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잡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Jun 03. 2018

본격 엄마 아빠 욕하는 글

2016년 8월 29일 


일주일 출장을 다녀왔다. 그 일주일 동안 둘째가 아파서 오페어 아가씨가 며칠을 봐야 했고, 큰 애도 방학이라 집에 있었다. 난 토요일 저녁에야 겨우 집에 도착했다. 저녁은 남편이 했고 난 열 시도 안 되어서 뻗어 잤다.     

엄마가 메시지를 보냈다: "집도 엉망이고 정신 사납겠다. 남편도 화가 났겠구나"     

아니 왜 남편이 화를 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 치우고 있는 남편한테 내가 화를 내면 몰라도 ㅋㅋㅋㅋ     


한국식으로 보자. 남편이 미국에 일주일 출장 다녀왔다. 돌아오니 애들 손톱은 안 깎아서 새까맣고 집안은 지저분하다. 그러면 부인이 화를 내는가? 야 인마 왜 출장 같은 거 가서 집안이 이 꼴이 되게 만들어? 애들은 왜 이래?? 이럴까?     


사실은 결혼 초에도 부모님은 나에게 자주 채근했다. "남편 아침밥은 해 주니? 아침 좀 챙겨줘!!" 아니 왜 내가 

챙기냐구. 

나 혼자 벌이로 외벌이 해도 될 만한데도 이렇다. 나는 아침밥 안 챙겨주는 나쁜 아내에 애들 버리고 출장 가서 애가 아픈데도 못 봐주는 나쁜 엄마에다가 돌아오면 집이 엉망인데도 죄책감은 안 느끼는 인면수심의 여자다.     

시애틀 있는 동안 단 한 명도 "애들은 어쩌고 니가 왔냐, 남편은 누가 밥 챙겨주냐"라고 묻는 사람 없었고 우리 집 살림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었다(한국 분들 꽤 많이 만났는데도 그랬다!). 그런데, 잘난 딸을 아주 자랑스러워하시는 부모님은 그래도 걱정하신다. 출장 간답시고 밖으로 나도는 딸 때문에 사위가 화낼까 봐. 울 엄마는 우리 집에 와 계실 때도 늘 그러신다.     

가끔 생각한다. 내가 아들이었다면 엄마는 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까? 애들은 잘 있디? 며느리가 애들 잘 간수했더니? 집은 엉망이니? 걔가 좀 안 치우잖니. 그러셨을까. 늘 저렇게 애들 잘 보고 밥 챙기는 남편 없다고 늘 칭찬하시는데, 내가 귀한 아들이래도 애들 잘 보고 밥 챙기는 여자 없다고 며느리 칭찬하셨을까.     


결론:

남편 중년의 성인 남자고요, 지 새끼 간수 못 할 정도 엉망인 남자 아닙니다. 밥도 잘하고 애들 목욕도 잘 시키고 해요. 못 하는 게 비정상이에요. 그리고 엄마아빠 딸, 뭐든지 남편만큼은 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언니', '선배'가 어색한 양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