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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맨 May 22. 2023

아빠와의 첫 소풍을 위해 도시락을 싼 30개월차 인간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는 도시락일지라도

연필아, 안녕?


오늘은 네가 어린이집에서 처음으로 소풍을 떠나는 날이야.

아마 며칠 전부터 어린이집 선생님들이 소풍을 가면 도시락을 싸서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고 하셨겠지?

그래서인지 너는 지난 주말 내내 아침 일찍 일어나 소풍을 가야 한다며 아빠를 보챘단다.

유모차 탑승도 마다한 너는 자기 몸만큼 커다란 피크닉 바구니를 들고 놀이터로 향했어.

한참 미끄럼틀을 타고 놀던 네가 "아빠, 도시락 싸왔으니까 쉬었다 가자."라며 아빠를 불렀어.


네가 처음으로 준비한 도시락


도시락 속에는 피자와 수박, 양파, 당근, 무가 들어있더구나.

아침에 일어나 어느 틈에 이렇게 도시락을 준비했는지 놀랐어.

"아빠랑 같이 먹으니까 맛있다."라며 웃는 너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꼈어.

그런데 왜 아빠 도시락에는 양파, 당근, 무만 있는 거야?

비록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아니었지만.


비록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었지만, 푸짐했던 도시락


우리는 함께 비눗방울을 불고 그네도 타며, 짧지만 즐거운 소풍을 마쳤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너는 집으로 돌아와 깊은 낮잠에 빠졌단다.


잠든 너를 보면서 생각했어.

"피곤하니까, 소풍은 나중에 가자."

"소풍은 다음 주에 어린이집에서 가니까, 오늘은 집에서 쉬자."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네가 준비한 소풍을 함께하지 못했으면 어땠을까?

아마 아빠는 오늘 너로 인해 느낀 기쁨을 모르고 지나갔겠지.


우리가 살면서 마주할 너의 어떠한 요청도 쉬이 무시하지 않기로 다짐했어.

"아빠, 해님은 아침에 어떻게 인사를 해?"라고 물으면 해가 뜨는 모습을 보러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


이제는 그네에 혼자 앉아도 불안하지 않을 때야


아빠는 요즘 너의 반응과 말들에 놀라고, 감사하며 매일을 버티고 있어.

고마워. 네 덕분에 매일을 버티며,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단다.


네가 열심히 준비한 도시락을 봤는지 엄마는 새벽부터 도시락을 준비하셨어.

어린이집에서 우리 도시락이 인기가 가장 많다는구나.

친구들과 사이좋게 도시락 잘 나눠 먹었니?


오늘은 잠들기 전에 소풍 다녀온 이야기를 들려주렴.

그리고 오는 주말에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소풍을 가자꾸나.

우리 동네를 대표하는 어떤 시인도 삶을 소풍이라고 했어.

소풍 가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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