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0일
말도 없이 사라진 직군이 있다. 컴퓨터 인공지능과 기계학습이 사람 직업의 몇 퍼센트를 없애고 어쩌고 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눈치도 못 챈 사이 없어진 직군과 없어져 가는 직군이 있다.
시스애드민(Sys Admin)이라고 아시는가. 한때는 전 세계적으로 몇백만 명이 부족하다는 직업이었다. 리눅스에 LAMP 스택 깔 줄 알거나 윈도 서버에 메일 서버 깔 줄 알고, 전반적인 시스템 관리할 줄 알고 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지. 하드웨어 관리도 좀 해주고.
요즘엔 시스애드민 자리가 안 난다. 다 데브옵스로 바뀌었다. 데브옵스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았지만 시스애드민들은 갈 데가 별로 없다. 현재 아주아주 좋은 직장 다니는 시스애드민들도 쉽게 옮길만한 자리가 없다.
10년 전만 해도 회사마다 전산실이 있거나 컴퓨터 담당 부서가 있었고, 서버 관리하는 사람들이 필요했잖소. 요즘에는 회사 내에 서버 안 쓰고 아마존이나 그 외 클라우드 서비스, IaaS, SaaS, PaaS 뭐 등등에 외주 주는 식으로 바뀌다 보니까, 아마존의 엔지니어 한 명당 전 세계 몇만 개의 일자리를 뺏어간 셈이다. 물론 아마존에서는 엔지니어 찾기 힘들다고 우는소리 하겠지.
몇 년 전만 해도 아마존 AWS 시스템 관리 좀하는 자리가 꽤 많았고 버는 돈도 짭짤했다. 그래서 이전 시스애드민들이 AWS로 많이 옮겨갔다. 하지만 AWS로 옮겨간다는 건 스케일 아웃 컴퓨팅, 클라우드 시스템을 이해하고 관리한다는 건데, 이거 간단하지 않다. 실력 있는 애들은 당연히 살아남았고 연봉도 확 올랐지만 안 그런 애들은 점점 설 자리가 없어져갔다.
남편은 남아공에서도 좀 특이한 케이스로, 네트워크 전문가면서 개발일도 꽤 하는 편이었다. 한 분야로 특화되지 않은 제네럴리스트라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트렌드에 부합하다 보니 데브옵스 직에 걸맞은 스펙이 되었던 셈이다. 데브옵스 (DevOps)는 이전 시스애드민의 업업업글 버전으로, 개발팀의 프로덕트를 수만 명 수십만 명이 쓸 수 있도록 스케일 아웃하거나, 디플로이하거나, 그 외 시스템 모니터링을 자동화하는 일을 한다. 이전에는 회사 서버 몇 개만 걱정하고 필요한 대로 깔고 고치고 했을 것을, 이제는 회사 일에 지장 안 주면서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서버를 한꺼번에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셈이다.
결론은 - 다행히 남편은 이번엔 살아남았다. 다음에는 살아남을까?
난 나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인데, 뭘 해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되냐고 물으면 참 난처하다. 쌩으로 들어오려면 상당히 빡세기 때문이다. 통계학 박사를 기본으로 요구하는 데도 많고 좀 그렇다. 하지만 나처럼 개발일 하다가 이쪽으로 들어온 애들 보면, SQL도 하고. R도 하고, 파이선도 하고, 그냥 개발도 한다. 리눅스 기본은 다 알고, AWS나 애저 등의 스케일 아웃 기본은 다 안다. 하둡도 알고 하이브도 안다. 뭐 되게 전문적으로 하는 건 아니지만 일할 만큼은, 모르면 누구한테 어디에 뭘 물어봐야 할지 정도는 안다. 통계도 기본은 하고 수학도 선형 수학 정도는 한다. 기계학습도 기본적인 건 한다. 자바스크립트도 어느 정도는 하니까 정말 급하면 D3 플롯도 한다 (하기 싫지만). 데이터 프레젠테이션 용 웹 사이트도 만들라면 만든다. 데이터 긁어오는 스크립트도 하라면 한다.
