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만에 단독 콘서트, 베이비복스
진짜 가족도 아닌데, 기꺼이 누나라고 불렀던 사람들이 있다. TV로 처음 만났던 그들은 눈앞의 실존이 되었고, 일상이 되었다. 팬클럽 활동이라는 걸 시작했다. 앨범이 나오면 공개 방송을 쫓아다녔고,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모뎀으로 '삐' 소리를 내며 나우누리, 인터넷 연결을 해 누나들의 소식을 찾아다녔다. 복스팬닷컴(voxfan.com ― 지금은 정체불명 회사의 홈페이지가 되어버린)이라는 공식팬클럽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고, 어느새 그곳의 대화방지기가 되었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이렇게까지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내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누나들과의 마지막 만남은 대학로 근처 소극장에서 열렸던 팬미팅이었다. 내가 막 대학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그때는 생각했다. 이제는 시간도, 돈도 조금 더 여유가 생길 테니 조금 더 오래, 조금 더 가까이 머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땐 몰랐다. 누나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20년이 걸릴 줄은, 나는 마흔을 앞둔 아저씨가 되어 있을 줄은.
누나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독 콘서트는 2002년 8월 15일이었다. 데뷔 5년 만에 처음으로 열렸던 콘서트는 멤버 중 한 분의 모교에서 열렸다. 없는 돈, 있는 돈을 탈탈 모아 친구들을 이끌고 콘서트를 봤던 기억이 난다. 늘 4분, 5분 남짓한 공개방송 무대와 콘서트는 분명 달랐다. 그들은 반짝였다.
사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난해 연말에 열린 KBS 가요대축제였다. 14년 만에 완전체로 무대에 선 누나들의 모습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아마도 이제는 멤버 간의 관계나 각자의 사정을 헤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소중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이 휘발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안도 덕분이었을지 모른다.
23년이 지나 2025년 9월 26일, 그 시절의 무대가 다시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고민할 틈도 없이 나의 발걸음은 그곳으로 향했다. 무대 위에 그들이 나타난 순간, 스물세 해 전의 기억이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목소리, 안무, 환호성 모든 게 대체로 그대로였다. 내 삶에서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친밀한 언어, 세월이 흘러도 희미해지지 않는 아련한 부름. 누나들은 여전히 반짝였다.
그리움은 약속이 될 때 완성된다.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누군가를 그리워할 수 있다. 기약 없는 이별은 언젠가 그리움을 희미하게 만든다. 스물세 해 동안, 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날, 누나들은 내 그리움을 현실로 불러냈다. 23년 전,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시간을 건너 다시 만난 누나들의 모습은 '그리움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여전히 자랑스러운 이름
공연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여운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공연장의 환호는 잦아들었지만, 내면의 미세한 떨림은 계속 이어졌다. 무대 위에서 누나들인 남긴 말, 노래,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보냈던 친구 혹은 동지(?)들의 얼굴도 스쳐 지나갔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이제 마흔 살의 아빠가 되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누나들의 이름 앞에 서면 가장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간다. 그 시절의 나를 빛나게 해 줬던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도 나는 그 기억을 품고 살 수 있겠다.
우리, 꼭 다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