잘 정리하고 싶어졌습니다.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또 새로이 시작할 수 있을테니까요.


제가 정리하는 글들이 곧 6년이란 시간에 대한 제 마음일 거라 생각합니다.

어떻게 끝이날지 알 수 없지만. 담담하고도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작가의 이전글40대 에어비앤비 아르바이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