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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3. 2018

'언니', '선배'가 어색한 양파

2017년 3월 30일

한국어를 유창하게 잘 하지만 상대방이 '편하게 말 놓으세요' 하면 움찔한다. 내가 점점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겠지만, 나보고 말 놓는 사람은 줄어들고 말 놓으라는 사람은 늘어난다. 그런데 저는 그냥 높임말이 편합니다. 


눼눼. 제일 큰 이유는 당연히 '일관성이 효율적이기 때문에'. 누구랑 말 놨는지 안 놨는지 기억하려고 애쓰는 것보다 그냥 존대로 통일하면 인생이 단순하고 아름답다. 뷰리풀 심플 라이프. 존대어 통일로 단순해지는 인간관계. 그리고 또 -     


한국어 구사자들 중에서 말을 놓는 순간 관계의 성격이 확 변하더라. 아니 몇 달 몇 년 차이가 뭐 그리 크다고 갑자기 언니 선배 오빠가 되며 말투에 약간이라도 거만이 들어가고, 상대방은 갑자기 할 수 있는 말이 확 줄어든다. "야, 너 말 왜 그렇게 하냐?"와 "아유 언니 왜 말을 그렇게 하세요."랑 완전히 다르잖소. 난 내가 좀 철이 없는 편이고 품격이나 점잖음 같은 걸 아직 구비 못 한 모델이라서, 언니/선배/누나/선생님 (<--NEW!!) 이러면 움찔한다. 뭔가 좀 더 어른스럽게, 주위에 귀감이 되는 뭐 어쩌고 그런 거 해야 할 거 같은데 난 그런 거 못하고, 또 상대방이 내게 할 수 있는 말의 범위가 확 줄어들어서 난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발언 반경을 줄이며 손발 묶는 느낌이라 싫다.     


상대방이 오빠/언니라고 부르라면서 말을 놓으면 그렇게 해주고, 그런 관계도 몇 번 맺어보았지만 머릿속에서 영 해결 안 되더라는. 몇 달 먼저 태어났다고 언니 노릇을 하고, 또 몇 달 차이 나는 사람에게 동생이 되고, 그런 상황극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만나는 사람과 각각 다르게 한다는 게 참. 그냥 하나로 통일하고 살면 안 되나요. 전 국민 존대어화.     


어쨌든. 저 만나셔도 말 놓으라고/언니, 오빠라 부르라고/선배님 선생님 (<-- 아 진짜 이건;;) 하지 말아주세요. 그냥 양파님 양파 씨면 OK 감사. 오가는 존대 속에 싹트는 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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