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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8. 2018

여혐은 공감의 문제가 아니다

2017년 2월 9일

미국에는 흑인을 칭하는 용어로 n 단어가 있고, 남아공에는 k 단어가 있다. 나 참 욕 잘 하는 사람인데, k 단어는 차마 입에 못 담는다. 진짜 아무리 열 받고 화나고 빡쳐도, 그리고 그 상대가 흑인이라 할지라도, k는 혀가 마비된 것처럼 안 나온다. n 단어는 내가 그리 자주 접한 단어가 아니고 어차피 비하 욕이라서 안 쓴다. 하지만 k 단어만큼의 엄청난, 거의 육체적인 거부감은 없다.    

 

공감 능력 아무리 없다고 해도 다들 최소한의 사회적 반응 체계는 그와 상관없이 잡혀있다. 정말 얼굴 두꺼운 사람이라도 사람들 다니는 길거리에서 나체로 마음껏 활보는 못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낀다. 공감 능력 현저히 낮더라도 그렇다. 방광이 터지면 터졌지 다른 사람들 있는 앞에서 쉬 못하는 사람도 있다. 한국인이라면 나이 많은 사람에게 냅다 반말하기 힘들다. 외국인이 아무리 한국 사람의 높임말 설명을 듣는다고 해도, 그것을 완전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기 전까지는 그저 복잡하게만 느껴진다. 어린아이가 뛰어 들어와 할아버지 보고 '야! 뫄뫄야~' 라고 불렀을 때 본능적으로 움찔하게 되는 건, 한국 문화를 체화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 못한다. 공감 슈퍼 몬스터라도 그렇다. 머리로 하는 이해와 공감으로는 그런 직각적인 반응이 안 나온다.     


Explicit knowledge가 배워서 아는 거,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라면, implicit knowledge는 전달할 수 없는, 체화된 배움이다. 높임말의 이해가 그렇고, 언어의 이해가 그렇다. 한 그룹에서는 어떤 남자가 한 여자에게 "야 너 뚱뚱한데 밥 좀 그만 먹어라?" 라고 말 할 때 거기에 있는 좌중은 엄청나게 불편함을 느낀다고 하자. 한국에서 하극상을 보는 한국 사람들이 불편하듯이. 하지만 다른 그룹에서는 똑같은 말을 해도 좌중이 불편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본능적인 불편함이, '헉' 하게 하는 반응을 배우지 않아서다.     

그렇다면 이걸 어렸을 때부터 배워야 하냐, 이미 성인 됐으면 어쩔 수 없냐 하면 꼭 그렇진 않다. "저 칼퇴합니다"란 말이 아주 쉽게 나왔던 사람도 상황에 따라 그런 말을 하기 전에 가슴이 두근두근할 수 있다. 험한 말 쉽게 하는 사람도 상황에 따라 아주 잘 조절된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조심해야 하는지를 배워왔고, 안 조심하면 어떤 결과가 나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여혐은 공감 문제가 아니다. 이래서 나쁘니 공감해달라는 부탁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성 비하, 여성 차별적인 발언을 맘대로 해도 거의 제재 받지 않았기 때문에 아예 신경 써야 하는 문제로 등록이 안 되어있어서 하는 행동이라 그렇다. 그러니 이게 여혐이다 저게 여혐이다 설명해줘도 한국어의 높임말 법칙 듣는 외국인처럼 복잡하기만 하고 이거 신경 안 써도 이제껏 잘 살았는데 왜 날 피곤하게 하나 싶고 그럴 거다. 이거 그런데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 아무리 여혐발언 하는 사람도 상사가 보는 앞에서 상사 부인을 성희롱하진 않거든. 자기가 뭘 하면 안 되는지를 모르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젊은 여자에게 험한 말 하는 택시기사가 남자에게는 아무 말 없듯이, 여자에게도 충분히 조심스러운 태도 유지할 수 있으나 그러기 싫고, 자기 맘대로 해도 되는 상황에서 만만한 상대에게는 거리낌이 없고, 사회적인 제재가 없는 거 아주 잘 아니까 그냥 편하게 퍼져있겠다는, 혹은 네 기분 따위 무시하겠다는 자세다. "내가 그런다고 니가 어쩔래??" 정도.     


공감 능력이 없어서, 이해 못하겠어서라는 헛소리를 우쭈쭈 해 줄 필요는 없고, 성차별적인 발언과 행동에 확실한 제재를 가하면 이래저래 조근조근 착하게 이쁘게 쉽게 설명할 필요 없이 곧바로 교정되는 기적을 볼 수 있다. 여혐 뭔지 몰라 복잡해 하던 이도 갑작스레 엄청난 이해도와 실행력을 보인다. 몰라서 조심 안 하는 거 아니라니깐. 정말 윗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사람 딸이나 부인에게 성희롱성 발언할 수 있으면 정말 이해 못 해서 그렇다는 거 인정하겠으나 아니잖아?

     

제재를 통해 체화시켜야 한다. 불편함을 몸으로 느끼기 전까지는, 행동에 대한 확실한 대가가 있기까지는 아무리 설명해도 아몰라, 시끄러, 나한테 공감 능력 바라지 마...로 나갈 테니까.     


덧. 

딱 하나,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은 인정. 예쁘다는 칭찬, 죽인다 해도 이게 왜 여혐인지는 모르겠다는 사람들 많던데 이건 '상사테스트'도 통과하니 인정. 상사 부인/딸에게도 '미인이시네요' 칭찬은 하니까. 할많하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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