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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오늘 Jan 04. 2024

마라탕을 시킨다는 것

배달의 민족 주문! 배탈의 민족 주문!

  나는 마라탕을 먹으면 곧잘 탈이 나곤 한다. 너무 맵고 자극적이어서인지 나와 맞지 않아서인지 더러워서인지는 모르겠다. 꼭 먹고 나면 배가 아프기도 하고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종 마라탕을 주문한다. 이전부터 나는 음식을 배달해 먹기를 싫어했다. 아무리 귀찮아도 집에서 음식을 해먹는 게 습관이 되어 딱히 배달 앱에 손이 가지 않았다. 다만 마라탕은 제외다.

  집에 누워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존해 끝이 나지 않을 것처럼 휴대폰 안 유튜브 세상을 구경할 때면 어김없이 마라탕이 생각이 났다. 주문을 하면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기어코 배달의민족 앱을 켜 마라탕을 주문했다. 주문하는 건 아주 쉬웠다. 그저 주문 내역에 같은 메뉴 담기 버튼만 누르면 됐다. 내 주문 내역은 오로지 마라탕으로 채워져 갔다.

  어제 나는 집밖에 나가지 않았다. 소파에 누워 TV로 웨이브 예능을 봤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 숏츠를 봤다. 하도 다음 숏츠를 보느라 화면을 오른 엄지로 쓸어올리느라 지문이 닳는 건 아닐까, 화상 입는 거 아닐까 생각이 들 때면 핸드폰 왼쪽 상단에 있는 시계를 흘낏 노려보았고 못 본 척 다시 화면을 쓸어 올렸다. 심장이 살짝 두근대는 게 느껴졌으나 무시했다. 그마저도 지겨워졌다. 다시 소파로 자리를 옮겨 핸드폰으로는 유튜브 숏츠를 보며 거실에 tv로는 넷플릭스가 추천해 준 아무 영상이나 틀어놓았다. 이미 냉동 피자를 데워 먹은 상태였다. 귤과 초콜릿을 계속해서 까먹었다. 내 주변으로 귤껍질과 초콜릿 껍질이 쌓였다. 캐러멜 팝콘도 한 움큼씩 쥐어 먹었다. 내 오른손은 설탕으로 끈적거렸다. 그리고 나는 배달의민족 앱을 켰다. 홀린 듯이(라고 쓰지만 충분히 인지하며) 마라탕을 주문했다. 역시나 주문까지 일 분이 채 걸리지 않았을 것이.

  오늘 아침 일어나 나는 아주 강한 충동을 느꼈다. '정말 너무너무 살고 싶다'하는 충동. 마라탕을 먹고 나면 역설적으로 나는 너무나 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파괴되어 가는 내가 가엾다.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내가 너무 불쌍하다. 유튜브에 무기력증을 검색하고 무기력증을 극복하기 위한 네 가지 방법을 말해주는 의사의 말을 쫑긋이며 듣고 있는 내게 연민을 느낀다.

  나는 오늘도 하루 종일 누워 유튜브만 봤다. 한참을 누워있다 정오가 지나고 한시가 지났을 무렵 나는 어김없이 배가 아파왔다. 배를 움켜쥐며 엉거주춤하게 화장실에 갔다. 무른 똥을 누었다. 항문이 부은 느낌이 났다. 나는 그대로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서있을 힘이 없어 욕조에 쭈그려 앉았다. 따뜻한 물을 맞았다.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나는 자기 연민이 가득한 글만을 쓴다고. ‘자기 연민이 가득한 글은 초짜들이나 쓰는 거야.’하고 한 번 더 자기 연민을 했다. 한참 나를 가여워하다 남도 가여워졌다. 어떤 때는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가여웠고 어떤 때는 우리 엄마 아빠가 가여웠다가 친구들이 가여워졌다. 이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가 가엽다. 나는 연민으로밖에 사랑을 할 줄 모르는가. 다시 또 내가 가여워졌다. 나는 누군가를 가여워하는 힘으로 팔을 들어 샴푸를 짜냈다. 남은 힘으로 떡진 머리를 꼼꼼하게 주물 대며 감았다. 어제 머리를 감지 않았더니 머리카락이 제법 많이 빠졌다. 머리카락은 샤워기의 물줄기를 따라 흐르고 흘러 욕조 배수구로 모였다. 이내 배수구를 꽉 막았다. 내 발과 엉덩이에는 미처 내려가지 못한 물들이 찰랑였다. 나는 꼭 이 머리카락들이 마라탕을 먹는 나 같다고 생각했다. 아, 불쌍한 머리카락들. 나는 찰랑이는 물들을 느끼다 숭숭 빠진 머리카락들을 한데 모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물을 콸콸 빠져나갔지만 금방 또 꽉 막혀버리겠지. 그럼 나는 연민의 힘으로 다시 쓰레기통에 버려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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