아무리 좋은 학교에서 졸업하고 박사학위 있는 사람이라도 이런 잡다한 거 다 하는 사람이 절반 이하다. 그래서 박사학위 있는 사람들은 기계학습 알고리듬 파는 쪽으로 (의외로 자리가 훨씬 적다) 간다. 다행히 개발 경력이 있거나 데이터 분석에 강하면 데이터 애널리스트로 들어가는 건 쉽다. 통계 박사 학위 하나로만 들어가는 건 좀 빡세다. 지금 현재 직장에서 데이터를 좀 다룰 줄 아는 사람에게 그쪽 일 더 시키면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명함을 주는 것은 쉽지만, 정말 작정하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찾는 회사는 원하는 것도 많고 기대도 많고 자기네가 교육할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뭘 배우면 됩니까라고 하면, 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여러 사람 고용하던 예전과 달리 한 사람이 이것저것 다 하니까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 아니 사실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데이터 관련 일 좀 배우면서 끼어드는 게 제일 쉽다. 보통은 개발일 하던 사람이 데이터 쪽으로 무슨 일이 필요한지 아니까 대강대강하고, 테크 회사에는 정통 통계/기계학습 출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소수 (개발력은 좀 약하다), 데이터 분석 쪽에서 흘러온 사람 반 정도다.
SQL만 죽어라 파던 DB 시절 출신 사람들은 어중간해졌다. 이젠 코딩할 줄 알아야 한다. DB 튜닝/애드민 하던 사람들은 아마존이 밀고 들어오면서 데브옵스로 바뀌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역시 코딩할 줄 알거나 스케일 아웃 알아야 한다. 데이터 분석만 하던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나오는 시각화 툴로 인터랙티브 차트 만들고, 예전에는 그냥 디비에서 SQL로 데이터 뽑으면 됐을 것을 데이터 프로세싱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기계 학습도 좀 배워야 할 거 같고, R도 배워야 할 것 같고 그렇다.
난 어쨌든 경력 덕분에 이거저거 했던 가락이 있어서 직함을 성공적으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바꾸고 지금까진 살아남았다. 다음에는 살아남을까?
어디 가든 사람 없다고 난리다. 개발자도 없고 데브옵스도 없고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도 없다고 난리다. 하지만 예전처럼 학위 딴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어차피 인사과 통과하려고 학위 따고 자격증 따는 건데, 면접 가면 학벌 학점 자격증 다 필요 없다. 실력이다 (면접으로 실력을 얼마나 잘 측정하느냐는 차치하고 ㅡㅡ). 실력 있는 애들은 내가 자괴감 느낄 정도로 많지만, 아직은 내 생계를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모자란다. 개발도 잘 하는데 통계랑 수학도 잘 아는 애? 많다 (시발).
개발도 잘하고 통계도 잘하는데 무려 프레젠테이션도 잘 하고 시각화도 잘 하는 애? 있다.
개발도 구글 면접 패스할 정도인데 네트워크랑 시스템도 잘 아는 애? 놀랍게도 많다.
데브옵스 자리 자체가 인력 부족으로 사라져야 할 거 같은데 그런 애들이 또 기어 나온다. 그리고 그런 애들이 만든 시스템은 어중간 한 애들 일자리 수십 개, 수백 개를 없애버린다. 능력인이 많지만, 당장 회사에서 필요한 수요만큼은 없기 때문에 나나 남편이 먹고살고 있는 거다.
지금 컴퓨터 전공하면 취업할 수 있을까?
영어만 잘 한다면, 좋은 대학에서 컴퓨터 전공하면 인사과 통과할 수 있고, 알고리듬 면접, 고시 공부하듯 하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살아남을까? 지금 당장은 억대 연봉에 좋은 대우 받지만, 인력 필터가 한 번 더 돌아가면, 그때 당신은 살아남을까?
너무 비관적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이런 비관적인 태도 때문에 계속 공부하고 업 스킬 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만 이젠 버거워서 무섭다. 다음 웨이브가 몰아칠 때 준비되었을까 확신이 안 선다. 데이터 사이언스 붐이 언제까지 갈까. 사물인터넷이 완벽하게 상용화되고 그에 따른 버티컬 제품군들이 (예: 홈 자동화 데이터 제품, 무인 자동차 데이터 제품) 다 들어서고 더 이상 회사마다 특화된 데이터 파이프라인과 프로세싱이 필요 없어지는데 몇 년 걸릴까. (되면 난 무직). 스케일 아웃 시스템 관리도 완전히 상용화/표준화되어서 엔지니어들을 고용하지 않고 아마존 서비스 지원 챗으로 해결되는데 몇 년 걸릴까. (되면 남편 무직).
오랜만에 와서 우울한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